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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천상병 시 난 어린애가 좋다

by 빗방울이네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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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님의 시 '난 어린애가 좋다'를 만납니다. 시인님은 왜 어린애가 좋다고 할까요? 시인님이 건네주시는 따뜻한 목욕물 같은 천진난만으로 저마다의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천상병 시 '난 어린애가 좋다' 읽기


난 어린애가 좋다
 
- 천상병(1930~1993, 일본 출생, 창원 성장)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 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 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 「천상병 전집·시」(천상병 지음, 평민사, 1996년 1쇄, 2007년 12쇄) 중에서

 
2. 시인의 삶을 흔든 억울한 사건


천상병 시인님의 시 '난 어린애가 좋다'를 만납니다. 시에 나오는 대로 시인님 60세 즈음에 쓰인 시입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 천상병 시 '난 어린애가 좋다' 중에서


참 가슴 아픈 첫 행이네요. 천상병 시인님은 1972년 시인님 43세 때 친구 목순복 님의 동생인 목순옥 님과 결혼합니다. 그 후 이 시가 쓰인 1990년 즈음까지 아이가 없었네요. 아니, 평생 천상병 시인님 부부에게 아이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상병은 아이들을 좋아했다.
전기 고문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애정이 가는지도 몰랐다.

- 「천상병 -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간 시인」(전남진 지음, 작은씨앗, 2007년) 중에서

 
아, 이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요? 시인님은 동백림 사건(간첩단 사건)에 연루(1967년) 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습니다. 시인님은 그때 6개월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거기서 모진 전기 고문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말, 정말 원통하고 원통한 말이네요.
 
시를 통해 '그렇게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는, 환갑 나이에 이른 시인님의 눈에 이슬이 맺혔을 것만 같네요. 이렇게 억울하게 삶이 황폐화된 시인님은 어떻게 사셨을까요? 
 

천상병시난어린애가좋다중에서
천상병 시 '난 어린애가 좋다' 중에서.

 

 

3. 시인님의 별명은 '일곱 살짜리'


그래서 난 /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 사랑한다
요놈! 요놈 하면서 / 내가 부르면 / 어린이들은 / 환갑 나이의 날 보고 / 요놈! 요놈 한다

- 천상병 시 '난 어린애가 좋다' 중에서

 
천상병 시인님의 어린이 사랑은 참으로 못 말릴 정도네요. '요놈! 요놈'하고 아이들을 부르면, 아이들도 '요놈! 요놈'하고 환갑 나이의 시인님을 부른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누구라도 눈에 훤하게 보이는 장면일 텐데요, 시인님은 참으로 천진난만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할아버지 시인님에게 '요놈! 요놈' 한다네요. 서로 아무 스스럼이 없네요. 스스럼이 없다는 말은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경계가 사라졌다는 말이네요. 무서움이나 서먹함이나 부끄러움이나 낯가림 같은 것이 없어졌다는 거네요.  
 
아이들과 할아버지 시인님이 '통했다'는 말입니다. 할아버지 시인님이 '아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 우리는 이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자세히는 알 수 없는 영역의 일인 거 같네요. 김광섭 시인님의 문장을 빌려옵니다.
 
어른은 천사의 상태에서만 / 아기의 천진(天眞)에 통한다

- 김광섭 시 '아기와 더불어' 중에서

 
사랑스러운 아이 앞에서 온갖 애교를 다 떨었던 경험이 있는가요? 아이의 사랑을 받아보려고 가장 예쁘고 가장 환한 표정을 짓고 가장 아이같은 천진한 몸짓을 하면서 아이에게 사랑을 청한 적이 있는가요? 그렇게 아이 앞에서 활짝 피었던 순간이야말로 '천사의 상태' 아니었을까요?
 
아이들과 서로 '요놈, 요놈' 하면서 스스럼없는 친구처럼 통한 천상병 시인님의 삶은 그렇게 '천사의 상태'였겠습니다. 꾸미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는 어린이 말입니다. 아, 사랑하는 시인님!
 
어린이들은 / 보면 볼수록 좋다 / 잘 커서 큰일 해다오

- 천상병 시 '난 어린애가 좋다' 중에서

 
시인님은 그런 아이들이 '보면 볼수록 좋다'라고 합니다. 시인님은 왜 그리 아이들이 좋을까요? 시인님은 1990년 7월 「금성정밀」에 수필 한 편을 싣습니다. 제목은 '일곱 살짜리 별명'입니다. 수필 속의 몇 문장을 함께 읽어봅니다.
 
나는 금년(1990) 1월 29일로 회갑을 지냈다.
그런데도 아내와 남들이 나를 보고 일곱 살짜리라고 별명을 붙여 놀리곤 한다.
거기에 나도 반박을 하거나 변명을 못할 몇 가지 이유가 있기에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 「천상병 전집 - 산문」(천상병 지음, 평민사, 1996년 1쇄, 2007년 6쇄) 중에서

 
시인님의 당시 별명이 '일곱 살짜리'였다고 하네요. 그 이유로 거리에서 예쁜 여자를 만나면 가던 길 멈추고 바라보기(시인님 부인이 옆에 있어도!), 친구들에게 세금 뜯기(아내가 하루에 용돈 이천 원을 주고 있지만 친구들이 내가 세금을 달라고 하지 않으면 심심해할 것이라는 이유로!) 등이 있다네요.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이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동네 아이들이나 귀천에 오는 어린이나 모두가 내 친구들이다.
그 어린애들을 보면 그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 진다.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들고 "할아버지한테 와!" "할아버지한테 와!"라고 고함을 쳐도
그들은 금방 나한테로 쫓아와 장난을 청하고 놀아 준다.
하늘에서 갓 내려온 천사 같은 아이들과 놀아대니 내 어찌 기분이 좋지 않으리오?
나는 어린애가 없어 온 세상 어린아이들이 다 귀엽고 천사만 같아지니
이것 또한 일곱 살짜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천상병 전집 - 산문」(천상병 지음, 평민사, 1996년 1쇄, 2007년 6쇄) 중에서. 

 
맞네요, 시인님. 그런 천상병 시인님은 천상 '일곱 살짜리' 맞습니다. 세상사에 물들지 않은 맑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사랑한, 자신 또한 그렇게 맑고 아름다운 일곱 살짜리 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살고자 했던 시인님,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천상병 시인님의 시 '들국화'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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