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장석남 시 수묵 정원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8.
반응형

장석남 시인님의 시 '수묵 정원 6'에 들어갑니다. 이 정원은 참으로 마법 같은 정원입니다. 시인님이 구축해 놓은 신비로운 정원의 풍경 속에 마음을 담가 맑히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장석남 시 '수묵 정원 6' 읽기

 
수묵(水墨) 정원 6

- 모색(暮色)

 
- 장석남
 
귀똘이들이
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
수고로운 저녁입니다.
가끔 단추처럼 핑글
떨어지는 별도 
있습니다
 

- 장석남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 2001) 중에서

 
장석남 시인님은 1965년 인천 출신으로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1991년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을 낸 것을 비롯,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마당에 배를 매다」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을 냈습니다. 산문집으로는 「물의 정거장」 「물 긷는 소리」  등이 있습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지훈상, 편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과연 누가 별을 운행할까요?

 
장석남 시인님의 시 '수묵 정원 6', 어떻게 읽으셨나요?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이 시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최하림 시인님이 장석남 시인님의 시에 대해 쓴 해설 문장 하나를 먼저 읽겠습니다.
 
장석남의 시는 세계를 현실로 드러내거나 세계에 대하여 발언하고자 하지 않는다.
세계를 추억 속으로 들어가 재생시키고자 하는 무욕한 바람을 갖는다.

- 장석남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 2001) 중에서

 
다행입니다. 장석남 시인님의 시는 난해하지도 현학적이지도 않고, 별다른 주의·주장이 없으며, 세계에 대하여 발언하고자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시인님은 추억 속으로 들어가 세계를 재생시키려 한다고 합니다. 그런 시인님의 시를 '부드럽고 연한 상상'이라고 하네요.
 
이런 조언을 바탕으로 '수묵 정원 6'을 다시 읽어봅니다. '수묵(水墨)'은 '빛이 엷은 먹물'을 말합니다. 그러니 '수묵 정원'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풍경을 가진 공간이겠네요. 이 시의 소제목은 '모색(暮色)'인데, '날이 저물어가는 무렵의 어스레한 빛' 또는 '저녁때의 경치'를 말합니다. 
 
시의 제목에서 우리는 낮 동안 빛에 의해 드러났던 갖가지 색깔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 흑과 백만이 남은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니 하루의 온갖 소요가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런 고요를 구축해 놓고 시인은 불쑥 이렇게 말합니다.
 
귀똘이들이 / 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 / 수고로운 저녁입니다

- 장석남 시 '수묵정원 6' 중에서
 

이 문장은 참 신기한 문장입니다. 하나의 문장 속에서 귀뚜라미가 합창을 하는 소리가 생생히 들리니 말입니다. 시인님이 귀뚜라미가 노래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또 별이 형형하게 빛나는 광활한 밤하늘도 보이네요.
 
그런데 시인님은 왜 귀뚜라미들이 별의 운행을 맡았다고 했을까요? 
 
깜깜한 밤입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귀뚜라미 '떼창'소리뿐이네요. 보이는 것이라고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 뿐이네요. 그리고 그대는 귀뚜라미 소리(청각)와 별빛(시각)이 어우러지는 풍경의 가운데 서 있네요. 그러니 불현듯 그대는 그대 자신도 모르게 순진한 동심이 되어 귀뚜라미들이 별들을 운행하고 있군, 녀석들 참 수고가 많아, 하면서 밤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 보게 되겠네요. 
 
아니, 귀뚜라미가 별을 운행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럼, 이 깜깜한 밤에 깨어있는 생명이 그대와 저 귀똘이들뿐인데, 귀똘이 말고 대체 누가 잠도 안 자고 깨어서 그런 수고로운 일을 한단 말인가요! 그렇다고 그대가 별들을 운행하는 건 아니니까요.
 

"귀똘이들이별의운행을맡아가지고는수고로운저녁입니다"-장석남시'수묵정원6'중에서.
"귀똘이들이 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 수고로운 저녁입니다" - 장석남 시 '수묵 정원 6' 중에서.

 


 

3. 별똥별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얼까요?

 
가끔 단추처럼 핑글 / 떨어지는 별도 / 있습니다

- 장석남 시 '수묵 정원 6' 중에서

 
이 밤에 수고롭게 별들을 운전하던 귀뚜라미 가운데 몇 마리가 깜박 졸았던 걸까요? 어떤 귀뚜라미의 부주의(!)로 별똥별 하나가 저 먼 산 너머로 떨어지고 말았네요. 시인님은 그 유성(流星)을 옷에서 단추가 떨어지듯이 핑글 떨어졌다고 하네요. 이 구절은 우리 속 깊이 잠들어 있던 천진난만한 아이를 다시 불러내었네요. 어느 귀똘이 녀석이지? 너희에겐 오늘 맛있는 야참 안 줄 거야!
 
세상에나, 고작 문장 2개뿐인데, 시 '수묵정원 6'은 온 우주를 다 품었네요. 우리 아무리 바빠도 이렇게 신비로운 정원에는 가끔씩 방문해야겠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별이 빛나는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윤동주 서시 읽기

오늘은 우리 모두 사랑하고 우러르는 윤동주 시인님(1917~1945)의 '서시'를 읽습니다. 그가 25세 때 쓴 이 시는 우리가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가 되었습니다. 아홉 줄짜리 짧은 시이지만 매우 두꺼운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