박진규 시인님의 시 '사랑법'을 만납니다.
자리에 몸져누우신 노모(老母)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어느 '칠순 할배'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진규 시 '사랑법' 읽기
사랑법
박진규(1963년~ , 부산)
칠순 아들이 구순 엄마 기저귀 가는 것 좀 보소
사람들아 그이는 마스크를 쓰고 엄마 똥기저귀를 간다네
행여나 찡그려질 지도 모를 표정 감추기 위해
입만 가리는 마스크가 아니라 얼굴 다 덮는 커다란 마스크를 쓴다네
사람들아 그래도 혹시 엄마와 눈이 마주칠까
엄마 배 위에 높다란 이불산을 지어놓고 날마다 기저귀를 간다네
그래도 엄마가 민망할까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지금 막 도착한 전문 간병인처럼
이런 기저귀 수백 번도 더 갈아보았다는 듯
이런 일쯤이야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사무적으로 민첩하게 똥기저귀를 간다네
아이구 내 새끼 시원하겠다
우찌 이리 색깔도 좋을까 냄새도 향긋하네 참 잘했다!
옛적 이랬을 엄마 밑에서
자신이 나왔던 그 무궁 앞에서
몸을 넙죽 웅크리고 세상 사람들아
칠순 할배가 엄마 기저귀를 간다네
아이구 이남연 씨 오늘 색깔도 좋구요 냄새도 건강하구요
차암 잘하셨어요!
▷문학 전문 매거진 「포엠포엠」(2025년 봄호) 중에서.
2. 부모님 기저귀 갈아드리는 아주 섬세한 방법에 대하여
박진규 시인님의 시 '사랑법'은 시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 2025년 봄호에 실린 작품입니다.
제목 '사랑법'은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뜻일 텐데,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요?
'칠순 아들이 구순 엄마 기저귀 가는 것 좀 보소
사람들아 그이는 마스크를 쓰고 엄마 똥기저귀를 간다네'
백세 다 되어가는 노모(老母)는 이제 몸져누우셨나 봅니다.
이제 가족이 그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인가 봅니다.
요즘 이런 가족은 매우 드물겠네요.
연로하신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는 기점, 자식들은 그것을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때로 보니까요.
요양원에 모시면 전문 간병인들이 대소변 받는 일을 다 해주니까요.
자식들은 본능적으로 그 일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그런데 시 속의 '칠순 아들'이 그 어려운 일을 '마스크를 쓰고' 한다고 합니다.
그대는 방금 무얼 떠올렸는지요? 칠순 아들이 마스크를 쓴 이유 말입니다.
'행여나 찡그려질 지도 모를 표정 감추기 위해
입만 가리는 마스크가 아니라 얼굴 다 덮는 커다란 마스크를 쓴다네'
노모의 응가 냄새를 차단하기 위해서라고요?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네요. '칠순 아들'이 마스크를 한 이유 말입니다.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아, 참말로요.
우리는 여기서 무릎이 저절로 꺾이고 마네요.
응가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찡그려질 테고, 그런 얼굴을 누운 엄마가 보기라도 하면 얼마나 미안해할까 걱정하는 아들이네요.
그래서 그런 표정 안 들키게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참으로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 착한 '칠순 아들'이네요.
이 어두운 세상 어느 작은 구석에 이런 '칠순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온 세상이 환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칠순 아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삶의 어른이라고 생각하니 눈 언저리가 뜨거워지면서 미지근했던 삶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아 그래도 혹시 엄마와 눈이 마주칠까
엄마 배 위에 높다란 이불산을 지어놓고 날마다 기저귀를 간다네'
오, '높다란 이불산'이라니!
우리는 이 '높다란 이불산' 산자락에 이르러 다시 무릎이 꺾입니다.
노모의 덮고 있는 이불을 구깃구깃 부풀려 노모의 배 위에 '높다란 이불산'을 짓는 '칠순 아들'이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고함치고 싶은 구절입니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이렇게 뜨거운 모닥불 같은 '칠순 아들'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구절입니다.
이 '높다란 이불산'은 서로의 시선을 막아주는 편안한 이불산입니다.
이 '높다란 이불산'은 서로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따뜻한 이불산입니다.
이 '높다란 이불산'은 '얼굴 다 덮는 마스크'와 함께 부모님 응가 기저귀 가는 '핵심 기술'로 국제특허를 받아야 마땅한 '사랑법'입니다.

