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님의 연인 '자야' 님이 쓴 「내 사랑 백석」의 문장을 만납니다.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 이백 시인님의 시 '자야오가'도 만나고요. 이 두 가지 글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내 사랑 백석」 문장 읽기
우리가 사랑하는 백석 시인님의 연인으로 '자야'라는 이름의 여인을 기억하실 겁니다.
본명은 김영한 님(1916~1999, 서울)입니다.
집안 사정으로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기명 김진향)이 되어 가무의 명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1936년 함경남도 함흥에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한 백석 시인님(1912~1996, 평북 정주)과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이는 왜 이름이 '자야'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함흥에서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시절, 어느 날 김영한 님이 서점에서 「자야오가(子夜吳歌)」라는 당시선집을 사서 백석 시인님에게 건네었다고 합니다. 시집을 받아 든 시인님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당신은 이를 반가이 받아 들고 한참 동안 말없이 책장만 뒤적뒤적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당신에게 아호(雅號)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子夜)'라고 합시다!"
- 「내사랑 백석」(김자야 지음, 문학동네, 1995년 1판 1쇄, 2019년 3판 1쇄) 중에서
2. 이백 시 '자야오가' 읽기
그러니까 백석 시인님의 연인 김영한 님의 '자야'라는 아호는 당나라 이백 시인님의 시 제목에서 따왔네요.
이백 시인님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는 모두 4편(봄, 여름, 가을, 겨울)으로 된 시입니다. '자야(子夜)'라는 여인이 정인을 그리워하는 것을 노래한 시입니다. 원래 진나라 악부 '자야가'의 제목을 따온 것인데, '오가(吳歌)'는 진나라가 오나라를 평정하여 도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세 번째 가을 편입니다.
子夜吳歌(자야오가) 3 오나라 자야의 노래 3
- 이백(701~762, 중국 당)
長安一片月(장안일편월) 장안에 뜬 조각 달
萬戶擣衣聲(만호도의성)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들리네
秋風吹不盡(추풍취불진) 가을바람 끝없이 부니
總是玉關情(총시옥관정) 옥관에 계신 임 그리는 마음뿐이라
何日平胡虜(하일평호로) 어느 날 오랑캐 평정하고서
良人罷遠征(양인파원정) 임께선 먼 출정 마치시려나?
- 「이태백 명시문 선집」(황선재 역주, 박이정, 2013년) 중에서
시 속의 단어를 잠깐 살펴볼까요?
'도의(擣衣)'는 옷을 다듬는 다듬이질을 말합니다. '옥관(玉關)'은 전장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옥관정(玉關情)'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네요. '호로(胡虜)'는 서북쪽의 오랑캐(흉노)를 말하고요, '양인(良人)'은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당신'이라는 뜻입니다.
시 속에서는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아내가 남편에게 보낼 겨울옷을 짓고 있습니다. 그 다듬이소리가 집집마다 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늦가을이었을까요? 가을바람이 끝없이 불고 있다고 하고요. 그런데 이 끝없이 부는 가을바람이 바로 임을 그리는 마음이라고 했네요.
그래서 이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구절이 '총시(總是)'입니다. '총시'는 '모두'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앞행의 가을바람이 모두 임을 그리는 마음이라는 말이네요. 참으로 세상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그리움이네요. 그것이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그리움이 멀리 계신 임께도 전해졌겠지요?
3. 서울 성북동 '실상사'가 생긴 사연은?
이처럼 애절한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자야(子夜)'라는 이름의 여인인데, 백석 시인님은 하필이면 이토록 애처로운 이름을 따 사랑하는 여인을 부르는 아호로 붙여주었을까요?
그 이름이 가진 애틋한 사연 때문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1936년 처음 만나 짧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 1939년 이별한 뒤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현세에서의 두 사람의 인연은 잠깐이었고, 그리움은 이백 시인님의 시 '자야오가'에 나오는 가을바람처럼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도 남은 크기였네요. 그 그리움은 그치지 않는 가을바람, '秋風吹不盡(추풍취불진)'이었네요.
그 그리움 속에 자야 님은 평생을 백석 시인님을 추모하는 사업에 매진했고,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시가 천억 대의 서울 성북동 땅을 시주했습니다. 그 부지에 생긴 절이 바로 지금의 길상사입니다.
자야 님이 쓴 「내 사랑 백석」에 따르면, 자야 님이 숨을 거두기 열흘 전 이생진 시인님이 물었다 합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느냐"고요. 이 물음에 자야 님은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세상을 가득 채운 그리움이더니, 천지를 가득 채운 사랑이네요. 우리 모두 사랑하는 백석 시인님의 시 한 구절을 어찌 돈으로 헤아리겠는지요?
백석 시인님을 사랑하고 또 그이의 시를 사랑한 이였고, 물질보다 정신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 분이셨네요. 그래서 가진 것 훌훌 털어 아낌없이 세상에 내놓으셨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 '적경'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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