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가수님의 시 '하얀 목련'을 만납니다. 봄날 목련꽃이 하롱하롱 지는 것을 보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입니다. '하얀 목련'을 흥얼거리며 저마다의 슬픔을 되새김질하면서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양희은 시 '하얀 목련' 읽기
하얀 목련
- 양희은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하얀 목련'은 1983년 양희은 가수님이 직접 쓴 가사(시)에 김희갑 작곡가님이 곡을 붙인 가요입니다. 노래가 탄생한 지 4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목련이 피면 많은 사람들이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입니다.
1952년 서울 태생인 양희은 가수님은 19세 때였던 1971년 노래 '아침이슬'로 데뷔했습니다. '하얀 목련'은 1983년 발표됐으니 양희은 가수님 31세 때네요. 이즈음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2. ‘하얀 목련’에 담긴 사연은?
양희은 가수님이 MBC 라디오스타(2021.10.27)에 출연해 '하얀 목련' 탄생 사연을 소개했는데요, 이 시를 쓸 당시 그는 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그를 위로하려고 친구가 먼 타국에서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편지에 '지금 봄비를 맞아 목련이 툭툭 떨어지고 있다.'라고 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문장에 영감을 받아 밤에 일어나 몇십 분 만에 쓴 시라고 합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이 시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시 '하얀 목련'은 하얀 목련이 피는 날 연인과 이별한 이야기네요. 그래서 목련이 필 때마다 그이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투병 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 자신의 마음 속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가 ‘사랑했던 그이’였네요. 그러나 그이는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아픔을 어찌해야 할까요?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슬픔에 빠진 그이를, 또 이 시를 읽으며 저마다의 그리움에 빠진 우리를 다독여줍니다.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 양희은 시 '하얀 목련' 중에서
그 새하얀 목련이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롱거리며 떨어져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채워주었겠지요. 이 마지막 행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이 시가 파놓은 슬픔의 우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3. 그러라 그래~
이렇게 사물은 기억을 따라다니고, 또한 기억은 사물을 따라다니네요. '나'라는 존재는 기억의 짐이 빽빽한 트렁크를 이고 다니는 중인 것만 같습니다. 그 가방 안에는 기억만큼 헤아릴 수 없는, 하얀 목련 같은 사물과 이별 같은 사건들이 있겠네요.
그러므로 우리는 한 그루의 목련나무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는지요.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산책길에 서 있는 목련나무 한 그루를 쭉 지켜보았습니다. 그 추운 겨울에도 목련나무는 가지마다 솜털이 촘촘한 꽃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꽃순 속에 희고 둥근 목련꽃이 예비되어 있었겠네요. 아니나 다를까, 날이 풀리자 그 속에서 까꿍! 하듯 하얀 손이 나왔습니다. 엊그제 아침에 보니 이 가지마다 한 뼘쯤 되는 꽃봉오리들이 공중을 향하여 수직으로 솟아 있었습니다. 저 찬란한 백금 촛대들!
목련나무는 그저 봄의 공중에 꽃잎을 올리며 자기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에겐 이별이나 만남 같은 속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듯이요.
그래도 목련님, 목련님만 보면 떠나간 그이가 자꾸 생각나는 걸 어떡하나요?
'하얀 목련'이라는 시를 쓰고 노래한 양희은 가수님은 2021년 「그러라 그래」(김영사)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낸 바 있습니다. 이 책 제목이 털털하기도 따스하기도 한 큰누이 같은 양희은 가수님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글자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네요.
"그러라 그래~"
양희은 가수님은 '하얀 목련' '아침 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상록수' 같은 주옥같은 노래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넘나들면서 이 한 마디를 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마법 같은 한 마디는 하얀 목련을 볼 때마다 그 봄날 떠나가버린 그이한테 툭 던지는 한 장의 차가운 웃음 같기도 하고, 자신을 다독이는 담담한 다짐 같기도 합니다.
우리도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한번 외쳐 보십시다. ‘그러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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