3. 무게 없는, 그 천금 같은 사랑에 대하여
'그래도 엄마가 민망할까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 지금 막 도착한 전문 간병인처럼
이런 기저귀 수백 번도 더 갈아보았다는 듯 / 이런 일쯤이야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사무적으로 민첩하게 똥기저귀를 간다네'
그 '사랑법'의 세 번째 '핵심기술'은 '사무적으로 민첩하게'입니다.
노모의 응가 기저귀를 처리하는 일은 노모에게 무엇보다 지극히 사무적으로 보여야 마땅하겠네요.
지금 자신의 아래에서 기저귀를 가는 이는 자식이 아니라 생판 얼굴 모르는 타인이라는 느낌이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상황의 유별난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냥 일어나곤 하는 사무적인 느낌이어야만 하고요.
겉으로 보기에 진심이나 성의가 없고 기계적이거나 형식적으로 처리되는 일로 말입니다.
그리고 기저귀 처리를 맡기고 있는 노모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 가능한 빠르게 일이 잘 처리되어 이 난감한 상황이 가능한 빠르게 끝나는 일이겠습니다.
'아이구 내 새끼 시원하겠다 / 우찌 이리 색깔도 좋을까 냄새도 향긋하네 참 잘했다!'
'칠순 아들'이 노모의 아랫도리를 감싸고 있던 기저귀 펴본 순간의 상황이네요.
'칠순 아들'은 문득 아기였던 자신의 기저귀를 갈며 했을 말이 분명한 젊은 엄마의 문장을 떠올렸네요.
이 문장은 세상 모든 어린 자식의 성장 과정에 필수적으로 자연적으로 등장하는 참으로 중요한 문장이네요.
듣는 아기를 우쭐하게 하는 감미료 같은, 향료 같은, 응원가 같은 문장요.
말하는 엄마를 든든하게 하는 보약 같은 문장요.
잘 먹고 잘 싸는 일, 그건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얼마나 안심이 되는 일인지!
'옛적 이랬을 엄마 밑에서 / 자신이 나왔던 그 무궁 앞에서
몸을 넙죽 웅크리고 세상 사람들아 / 칠순 할배가 엄마 기저귀를 간다네'
이 대목에 이르러 우리의 무릎은 다시 저절로 접히고 마네요.
우리의 두 무릎이 접혀 '자신이 나왔던 그 무궁 앞'에 꿇어앉은 느낌입니다.
여기의 '무궁'이란 시어가 우리의 상상력을 작동시켜 줍니다.
'무궁'은 언뜻 '자궁'과 연결되기도 하고, '공간과 시간의 끝이 없다'는 뜻의 '무궁(無窮)'과 연결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네요.
생명의 잉태가 시작된 곳, 잉태된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온 곳입니다.
'자신이 나왔던 그 무궁 앞에서' '몸을 넙죽 웅크리고' 노모의 기저귀를 가는 '칠순 할배'의 모습이 보이네요.
우리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시 그 '무궁'으로 돌아가는 저마다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아이구 이남연 씨 오늘 색깔도 좋구요 냄새도 건강하구요 / 차암 잘하셨어요!
'칠순 할배'가 옆에서 말하는 듯 생생히 들리는 구절입니다.
평소보다 다소 과장된 목소리, 사무적인 일처리의 목소리, 아들이 아닌 타인의 목소리여야만 한다는 듯 결심한 목소리입니다.
이런 톤의 목소리도 부모님 기저귀 갈기 마무리 과정의 '핵심 기술'의 하나로 포함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칠순 아들'은 노모의 방을 나와 밖에서 마스크를 벗었겠습니다.
마스크를 벗으며 숨을 크게 쉬었겠습니다.
그렇게 참았던 숨을 크게 들이쉬는 '칠순 아들'의 눈은 아마도 젖었겠습니다.
그런 '칠순 아들'의 '사랑법'으로 방안에 누운 노모는 다시 세상 편히 잠들었겠습니다.
부모님 은덕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님 보살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헤매며 어찌어찌 늙게 되고, 그렇게 또 어찌어찌 늙은 자식의 보살핌으로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삶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사랑이란 얼마나 무겁고 또한 가벼운 것인지요.
나의 천금 같은 사랑이란 정작 상대에게는 아무 무게 없는 아득한 사랑이네요.
이런 섬세한 '사랑법'을 실천하고 있는 성자(聖者) 같은 '칠순 할배'를 어디 가서 만날 수 있을까요?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네요. 멋지십니다, 하면서 꼬옥 손 잡아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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