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드라마 '슈룹'에 대한 뜻을 알아봅니다. 과연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요? 왜 슈룹이라는 단어로 표기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슈룹을 통해 우리말의 기원도 함께 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1. 슈룹은 어디에서 처음 등장하나?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tvN 토일 드라마 슈룹. 드라마 제목이 외국어처럼 느껴집니다. 무슨 뜻일까요? tvN은 이 드라마를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라고 소개하고 있네요.
중전인 임화령 분으로 김혜수 님이 주연을 맡아 호평을 받고 있는 드라마이지요. 어떤 포스터에 보면 드라마의 영어 명칭이 The Queen’s Umbrella, 또는 Under the Queen’s Umbrella라고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슈룹은 ‘우산’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산의 순우리말이었습니다. 슈룹, 즉 우산이 사고뭉치 왕자들을 외세로부터 보호하며 성장시켜가는 엄마 역할(김혜수 분)을 상징하는 장치로 쓰였네요. 그런데 ‘슈룹’이라는 말은 어디서 처음 등장했을까요?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십시다. 그 근원은 <훈민정음 해례본>이었습니다. 애독자 여러분을 위해 지체 없이 도서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김슬옹 지음, 박이정 출판)을 빌렸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떡하니 ‘슈룹’이 등장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신 후 국민들이 누구라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학자들과 함께 저술하신 한글 문자 해설서입니다. 1446년 간행.
한글은 이렇게 생겼고, 글자는 이렇게 조합해서 쓰고, 그 예시는 이렇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네요. 이 책의 6장 용자례(用字例), 즉 글자쓰기 예시로 ‘슈룹’이 나옵니다. 모음 ‘ㅠ’ 편에 나옵니다. 모음 ‘ㅠ’를 어떤 식으로 쓰느냐를 설명하면서 모두 4개의 단어를 예로 들고 있네요. “‘ㅠ’는 율믜(율무), 쥭(밥주걱), 슈룹(우산), 쥬련(장식용 걸개)와 같이 쓴다.”
이 대목에 ‘슈룹爲雨繖’이라고 적혀 있어요. 슈룹은 우산이다는 뜻입니다. 요즘 한자로 우산은 ‘雨傘’으로 쓰지만 당시에는 ‘雨繖’을 많이 사용한 듯합니다.
2. 우산을 슈룹이라고 부른 이유
그런데 우산을 왜 ‘슈룹’이라고 불렀을까요?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 국민들 사이에 쓰이고 있던 말소리겠지요? 글자는 없었겠지만. ‘주룩주룩!’ ‘슈룹’의 어원을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주룩’이라는 말이 생각났어요. ‘주룩’이 비가 내리는 소리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니, 우산을 뜻하는 ‘슈룹’과 연관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는 순전히 저 ‘빗방울이네’의 생각인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이라는 책을 펼친 김에 좀 더 읽어볼까요? 모음 ‘ㅛ’를 설명한 지면에는 ‘‧쇼爲牛’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요즘의 소를 말합니다. ‘소’가 당시에는 ‘‧쇼’로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점이 하나(거성) 찍힌 ‘쇼’입니다.
‘고욤나무’ 표기도 눈에 딱 들어오네요. ‘‧고욤’, 역시 거성이 찍혀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거성을 어떻게 소리 내는지 설명을 해놓은 문장을 보니 아주 흥미롭네요. ‘거성은 높고 장대하니 가을에 해당되어 만물이 무르익는 것과 같다.’
이 안내에 따라 ‘‧쇼’를 발음해보셔요. ‧쇼! 또 ‘‧고욤’도 발음해보셔요. ·고욤! 이 옛말 ‘고욤’이 사라지지 않고 요사이도 ‘고욤나무’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고욤나무는 아주 작은 감이 열리는 감나무입니다. 감나무는 고욤나무와 접을 붙이지 않으면 감이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욤나무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슈룹은 왜 사라졌을까요? 왜 이 아름다운 우리말 ‘슈룹’은 ‘우산’이라는 한자말에 밀려났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3. 슈룹과 함께 읽어보는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에 세종대왕이 직접 쓰신 ‘세종 서문’을 함께 읽어 봅시다. 세종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저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끝에 있는 ‘정인지서’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답니다.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가 책의 맺음말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주요 문장을 간추려 드립니다.
- 대개 중국 이외의 딴 나라 말은 그 말소리에 맞는 글자가 없다.
- 그래서 중국의 글자를 빌려 소통하도록 쓰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제대로 소통하는 데 막힘이 없겠는가?
-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이 중화(중국)와 같아 견줄 만하다.
-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 또한 이 글자로써 소송 사건을 다루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 비록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모든 왕들을 뛰어 넘어서셨다.
- 정음 창제는 앞선 사람이 이룩한 것에 의한 것이 아니요, 자연의 이치에 의한 것이다.
여러분, ‘슈룹’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드라마 제목 하나가 우리를 576년 전으로 데려다 주었네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의 저자 김슬옹 님이 이 책 머리말에 쓰신 내용입니다.
“이 책은 인류 최고의 문자 해설서답게 지금 시각으로 보아도 매우 수준 높은 언어학, 철학, 문자과학, 음악학을 아우르고 있다.
더욱이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쉽게 나누라는 인류 보편주의의 아름다운 뜻을 담고 있다.”
여러분께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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