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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이상 시 거울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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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시인님의 시 '거울'을 봅니다. 시인님이 건네주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거울 속에 비춰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상 시 '거울' 읽기

 
거울
 
-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 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만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 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시전집」(이승훈 지음, 문학사상사, 1989) 중에서

 
이상 시인님(본명 김해경, 1910~1937)은 서울 출신으로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 서울대)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을 편집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했습니다. 이후 「조선과 건축」에 시 '이상한 가역반응'으로 등단했습니다.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다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된 시 '오감도', 1936년 「조광」에 발표된 소설 '날개'가 있습니다. 1937년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지병으로 28세의 짧은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당대 문학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반발해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 환영과 실재를 혼동하진 않나요?

 
이상 시인님의 시 '거울'은 1933년 「카톨릭청년」지에 발표됐습니다. 시인님이 24세에 쓴 시네요. 가장 난해한 시를 쓴 시인으로 꼽히는 이상 시인님, 청년 이상은 시 '거울'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요? 시로 가는 문은 여러 개이니까, 우리 가까이 있는 문부터 열어볼까요?
 
빗방울이네는 이 시를 읽고 난 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루 몇 번씩이나 거울을 보면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뒤집힌 이미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빗으면 '거울 속의 나'는 왼손으로 머리를 빗고 있지요. 그런데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왼손이 머리를 빗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울 속의 '뒤집힌 이미지'는 분명히 '환영(幻影)'인데도 실재의 나와 같다고 혼동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지요.
 
빗방울이네는 이 시를 읽고 다시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그런데요, '뒤집힌 이미지'라는 생각을 하자 '거울 속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매우 낯선 인물입니다. 오른손으로 빗질하는 나와 왼손으로 빗질하는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지요?
 
너무 익숙해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네요. 프레임에 갇혀있었네요. 시 '거울'은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환영/허상을 실재라고 인식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상시거울중에서
이상 시 '거울' 중에서.

 

 

3. 숨어있는 장치를 발견하고 허상에서 탈출하기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 이상 시 '거울' 중에서

 
거울은 이렇게 일상에 매몰된 '나'를 문득 깨우쳐주는 것만 같습니다. 일상에 매몰되면 허상과 실상의 혼동에서 생긴 오류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게 되겠네요. 그런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오류를 당연한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입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 / 또꽤닳았소

- 이상 시 '거울' 중에서

 
이상 시인님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의 참삶이 아닌, 일제에 의해 포획된 시간이었습니다. 환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거울 속의 나', 포획된 환영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겠지요? 그런 속에서 인간은 도구로 전락하고 말겠네요.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 것이오

- 이상 시 '거울' 중에서

 
환영과 실재의 혼동은 오늘날의 우리네 일상에서 얼마나 비일비재하겠는지요? 특히 사이버공간으로 삶의 영역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우리는 환영과 실재의 구분이 점점 힘들어지는 시간에 살고 있네요.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 이상 시 '거울' 중에서

 
'거울 속의 나'와 악수를 하려고 분명히 오른손을 내밀었는데 '거울 속의 나'는 왼손을 내밉니다. 시인은 이렇게 '거울 속의 이미지'가 반전된 이미지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줍니다. 이것이 하나의 '장치'라는 것을요. 그 장치에서 빠져나오라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 시 '거울'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히려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하려 한다고 하네요. 근심하고 진찰해야할 대상은 바로 거울 밖의 자신인데 말입니다.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일상성의 함정을 일깨워주는 시 한 편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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