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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현종 시 안부

by 빗방울이네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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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님의 시 '안부'를 만납니다. 과연 시인님이 궁금해하는 '안부'는 무엇일까요? 시인님이 퍼올려주신 따뜻한 사유의 우물물을 마음에 적시며 저마다의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현종 시 '안부' 읽기

 
안부
 
- 정현종(1939~ , 서울)
 
도토리나무에서 도토리가
툭 떨어져 굴러간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해서.


- 「정현종 시선집 - 섬」(정현종 지음, 열림원, 2009년) 중에서
 

2. 뒤를 돌아보는 쪽인가요?

 
도토리나무에서 도토리가 / 툭 떨어져 굴러간다

- 정현종 시 '안부' 중에서


시를 끝까지 읽고 다시 이 첫 줄로 왔네요. 마음을 다른 데 두고 있던 어떤 이라면, 이 시를 읽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인님, 그래서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요? 도토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네요. 도토리 떨어지는 일 다반사(茶飯事)인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된단 말인가요?라고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 정현종 시 '안부' 중에서


마음을 다른 데 두고 있던 아까 그이는 또 이럴 수 있습니다. 시인님, 그게 뭐 그리 궁금하다고 뒤를 돌아보시나요? 가을에 다 익은 도토리 떨어지는 일, 그건 자연의 법칙 아닌가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갈립니다. 그게 궁금한 사람과 궁금하지 않은 사람. 그게 대수로운 사람과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요. 그대는 어느 쪽인가요? 뒤를 돌아보는 쪽인가요?
 
시인님은 '뒤를 돌아보았다'라고 하시네요. 도토리가 톡 떨어져 굴러가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보았다'고요. 여기서 우리 마음의 골짜기에 불이 환하게 켜집니다. 왜 그럴까요? 도토리가 톡 떨어져 굴러가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보는 일은 아무나 보편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토리가 떨어져 굴러가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본 행위의 순간은 시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역동적인 순간입니다.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해서

- 정현종 시 '안부' 중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네요. 뒤를 돌아본 이유는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라네요. 이 점,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바쁜 세상에, 자기 갈 길 바쁜 세상에, 방금 도토리를 떨어뜨린 도토리나무의 안부 같은 것을 누가 궁금해하겠는지요?
 
그러나 시인님은 궁금하다고 하네요. 이런 류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시인님의 태도에 많은 이들은 그 촉촉했던 물기가 세상일에 다 말라버린 것 같은 마음이 일순 멎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 맞아, 그게 궁금할 수도 있겠구나!
 
도토리는 도토리나무의 자식이네요. 가을이 되었고요, 도토리나무는 속이 꽉 찬 도토리에 모자만 씌워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도토리나무는 얼마나 섭섭했겠는지요? 시인님은 그런 도토리나무의 심사(心思)를 생각하고 있네요. 아, 얼마나 다정한 시인님인지요?
 
안부는 한자로 '安否'라 씁니다.

편안할 '안(安)', 아닐 '부(否)'.

이미 글자 안에 '편안한지, 아닌지'라는 뜻이 들었네요. 어떤 대상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 또는 인사로 그것을 전하거나 묻는 일을 안부라고 합니다.
 
시인님은 방금 자식과 헤어진 어미가 '편안한지 아닌지' 궁금하고 걱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자세는, 이런 자세가 되는 이의 삶이 총체적으로 들어있는 자세일 것입니다. 이 또한 얼마나 다정한 일인지요?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해서'. 우리의 마음을 저 아득히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 속으로 데려다주는 구절입니다.
 

정현종시안부중에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 정현종 시 '안부' 중에서

 

 

3. '만물의 안부도 항상 궁금합니다'

 
이처럼 자연과 깊이 교감하는 일은 세상 만물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능력'일 것입니다. 세상 만물의 입장이 되어보아야 생기는 마음일 것입니다.

자연은 이용/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친구라는 생각, 나는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도토리처럼 자연의 일부라는 자각이어야 가능하겠지요?
   
시 쓰기는 사람세상과 세상사람의 안부를 묻는 행위며
시는 필경 안부를 묻는 말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공동체의 건강과 개인들의 항상 모자라는 평화와 기쁨을 위해 말을 건네는 것이지요.
사람세상의 안녕뿐만 아니라 만물의 안부도 항상 궁금합니다.
가령 내 뒤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 정현종 시인님의 '2001년 미당문학상 수상소감' 중에서


이처럼 시인님은 '만물의 안부도 항상 궁금'하다고 하시네요. 시인님처럼 ‘만물의 안부도 항상 궁금’해 만물을 깊이 사랑하는 눈으로 만물을 들여다보면 만물은 저마다 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던지요.

그러므로 땅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본 시인님은 그동안 도토리를 품고 있던 도토리나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것도 반사적으로요.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정현종 시인님의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을 만나 보세요.

 

정현종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시인님의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을 만납니다. 이 시는 어떤 좋은 힌트를 우리에게 건네줄까요? 시인님이 길어 올린 사유의 우물물로 마음을 씻으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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