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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by 빗방울이네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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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님의 시 '조그만 사랑노래'를 만납니다. 아득하고 쓸쓸한 풍경 속에 들어갑니다. 때로 현실이 막막할지라도 '조그만 사랑노래'로 따스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으며 외로운 마음을 데우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읽기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1938년~ , 서울)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며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송이 눈.

 

- 황동규 詩選 「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년 초판, 1988년 중판) 중에서

 

2. '어제를 동여맨 편지'란 무얼 말할까요?

 

황동규 시인님의 시 '조그만 사랑노래'는 시인님 30대 중반인 1974년 즈음 쓰인 시입니다. 어떤 시일까요?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중에서

 

어제는 끈으로 감겨 묶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오늘과 어제는 연결될 수 없습니다. 그런 오늘은 어제와 완전히 다른 시간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이로부터 이런 내용의 슬픈 편지가 도착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사랑하고 우러르던 어떤 대상과의 결별, 평화롭고 아름답던 어떤 시간/시대와의 결별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 어느 쪽이든 그런 사람/시간과 결별하고 어제와 단절되어 있는 서정적 자아는 지금 막막하고 아득한 상황이네요.

 

늘 그대 뒤를 따르던 / 길 문득 사라지고 /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중에서

 

결별의 상황에서 막막한 화자는 사랑하는 그이와 늘 함께 하던 '길'도 문득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 '길'은 여전히 있겠지만 이제는 그이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길 아닌 것들'. 그이의 체온과 표정, 그이와 나 사이에 흐르던 감정의 따스한 강물도 이제 사라져 버렸다고 하네요. 

 

여기저기서 어린 날 /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중에서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 시인님의 어린 날이면 한국전쟁 후 폐허 속의 시간이네요. 그 시간의 아이들은 주로 흙과 돌과 풀과 나무와 바람과 햇빛과 놀았습니다. 그 어릴 때 놀아주던 돌들이니 다정했던 돌들이네요.

 

그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라고 합니다. 다정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잃어버린 고통스럽고 암담한 현실, 화자의 우울한 심정을 보여주는 풍경이네요.

 

"사랑한다,사랑한다"-황동규시'조그만사랑노래'중에서.
"사랑한다, 사랑한다" -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중에서.

 

 

3. 그래도 쓸쓸함을 지나오면 따스해지길!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중에서

 

'찬찬히 깨어진 금들'은 앞에서 나온 '돌들'과 연결되어 안타깝게도 깨어진 유리창 같은 세상/현실을 떠올려주네요.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은 외로운 화자는 그렇게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대고 그래도 '사랑한다 사랑한다'라고 되뇌고 있네요. 그 뜨거운 마음이 어디로든지 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긴 눈 날린다 / 땅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 몇송이 눈

-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 중에서

 

'성긴 눈'. 굵고 탐스런 함박눈이 아니라 가느다란 눈송이들이 드문드문 날리고 있네요. 포근함이나 평화로움보다는 스산하고 쓸쓸한 느낌인데, 이 역시 화자의 심정입니다.

 

'성긴 눈'은 '땅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떠도는' 존재라고 하네요. '몇송이 눈'. 화자 자신을 포함해 아픈 시간을 견디며 가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네요. 

 

그 사람들이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닌다고 합니다. 절망적인 현실을 바라보면서 어디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하는 외로운 마음들이네요. 삶에서 자주 좌절하고 헤매는 우리네 모습도 언뜻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따뜻해지겠요? 이렇게 연민과 사랑의 손길로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시인님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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