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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태춘 노래 빈산

by 빗방울이네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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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가수님의 노래 '빈산'을 만납니다. 정태춘 가수님의 노래 중 '비극적 서정의 백미'로 꼽히는 노래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풍경으로 마음을 씻어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태춘 노래 '빈산' 읽기

 

빈산

 

- 작사·작곡·노래 정태춘 (1954년~ , 경기도 평택)

 

산모퉁이 그 너머 능선 위

해은 처연하게 잠기어만 가고

대륙풍 떠도는 먼 갯벌 하늘 위

붉은 노을 자락 타오르기만 하고

 

억새 춤추는 저 마을 뒤 빈산

작은 새 두어 마리 집으로 가고

늙은 오동나무 그 아래 외딴집

수숫대 울타리 갈바람에 떨고

 

황토 먼지 날리는 신작로

저녁 버스 천천히 떠나고

플라타너스 꼭대기 햇살이 남아

길 아래 개여울 물소리만 듣고

 

먼바다 물결 건너 산 은사시

날 저문 산길 설마 누가 올까

해는 산 너머 아주 져버리고

붉은 노을 자락 사위어만 가고

 

저기 저 빈산에 하루가 가고

붉은 노을 자락 사위어만 가고

 

- 정태춘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정태춘 지음, 천년의시작, 2019년)중에서

 

2. "노래 '빈산'은 내 비극적 서정의 백미"

 

정태춘 가수님의 노래 '빈산'은 2002년 발매된 정태춘 박은옥 제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에 실려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때는 박은옥 가수님이 불렀는데, 데뷔 40주년을 맞아 2019년에 나온 앨범 「사람들 2019」에 정태춘 가수님의 목소리로 다시 실렸습니다.

 

'빈산'은 정태춘 가수님 스스로도 '내 비극적 서정의 백미'로 부를 만큼 자신의 대표곡의 하나로 생각하는 노래입니다.

 

1978년 첫 앨범 「시인의 마을」이 후 인간 소외와 자유에 대한 성찰,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서정적 가사와 가락에 담아 온 그였습니다. 

 

그런데 이 '빈산'을 만든 2002년 이후 정태춘 가수님은 2012년 제11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가 나오기까지 10년 동안 침잠합니다.

 

그 텅 빈 마음이 이 '빈산'에 들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득합니다. 바른 길을 걸어가기 위해 시대와 불화하면서 겪었어야 했을 고통과 절망, 그 끝에 찾아오는 허무감 말입니다.

 

일전에 정태춘 가수님이 '다스뵈이다'라는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빈산'을 부르고 있는 영상을 봅니다.

 

정태춘 가수님 두어 걸음 앞에 50여 명의 관객이 있는 자그마한 스튜디오네요. 암갈색 클래식 기타를 든 가수님은 검은 소파에 앉았고요. 주변 사물들은 온통 무채색이네요. 그로 인해 '빈산'의 기타 전주에 귀가 온통 쏠리네요.

 

산모퉁이 그 너머 능선 위 / 해는 처연하게 잠기어만 가고

대륙풍 떠도는 먼 갯벌 하늘 위 / 붉은 노을 자락 타오르기만 하고

- 정태춘 노래 '빈산' 중에서

 

정태춘 가수님은 이즈음 60대 후반으로 들어선 나이입니다. 짧은 머리카락은 희게 변했네요. 오른쪽으로 쏠린 그의 머리카락이 곧은 성격을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악보대에 놓인 악보를 보면서 노래를 시작합니다. 첫 소절을 어떻게 시작할까 궁금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합니다. 그는 아무도 듣지 않아도 좋다는 듯이, 마치 자신 앞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노래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노래 속으로 들어가 오로지 마음으로 노래하는 노래인 것만 같습니다.

