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김소월 시 진달래꽃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3. 27.
반응형

김소월 시인님의 시 '진달래꽃'을 봅니다. 앞산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나면 어김없이 이 시도 따라 핍니다. 왜 그럴까요? 이 시에 무엇이 담겨 있기에 그럴까요? 천천히 읽으며 진달래꽃 향기에 마음을 담그고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김소월 시 '진달래꽃' 읽기


진달래꽃

- 김소월(1902~1934)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시집 「소월의 명시」(한림출판사) 중에서

 
엊그제 봄날의 아침 산책 때였습니다. 동네 시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건어물 가게 판매대에 한아름의 연분홍 진달래꽃 이파리들이 소복이 놓여 있었습니다. 가까운 뒷산에서 막 따온 듯 아직 꽃잎이 싱싱하였는데, 왜 진달래꽃을 파는 것일까요?

아마 진달래 술을 담그라는 뜻일 겁니다. 유리병에 꽃잎을 넣고 술을 붓고 기다리면 연분홍 꽃물이 우러나 아주 예쁜 색깔의 술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장통을 빠져나오는데 문득 김소월 시인님의 시 '진달래꽃'이 흥얼흥얼 나오는 겁니다. 거참.
 
나 보기가 /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김소월 시 '진달래꽃' 중에서

 
2. 탄생 101년의 '진달래꽃'


'천재시인' 김소월 시인님이 스무 살 때 쓴 '진달래꽃'이 세상에 나온 지 101년이 지난 오늘에 읽어봅니다. 1922년 「개벽」 7월호에 처음 발표된 김소월 시인님의 시 '진달래꽃'은 1925년 12월에 나온 그의 첫 시집 「진달래꽃」에 실렸습니다. 

제목이 왜 '진달래꽃'이어야만 했을까요? 시의 화자가 진달래꽃처럼 붉게 불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네요. 그래서 제목을 보면, 이 시는 이별 노래가 아닌 지독한 사랑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의 화자는 계속 이별을 말하고 있네요. 각 연의 마지막 행을 보셔요.

- (1연)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2연)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3연)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4연)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것이 시 '진달래꽃'이 패러독스(paradox)의 대표 시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아시다시피 패러독스는 역설(逆說)을 말합니다. 'para'는 무엇을 넘어서는 것을, 'dox'는 의견이나 생각을 말합니다. 패러독스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의견이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네요. 그 생각 너머에 진실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과 '생각 너머'가 서로 모순되게 맞물리면서 '생각 너머'의 것을 강화시킵니다.
 
남송우 문학평론가님은 "긴장감이 원심력과 구심력의 작용으로 생기는 것처럼, 시적 긴장은 패러독스에서 생긴다. 시의 언어는 패러독스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시 '진달래꽃'은 밖으로 드러난 진술과 안에 함축된 진실이 서로 모순되게 맞물려 팽팽한 시적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진달래꽃'의 화자는 "그래, 가시오, 그 길에 꽃도 뿌려드릴 테니 그 꽃을 밟고 가시오, 나는 죽어도 울지도 않으리다."라고 시에서 말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 과장과 허세 속에 감추어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당신을 보내지 못하겠다는 진심이 진달래꽃처럼 불타고 있네요. 그의 사랑은 이렇게 혼신을 다하는 붉고 붉은 사랑이네요.
 

김소월시진달래꽃중에서
김소월 시 '진달래꽃' 중에서

 

 

 
3.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제 우리는 이 시의 화자를 두고 떠나가는 이의 입장이 되어 봅시다. 내가 떠나겠다고 하는데도 말없이 고이 보내 준다 하고, 내가 갈 그 길에 진달래꽃을 뿌려준다고 하고, 사뿐히 그 꽃을 즈려 밟고 가라 하고,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을 두고 과연 '나'는 훌쩍 떠날 수 있겠는지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시 '진달래꽃' 중에서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진달래꽃'의 역설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고 말하지만, 내가 떠나면 눈물 흘릴 그가 뻔히 보이지요.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비문까지 등장해 이별 앞에 절박해진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나'는 그를 떠날 수 있겠는지요. 그래도 떠난다면, 떠난 이는 천벌 받지 않겠는지요. 패러독스의 힘이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소월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김소월 시 산유화 읽기

김소월 시인님의 시 '산유화'를 읽으려 합니다. 이 시는 어떤 향기를 우리에게 전해줄까요? 김소월 시인님이 피워놓은 아주 특별한 산유화 향기로 마음을 씻으며 함께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