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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있는 일상

부산 맛집 - 남구 내호냉면

by 빗방울이네 202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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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맛집 '내호냉면'을 찾아갑니다.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의 정착촌에 생긴 식당입니다. 그래서 내력이 오래되고 사연도, 맛도, 자부심도 오래된 집입니다. 오랜 사연을 품은 그 깊은 맛으로 몸과 마음을 씻어 봅시다.

1. '최초 밀면집' 부산 남구 '내호냉면'


부산 맛집 내호냉면(부산 남구 우암번영로 26번 길 17)은 어떤 집일까요?

이 집의 역사는 무려 104년이나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밀면을 최초로 개발한 집입니다.

이름 속의 '내호'는 함경도 흥남 내호리의 '내호'입니다. 이 집의 뿌리입니다.

그 내호리에서 1919년 문을 연 '동춘면옥'이 이 집의 모태입니다. 현재 부산서 4대째 맛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동춘면옥'의 이영순 대표님(?~1970)이 부산으로 피난 와서 1953년 고향 마을 이름을 따 내호냉면 가게를 냈습니다. 함흥냉면집이었는데, 당시 구호물품이었던 밀가루를 이용해 밀면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이 집은 냉면과 밀면을 함께 내고 있습니다. 이 집 냉면의 역사는 올해로 104년, 밀면은 64년이네요.

오늘은 64년 동안 맛을 이어온 밀면을 주문합니다.

2. 60년 넘은 밀면은 어떤 맛일까요?


식당 벽에 '백년가게' 홍보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보니 이 집 밀면의 비법이 적혀 있네요.

- 밀가루와 고구마 가루를 7:3 비율로 반죽해서 면을 뽑고 찬물로 헹궈 냉면처럼 찰기 있으면서 밀면만의 부드러운 맛을 유지하는 것이 비법이다.

식당 벽 맨 위쪽에 연필로 그린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다가가 보니 '밀면 창시 정한금'이라고 적혀있네요. 정한금 님(1924~2010)은 이 가게 창업자인 이영순 님의 큰 딸입니다. 이 분도 어머니와 고향 내호리의 '동춘면옥'에서 함께 일했는데, 부산서 1959년쯤 밀면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60년 동안 이어져 온 자부심 뿜뿜의 밀면을 기다리며 '육수'를 홀짝이고 있습니다. 뜨거운 육수가 몸으로 들어가 예사롭지 않은 밀면이 곧 들어올 거라고,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드디어 비빔밀면 똬리가 장착된 대접이 빗방울이네의 식탁 위에 딱 도착했습니다. 어떤 맛일까요? 

밀면 대접을 보자마자 침이 꿀꺽 넘어가며 마음이 바빴는데, 고맙게도 이미 비벼져 있었습니다. 밀면 한 젓가락을 감아 길게 들어 올렸는데, 얄궂게도 '야호~'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거참.

'밀면 여왕'인 짝지가 한 입 먹어보더니, "맛있어요!“라고 속삭이네요. 짝지가 이렇게 일찍 맛평을 하는 일은 처음이었네요. 

빗방울이네도 한 입 가득 먹어봅니다. 가능한 큰 젓가락으로요. 입속으로 면가락이 가득 밀려옵니다. 첫맛은 ”와, 쫄깃하다“입니다. 쫄면의 면발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 식감이 부드럽네요. 양념은 지나치게 맵거나 달지 않고 깊은 맛입니다.

가오리회무침이 밀면에 다 들어있네요(짝지의 탄성)! 밀면을 다 먹을 때까지 젓가락에 한 점씩 휘감겨 올라오며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가오리입니다. 돼지수육도 서너 점이나 들어있네요. 아껴 먹지 않아도 되겠네요.

부산남구내호냉면집의비빔밀면이집이전국에서처음밀면을개발한곳이다
부산 남구 '내호냉면'의 비빔밀면. 전국에서 처음 밀면을 개발한 집으로 꼽힌다.

 

 

3. '가게 자리 옮기지 말라'는 창업자 유언


식당을 나오는데 벽에 만화 이미지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습니다. 허영만 만화가님의 '식객' 페이지입니다. '식객' 27권에는 135화 밀면 편에 '부산 최초 밀면 제조'라는 소제목을 단 '내호냉면'편이 나옵니다.  

이 만화에 보면, 내호냉면 창업자인 이영순 대표님 유언이 '가게를 옮기지 말라'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로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한켠 창업 당시 자리를 '내호냉면'이 60년 넘게 지키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무언가 울렁이는 느낌이 듭니다. 전국 맛집이 되어 돈도 많이 버셨을 텐데, 주차장 있는 좋은 건물로 식당을 옮길 수도 있었을 텐데요.

우리는 너무 빨리 변하는 것만 같습니다. 오래된 건물들, 오래된 거리들이 너무 쉽게 우리 풍경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행을 쫓아가느라 우리의 옛 모습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60년 넘게 한 자리에 있는 이 집이 든든한 맏이처럼 느껴집니다.

맛있는 밀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절대적인 맛이란 없는 것만 같습니다. 음식에는 정다운 사연까지 버무려져 정다운 맛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며 가끔 맛있는 음식도 먹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부산 맛집 연관 글을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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