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홍 시인님의 동시 '현이네 집'을 만납니다. 이 시가 실린 동시집 「현이네 집」은 최초의 '디카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님이 건네주는 아주 특별한 동심의 여울에 마음을 담가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주홍 동시 '현이네 집' 읽기
현이네 집
- 이주홍
오늘도 어제같이
따스한 날
충이랑 식이랑 준이랑
현이네 집에 와
말판놀이 하고 있다
밥 먹으러 가라 두번 세번
할아버지가 재촉을 해도
마루 밑에 옹기종기
신들을 벗어 놓은 채
아이들은 들은둥 만둥
말판놀이에만
정신을 뺏기고 있다.
- 「현이네 집」(이주홍 동시, 최시병 사진, 도서출판 보리밭, 1983) 중에서
소설가이자 아동문학가인 향파 이주홍 작가님(1906~1987)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1928년 「신소년」에 동화 당선, 1929년 조선일보에 단편소설입선으로 본격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동시 동화 등 아동문학은 물론 시 소설 시나리오 등의 분야에서 200여 편을 발표했습니다. 대표작으로「현이네집」(동시집) 「메아리」(동화집) 「이순신장군」(소년소설) 「탈선춘향전」(시나리오) 등이 있습니다. 부산시문화상, 경난도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대한민국문화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최시병 사진작가님(1931~2000)은 일본 교토 출신으로 1979년 사진작가로 등단하여 부산일보 부일사진동우회 창립 및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사진뿐만 아니라 수필 동시 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습니다. 저서로는 동시집 「강마을 저녁놀」 사진집 「최시병 사진집」, 연구서 「사진예술」 등이 있습니다. 문화공부부 장관상, 한국잡지언론상, 동양문학신인상(시) 등을 받았습니다.
2. 최초의 디카시집에서 '천진난만'을 만나다
이주홍 동시집 「현이네 집」은 매우 특별합니다. 1983년도에 발간됐는데, 모두 45편의 동시와 사진 45장이 실려있습니다. 동시 한편에 사진 한 장씩 짝을 맞추어서요. 사진은 당시 필름카메라로 찍은 것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디카시의 '원조'라 할만 합니다.
최근에 새로운 문예장르로 주목받는 '디카시'는 이렇게 40년 전에 출발했네요.
그럼, '최초의 디카시집' 「현이네 집」으로 들어가 볼까요?
와우, 모든 페이지가 칼라입니다. 책 제목이 된 동시 '현이네 집'은 58~59쪽에 실려있네요. 왼쪽에는 사진이 오른쪽에는 동시가 있습니다.
사진이 참 재밌습니다. 눈이 희끗 남아있는 겨울의 초가지붕이 보이네요. 그 아래 툇마루에 아이 넷이 둘러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고요.
오늘도 어제같이 / 따스한 날
충이랑 식이랑 준이랑 / 현이네 집에 와 / 말판놀이 하고 있다
- 이주홍 동시 '현이네 집' 중에서
아, 말판놀이를 하고 있네요. 윷놀이 말이에요. 그런데 아이들 뒤에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어요. 풍덩한 한복바지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장갑을 낀 할아버지는 무언가 마땅찮은 표정입니다.
밥 먹으러 가라 두번 세번 / 할아버지가 재촉을 해도
- 이주홍 동시 '현이네 집' 중에서
아, 그랬네요. 사진을 보니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이네요. 저녁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어서 할아버지가 집에 가라고 재촉합니다. 이제 그만하고 너희 집에 가서 밥 먹어라. 그만큼 놀았으면 됐다 아니가! 이렇게 재촉하는 할아버지는 얼마나 정다운지요. 이렇게 재촉하는 할아버지 말은 아무리 모른 척해도 아무 탈 없는, 얼마나 따뜻한 다정함인지요. 우리 할아버지!
마루 밑에 옹기종기 / 신들을 벗어 놓은 채
아이들은 들은둥 만둥 / 말판놀이에만 / 정신을 뺏기고 있다
- 이주홍 동시 '현이네 집' 중에서
그런데 어찌 그 '할아버지 말씀'이 들리나요? 다시 옆의 사진을 보니 아이들이 놀고 있는 툇마루 아래에는 아이들의 신발이 뒹굴고 있네요. 아이들의 마음처럼 천진난만하게요. 빗방울이네도 저렇게 신발을 훌러덩 벗어놓고 친구들과 함께 '우리들 세계'로 흠뻑 빠져들고 싶습니다.
3. '아이들인 채로 남아있고만 싶다!'
이렇게 동시와 사진과 함께 묶어서 감상하니 감동이 한결 진해집니다. 「현이네 집」에서 '디카시' 한 편 더 만나볼까요?
매미야 매미야 설워마라 / 가만있으면 모를 걸 / 늬들이 울기 땜에 / 우리가 잡는 거다
매미야 매미야 원망마라 / 다른거라면 안그럴 걸 / 늬들이 귀엽기 땜에 / 우리가 잡는 거다
늬들과 우리는 / 참 묘한 친구사이지
- 이주홍 동시 '매미잡이' 전문
동시 '매미잡이' 옆쪽에 있는 사진을 봅니다. 여름날, 기다란 매미채를 들고 오동나무 둥치를 타고 올라간 한 아이 엉덩이를 다른 한 녀석이 두 손바닥으로 떠받치고 있네요. 그 옆에 두 녀석은 매미를 찾느라 고개가 빠져라 위를 쳐다보고 있고요. 건너편 여름 옥수수 키는 아이들보다 더 크네요. 이렇게 아이들은 씩씩하게 크고 있었네요.
이 동시를 쓴 때가 1983년, 이주홍 님이 78세라는 점을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주홍 님은 아이 마음이네요. 매미한테 말하는 거 좀 보셔요. 너희들이 가만있으면 모를 걸 너희들이 울기 때문에 우리가 잡는 거라고 하네요. 그래서 서러워하지 말라고요. 천진난만한 78세의 아이네요. 이주홍 작가님은 어찌 이런 아이 마음과 닿아있었을까요?
이주홍 작가님이 「현이네 집」 서문에 '우리들 세계'라는 제목을 붙여 쓴 멋진 글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흐르고 있는 강물과 같이 세월은 한시도 쉼이 없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야 가거나 말거나 우리는 언제이고 이대로의 아이들인 채로 남아 있고만 싶다.
어떤 꾀부림도, 서로가 서로를 못 미더워하고 사는 어떤 어른스러운 흙탕물에도
우리는 우리의 깨끗한 몸을 더럽히며 살고 싶지가 않다.
우리는 외롭다고 느껴지는 때가 없는 걸!
우리들에게는 우리들만의 청순한 세계가 있다.
우리들에게는 우리들 같은 때 묻지 않는 양심과
사람의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천국이 있는 것이다.
- 이주홍 동시집 「현이네 집」 서문 중에서
이주홍 님은 '아이들인 채로 남아 있고만 싶다'라고 하시네요. 때 묻지 않는 양심으로요, 깨끗한 몸과 마음을 더럽히며 살고 싶지 않다고 하시네요. '우리들 세계', 아이들의 세계에서 말입니다. 그대, 지금 그런 세계에 살고 있나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동심을 일깨워주는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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