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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남조 시 성주

by 빗방울이네 202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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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님의 시 '성주(城主)'를 만납니다. 최근 96세의 일기로 작고한 시인님의 전언입니다. 시인님이 건네주는 행복한 삶을 위한 팁으로 저마다의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남조 시 '성주' 읽기

 
성주(城主)
 
- 김남조(1927~2023, 대구)
 
당신은 성주가 되었다
성 하나에 한 사람뿐인
그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모자를 벗지만
그때 웃음판이 멈추기도 한다
당신의 고독은 깊어 간다
 
탁월함이 인격인 건 아니고
행복이 가치의 지표도 아니다
재물은 너무 많아도 안 되고
고독은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멀리 보며 전체를 생각하라
좋은 꿀의 꿀물을 타서
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
겸허히 기도하라
 

- 김남조 시집 「사람아, 사람아」(문학수첩, 2020)
 

2. 1,000편의 시를 쓴 시인의 삶의 비기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렇게 묻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고요, 어깨가 무거워지고 지칠 때 말입니다. 그럴 때 도움이 될, 평생 사랑과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노래한 김남조 시인님의 시를 만나봅니다. 
 
2023년 10월 10일, 96세의 일기로 작고한 김남조 시인님은 평생 1,000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골똘히 삶의 속살을 들여다본 시인님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시인님은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비롯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까지 모두 19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마지막 시집을 보니, 거기에 시인님의 묵직한 전언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인님의 시 '성주(城主)' 속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성주가 되었다 / 성 하나에 한 사람뿐인 / 그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모자를 벗지만 / 그때 웃음판이 멈추기도 한다 / 당신의 고독은 깊어 간다

- 김남조 시 '성주' 중에서

 
'성주(城主)'는 말 그대로 성(城)의 주인입니다. 성주는 한 나라의 대표, 한 도시의 대표, 한 가정의 대표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늘은 성주의 의미를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새겨봅니다.
 
그러므로 이 시에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전언이 담겨 있겠네요.
 
모자를 벗는 행위는 존경과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매번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성주'에게 모자를 벗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 마음이 아닌 행동이나 말로만 그렇게 한다고 느껴질 때 그 '성주'는 바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인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독이 깊어갈 것이라고 하네요.
 
탁월함이 인격인 건 아니고 / 행복이 가치의 지표도 아니다
재물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 고독은 너무 적어도 안 된다

- 김남조 시 '성주' 중에서

 
시인님은 너무 탁월함을 추구하거나 지나치게 행복을 추구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렇게 탁월함과 행복을 추구할 때 항상 경쟁적 타자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는 더불어 탁월하고 다 같이 행복해야 하니까요.
 
고래로 지나친 재물은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독은 자신을 비춰주는 얼마나 투명한 거울인지요? 외롭고 쓸쓸함 속에 있을 때 자신이 바르게 보일 것입니다. 고독을 감내하고, 또 그 속에서 벗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나은 삶의 길을 가는 거겠지요?
 
시 '성주'가 실린 시집 맨 앞 서문에 시인님이 이렇게 써두셨네요.
 
우리는 사람끼리 깊이 사랑합니다.
많이 잘못하면서 서로가 많이 고독하다는 '인간의 원리'를 깨닫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사람은 서로 간에 '아름다운 존재'라는 긍정과 사랑과 관용에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위 시집 서문 '노을 무렵의 노래' 중에서

 
그렇네요. 시인님은 '서로가 많이 고독하다'는 것이 인간의 원리라고 합니다. 그 원리를 깨닫고 서로 사랑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일까요?
 

김남조시성주중에서
김남조 시 '성주' 중에서.

 

 

3. '좋은 꿀의 꿀물을 타서 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

 
멀리 보며 전체를 생각하라 / 좋은 꿀의 꿀물을 타서
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 / 겸허히 기도하라

- 김남조 시 '성주' 중에서

 
93세 즈음 시인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 팁'이네요.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에 아등바등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감미롭도록 도와주자고 하네요.
 
시인님의 삶도 그랬습니다.
 
지난 2015년 시인님은 1955년부터 살던 서울 효창동의 자택을 헐어내고 50억 원의 사재를 들여 그 자리에 '예술의 기쁨'이라는 이름의 예술문화공간을 지었습니다. 저렴한 대관료로 시낭송회나 연극, 음악회,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님은 자신의 둥지를 헐어 예술인들을 위한 둥지를 지었네요. 수많은 예술인과 관람객들이 오래도록 이곳에서 향기로운 꿀물을 마실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요. 
 
이렇게 큰 것만이 ‘좋은 꿀’이겠는지요? 타자의 감미로운 삶을 위해 행동하고 겸허히 기도하라는 시인님의 전언을 가만히 안아보는 밤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남조 시인님의 시 '목숨'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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