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님의 시 '훈몽', 즉 '자식교육'을 읽습니다. 500여 년 전에는 자식 교육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 목욕을 하십시다.
1. 퇴계 이황 시 '자식 교육' 읽기
자식 교육
- 퇴계 이황
많이 가르치는 것은 싹을 뽑아 북돋는 짓이요
큰 칭찬은 회초리 치기보다 오히려 낫다.
자식한테 바보 같다고 말하지 말고
차라리 좋은 낯빛을 보이는 게 낫다.
訓蒙 (훈몽)
- 退溪 李滉 (퇴계 이황)
多敎等揠苗 (다교등알묘)
大讚勝撻楚 (대찬승달초)
莫謂渠愚迷 (막위거우미)
不如我顔好 (부여아안호)
-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안대회 지음, 산처럼, 2002) 중에서
'한국 유학의 우뚝한 봉우리,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아버지'로 꼽히는 퇴계 이황 님(1501~1570)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조선시대 문신이자 유학자입니다. 1528년 소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534년 식년시에서 문과의 을과로 급제하였습니다.
외교 문서를 담당하던 승문원의 교감 등을 역임하고, 세자 교육기관인 시강원의 문학 등의 직위를 맡았고, 충청도 어사, 성균관 교수인 사성 등으로 활약했습니다. 단양군수, 풍기군수, 성균관대사성, 대제학, 지경연 등을 역임했습니다.
1549년 지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토계'에 거처하며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하다가 다시 관직에 불려 가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 등을 맡았고 1569년 이조판서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낙향했습니다.
조선 성리학 발달의 토대를 만들었고, 주리론 전통의 영남학파의 종조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심경후론」 「역학계몽전의」 「성학십도」 「주자서절요」 「자성록」 「송원이학통록」 등이 있습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2. 많이 가르친다고요? 그건 아예 뽑는 거래요
500여 년 전의 인물인 퇴계 이황 님의 시입니다. 어떠신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 교육에 대한 고민은 어찌 이렇게 비슷한 지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시 원래 제목은 '訓蒙훈몽'입니다. 어릴 '蒙(몽)'이어서 '訓蒙훈몽'은 '자식 교육'으로 새겨집니다.
많이 가르치는 것은 싹을 뽑아 북돋는 짓이요
多敎等揠苗 다교등알묘
- 이황 시 '자식 교육' 중에서
첫 구절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많이 가르치는 것(多敎다교)은 싹(苗묘)을 뽑는(揠알) 행위와 같다고 합니다. '揠알'은 무언가를 위로 뽑아 올린다는 뜻입니다. 묘목이 빨리 자라라고 손으로 쑥 뽑아 올리면 그 묘목이 죽고 말지 크게 자라겠는지요? 가만히 두면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며 잘 자랄 텐데요. 많이 가르치는 것은 그런 가능성마저 뿌리째 뽑아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되겠네요.
요즘 아이들 좀 보셔요. 방과 후에 각종 음악학원에, 체육학원에, 국영수 학원에 다니느라 저녁시간까지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지요? 이것이야말로 이황 님이 말하는 새싹을 뽑아 올리는 '揠苗(알묘)'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지요?
큰 칭찬은 회초리 치기보다 오히려 낫다
大讚勝撻楚 대찬승달초
- 이황 시 '자식 교육' 중에서
해월선사법설의 '물타아(勿打兒)' 기억나시지요? 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나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하느니라
- 「천도교 경전 공부하기」(라명재 주해, 모시는사람들) 중에서
아이를 때리는 것, 신체를 가격하거나 험한 말로 마음을 때리는 것은 아이 안의 신성을 멍들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때 묻지 않은 인간 본래의 마음인 동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 아이들은 아직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것이 훼손된다고 합니다. 이황 님은 회초리 대신 크게 칭찬해 주라고 하네요.
자식한테 바보 같다고 말하지 말고 / 차라리 좋은 낯빛을 보이는 게 낫다.
莫謂渠愚迷 막위거우미 不如我顔好 부여아안호
- 이황 시 '자식 교육' 중에서
이 구절을 읽으니 문득 백석 시인님의 시가 생각납니다. 시 '오리 망아지 토끼' 말입니다. 이 시의 2연을 잠깐 다시 읽습니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 매지야 오나라
- 「정본 백석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중에서
이렇습니다. 아이가 엄마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를 보고 사달라고 졸라도 아버지는 그냥 시늉만 합니다. 그건 안 돼! 그렇게 때를 쓰면 안 돼! 이렇게 야단치지 않습니다. 그냥 순순히 망아지야, 이리 온, 망아지야, 이리 온, 하며 겉으로 아이의 청을 받아주며 아이와 놀이를 하네요. 망아지가 이리 오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이렇게 아이에게 말했겠지요? 장난기 가득한 아이 같은 낯빛을 하고서 말입니다.
3. 천 원짜리 지폐 볼 때마다 떠오를 시 '자식 교육'
오늘 오후 아파트를 빠져나오는데 아파트 입구 조형물 기단에 아이 가방 네 개가 뒹굴고 있었어요. 푹, 하고 웃음이 났습니다. 어깨에 메는 가방들이었는데, 두 개는 발라당 뒤집어진 채였고, 하나는 옆으로 누웠고, 하나는 기단에 걸쳐져 있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무슨 일이 급했는지 저렇게 가방을 내팽개치듯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어디론가 중요한 볼일(?)을 보러 달려갔나 봅니다. 그 어수선한 모습들이 영화 필름 돌려보듯 다 보이는 겁니다.
그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내려오니까 아이들이 문방구 앞에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컴퓨터 모니터 앞에 모여서요. 게임을 하나 봅니다. 저 몰입의 시간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아마 학원을 '땡땡이'쳤을까요? 그래 잘했다, 가끔 그렇게 농땡이도 쳐야지, 그러나 너무 오래는 하지 말고!
천 원짜리 지폐에 오늘 읽은 시 '자식 교육'을 쓴 퇴계 이황 님의 초상화가 실려있습니다. 이제 천 원짜리 지폐를 볼 때마다 그의 시 '자식 교육'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네요. 맞아, 자식교육엔 칭찬과 좋은 낯빛이라고 했지!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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