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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진규 시 조심

by 빗방울이네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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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시인님의 시 '조심'을 만납니다. 이 시에는 어떤 유용한 삶의 팁이 들어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음미하며 저마다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진규 시 '조심' 읽기

 
조심(操心)
 
- 박진규(1963년~ , 부산)
 
가까이 가서 보니 탱자나무 울타리 속
작은 새들이 오글오글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다 바빴습니다
저 많은 가시 요리조리 피해 가며
탱자나무 울타리 속 커다란 미로를 조각하는 중입니다
내 안에도 저 새처럼 많은 것들이 있어
이토록 시끄럽게 지저귀며 복작대는 중입니다
그러다 불현듯 새떼가 몽땅 날아가 버렸습니다
나는 탱자나무가 새들에게 한 말이 있을 것만 같아서
조용해진 미궁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탱자나무는 그저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박진규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신생, 2016년 1쇄, 2017년 2쇄) 중에서

 

2. '내 안에도 저 새처럼 많은 것들이 있어'


시 '조심(操心)'은 2014년 문학계간지 「푸른사상」 가을호에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 50대 초반에 쓰인 시네요.
 
이 시는 '오늘의 좋은 시'에 선정되어 「2015 오늘의 좋은 시」(이혜원·맹문제·김석환·이은봉 엮음, 푸른사상, 2015년)에 게재되기도 했네요.
 
시를 만나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탱자나무 울타리 속 / 작은 새들이 오글오글하였습니다

-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이 시의 서정적 자아(抒情的 自我 ; 시에 형상화되어 있는 사상이나 감정의 주인공)는 작은 새들이 놀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만났네요. '작은 새들이 많구나' 하고 지나칠 법도 한데, 가까이 다가갔네요. 이 한 발걸음이 시를 발화시켰네요.  
 
무슨 일을 하는지 다 바빴습니다 / 저 많은 가시 요리조리 피해 가며 / 탱자나무 울타리 속 커다란 미로를 조각하는 중입니다

-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탱자나무는 가시 많은 나무의 대표 선수라 할만합니다. 3~5센티미터의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가지마다 촘촘히 달려있습니다. 그런데도 새들은 아주 자유롭게 바쁘게 가시 사이를 휙휙 오가고 있네요.
 
새들은 어떻게 해서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법 없이 재빠르게 가시와 가시 사이를 오갈 수 있을까요? 이는 매우 신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서정적 자아는 마치 묘기라도 부리는 듯 뾰족한 가시에 다치지 않는 새들은 '커다란 미로'를 조각하는 중이라고 보았네요. 그렇겠네요. 탱자나무 울타리는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참으로 복잡한 미로의 세계가 아닐 수 없겠네요.
 
내 안에도 저 새처럼 많은 것들이 있어 / 이토록 시끄럽게 지저귀며 복작대는 중입니다

-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서정적 자아는 문득 자신을 들여다보네요. 자신의 마음도 쉼 없이 지저귀며 들끓고 있는 이런저런 세상사로 인해 괴로운 탱자나무 미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지요? 
 
그러다 불현듯 새떼가 몽땅 날아가 버렸습니다

-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나무에 놀던 새떼가 일제히 날아가버리는 풍경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 새들이 참 많이도 날아가네,라는 것이 일반적인 감정이겠지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몽땅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는 일은 꽤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기도 하겠네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서정적 자아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나 봅니다. 
 
나는 탱자나무가 새들에게 한 말이 있을 것만 같아서 / 조용해진 미궁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서정적 자아는 새들이 불현듯 일제히 날아간 까닭이 '탱자나무가 새들에게' 어떤 말/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궁금해서 새들이 조각하던 탱자나무 미궁의 내부를 들여다봅니다. 과연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박진규시조심중에서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3. '操心'의 함의는 과연 무얼까요?


탱자나무는 그저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서정적 자아가 발견한 것은 '그저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고' 있는 탱자나무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 의미를 짐작해 보기 위해 제목 '조심'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겠네요. 지금까지 시를 읽어내려 오는 동안 제목 '조심'을 받쳐주는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조심(操心)'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쓰는 일을 말합니다. 
 
한자를 봅니다. '잡다'는 뜻을 가진 '조(操)'는 손 '수(手)'와 울 '소(喿)'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操)'의 구조가 흥미롭네요. '울다'와 '떠들썩하다'는 뜻을 가진 '소(喿)'는 나무(木) 위에 새들이 떼 지어 지저귀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나무 위의 입(口)이니 당연히 새의 입이겠고요, 그런 새의 입이 여러 개(品)니 새떼입니다.
 
이렇게 새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소(喿)'에 손 '수(手)'자를 결합한 '조(操)'는 손으로 새들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요, '조(操)'는 '잡다'는 뜻 말고도 '부리다' '조종하다' '다가서다' 같은 여러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어 부리는 것을 '조종(操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의 제목 '조심(操心)'이라는 단어가 마음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들을 다루듯이(操; 잡거나 쫓아버리거나) 마음(心)을 부리는 것, 그리하여 마음의 평정을 얻어 잘못이나 실수가 없게 하는 것, 그것이 '조심(操心)'의 함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인님이 제목에 숨겨둔 그림을 찾았으니, 우리는 이 시의 마지막 행을 다시 읽습니다.
 
탱자나무는 그저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박진규 시 '조심' 중에서

 
이 마지막 행은 새들이 떠난 현상을 보이는 그대로 묘사한 서정적 자아의 진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게 되었듯이, 시인님은 이 구절에 '조심(操心)'의 속뜻을 슬쩍 걸쳐 두었네요.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는 일, 내부의 시끄러운 지저귐을 그저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시인님의 전언인 것 같습니다. 이는 자신의 인식 내용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부단히 성찰해 나가는 메타인지의 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박진규 시인님의 시 '10월의 문진'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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