  

'해는 처연하게'. 가수님은 이 대목에서 황혼에 접어든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까요? 고개를 오른쪽으로 꼬는 가수님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오네요. 음정이 높은 대목인 '대륙풍 떠도는'에서 그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더 깊어진 목소리, 옆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한 표정의 그를 보고 있으니 가슴에 '붉은 노을 자락'이 타오르기 시작하네요.    

 

억새 춤추는 저 마을 뒤 빈산 / 작은 새 두어 마리 집으로 가고

늙은 오동나무 그 아래 외딴집 / 수숫대 울타리 갈바람에 떨고

- 정태춘 노래 '빈산' 중에서

 

그는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그는 잘 보이려 하지 않고 꾸미려 하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의 짧은 머리카락들은 손가락으로 몇 번 빗은 듯 저마다 자유롭고, 짙은 회색 재킷 속에 검은 목티를 받쳐 입은 그의 차림새는 단출하기 그지없네요. 그런데요, 그런 그가 정말 멋있습니다.

 

이처럼 꾸밈없는 그의 모습이 왜 이리 가슴을 울릴까요? 그의 노래 때문이겠지요? 바람처럼 자유롭고 비처럼 촉촉한 노래 말입니다. 새들도 집으로 돌아간 저녁, '빈산'은 어둠 속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갈바람에 떨고 있는 수숫대까지 바라보는 '빈산'의 눈길입니다. 작고 낮고 소외된 것들을 향하는 섬세하고 따스한 눈길이네요. 바로 가수님의 눈길이네요.

 

"붉은노을자락타오르기만하고"-정태춘노래'빈산'중에서.
"붉은 노을 자락 타오르기만 하고" - 정태춘 노래 '빈산' 중에서.

 

 

3. '해는 산 너머 아주 져버리고'

 

황토 먼지 날리는 신작로 / 저녁 버스 천천히 떠나고

플라타너스 꼭대기 햇살이 남아 / 길 아래 개여울 물소리만 듣고

- 정태춘 노래 '빈산' 중에서

 

도회지로 가는 마지막 버스였겠지요? 누군가를 싣고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네요. 그렇게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은 언제나 가슴 먹먹하게 하네요. 혼자 낯선 곳에 동그마니 버려진 듯 외로움이 온몸을 감싸옵니다. 

 

그렇게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던 신작로를 거닐던 가수님은 '플라타너스 꼭대기'에 남아있던 저녁 햇살이 '길 아래 개여울 물소리'를 듣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쓸쓸했으면요. 이렇게 사물들이 말을 걸어오는 적막한 공간이네요. 

 

먼바다 물결 건너 산 은사시 /날 저문 산길 설마 누가 올까 

해는 산 너머 아주 져버리고 /붉은 노을 자락 사위어만 가고

저기 저 빈산에 하루가 가고 / 붉은 노을 자락 사위어만 가고

- 정태춘 노래 '빈산' 중에서

 

은사시나무가 나오네요. 자작나무처럼 줄기가 흰 나무입니다. 그래서 낙엽이 진 계절에 멀리서 숲을 보면 은사시나무가 하얗게 서서 혼자 숲을 지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은사시는 '우리의 숲'을 지키는 가수님일까요? '날 저문 산길 설마 누가 올까'. 이 구절에서 고독감이 고성능 앰프로 증폭되네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멀어져 가는 사랑했던 사람들, 잊히는 다정했던 추억들, 다시 오지 않겠지요?

 

'해는 산 너머 아주 져버리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해도 아주 져버린다고 하네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아 먹먹해진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해가 아주 져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붉은 노을마저 점점 사그라들고 있는데요. 그러면 길도 안 보이고 춥고 무서울 텐데요. 

 

그래도 괜찮겠지요? 이렇게 깊은 울림으로 고단한 우리네 마음을 토닥여주는 가수님이 있으니까요. 늘 변치 않는 마음으로 옆집 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우리를 품어주는 가수님이 있으니까요. 아, 가수님도 괜찮겠지요? 이렇게 뜨겁게 사랑하는 우리가 있으니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태춘 가수님의 노래 '고향집 가세'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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