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님의 시 '아우의 인상화(印像畵)'를 만납니다.
아우에 대한 사랑이 뭉클 다가오는 감동적인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아우의 인상화(印像畵)' 읽기
아우의 인상화(印像畵)
윤동주(1917~1945,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딘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對答)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골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55년 정음사 발행본을 2016년 도서출판 소와다리가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재발행) 중에서.
2. 22세 형이 12세 동생에게 물은 말
윤동주 시인님의 시 '아우의 인상화(印像畵)'는 일상 속의 짧은 대화에서 포착된 감동 깊은 시입니다.
시 제목의 의미는 '아우에 대하여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 정도로 새깁니다.
이때의 인상은 한자로 '印象'이어야 할 텐데, 시집 원본에는 '印像'으로 적혀있네요. 의미에서 큰 차이는 없겠습니다.
윤동주 시인님은 여섯 살 아래인 여동생 혜원, 그 아래 남동생 일주, 그 아래 남동생 광주가 있었습니다.
이 시는 남동생 일주와의 대화로 알려졌습니다.
아래 문장은 시 '아우의 인상화(印像畵)'에 대한 여동생 혜원의 증언입니다.
(동주 오빠가) 연전에 입학한 해 여름방학에 집에 다니러 왔을 때의 시이지요.
내가 일주에게서 들었는데, 그게 그때 실제로 그대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군요.
동주 오빠가 그렇게 묻고 일주가 그렇게 대답한 일이 있다고요.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 서정시학, 2018년) 중에서.
윤동주 시인님(1917년생)과 동생 일주(1927년생)와의 나이 차이는 10세입니다.
이 시는 1939년 9월 15일 작성되었다고 시 아래에 적혀 있네요.
이 때는 윤동주 시인님이 연전(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해입니다.
그러니 위의 여동생 혜원의 증언에 따르면, 윤동주 시인님은 대학 입학한 후 첫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에서 고향 용정으로 내려와 지내고 있었네요.
이때 22세였던 형 동주와 12세의 어린 동생 일주 사이에 오간 대화가 이 시의 중심 소재입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형 동주는 동생 일주를 유난히 좋아했고, 자주 일주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 날은 달밤이었을까요?
형 동주는 이 날 매우 복잡한 심사였던 거 같습니다. 달빛에 비친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라고 하네요.
일제 강점기입니다. 형 동주에게 그즈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20세 때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 무기휴교 및 광명학원 편입,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사촌 송몽규의 체포, 21세 때 진학문제로 아버지와의 갈등, 연희전문에서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도서관 촉탁으로 근무하던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 강의에서 느낀 민족문화가 처한 상황 ···.
12세의 동생 일주를 바라보는 22세의 형의 가슴에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습니다.
-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부디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어야 할 텐데 ···.
'발걸음을 멈추어 / 살그머니 애딘 손을 잡으며'
그래서 산책길에서 '발걸음을 멈추어' 형 동주는 동생 일주의 작고 앳된 손을 살그머니 잡았네요.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북간도이니 함경도 말씨에 가까운 억양이었을까요?
영화에서 듣던 북한말의 억양을 실어 한번 발음해 봅니다. 정다운 어린 동생에게 하듯이요.
-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동생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담긴, 형 동주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3. 22세 형의 물음에 12세 개구쟁이 소년의 대답은?
'「사람이 되지」'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라고 형이 물었는데, 돌아온 꼬마 동생 녀석의 답이 '사람이 되지'이네요.
이 구절이 이 시의 가장 높은 곳, 우듬지입니다.
보통 어린아이에게 장래의 꿈을 물으면 예술가라든지, 판사라든지, 사장이라든지 이런 구체적인 직종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동생 일주는 예술가도 아니고 판사도 사장도 아니라 '사람'이라고 답했네요.
그런데요, 과연 이 대답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때 동생 일주의 나이는 겨우 12세입니다. 아직 어린 개구쟁이 소년입니다.
이 어린 소년의 입에서 나온 문장에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어린 소년은 그 즈음 소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너희는 자라 사람부터 되어야한다'라는 훈계가 문득 생각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이 천진난만한 동생은 형을 놀려주려 일부러 어리광을 한번 부려본 걸까요?
'형이 되지', '아버지가 되지', '사람이 되지' 같은, 묻는 이를 골려주려는 순수한 말놀이 말입니다.
키 큰 형을 곁눈으로 올려다보며 무심히 내뱉는 어린 동생의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 보이는 것도 같네요.
'「사람이 되지」'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동생의 이런 천진한 대답에 형 동주는 그만 마음이 미어지는 것만 같은 심정이네요.
그 마음을 담아, 그다음 시행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對答)이다.'
형 동주는 왜 아우의 대답이 서러운('설은') 대답이라고 했을까요?
서러운 대답, 그것도 '진정코' 서러운 대답이라고 강조하고 있네요.
'사람이 되지'라는 어린 동생의 대답에서 형 동주는 불현듯 '사람이 되는 일'에 대해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사람대접받고 사람 구실하며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말입니다.
그 당연한 일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버린, 성숙한 형 동주입니다.
대처에 나가 겪어본 현실은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것 투성이었습니다.
천진난만한 동생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유년시절 속에 있는 동생은 그 어둡고 아픈 현실로 조만간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되지'라고 대답한 이 순수한 아이가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형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네요.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 아우의 얼골을 다시 들여다 본다.'
형은 동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했을 것만 같습니다.
이 해맑은 얼굴, 총명한 눈동자가 마주하게 될 세상은 부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기를!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달빛에 드러난 어린 동생의 얼굴은 또 '슬픈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 슬픔은 동생의 것이 아니라 형의 슬픔입니다.
동생이 마주치게 될 세상을 형은 보고 있습니다.
압제와 수탈이 점점 심해지는 일제 강점기 속의 세상 말입니다.
동시에 형은 동생의 앳된 얼굴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지나온,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유년의 평화를 보고 있겠지요?
동생의 미래에 대한 걱정, 고달픈 현실을 헤쳐가야 할 자신의 고뇌가 오버랩된 아주 '슬픈 그림'이네요.
다 큰 형아는 그 '슬픈 그림'을, 12세의 동생의 작은 몸을 꼭 껴안아주었겠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윤동주 시 눈 오는 지도
윤동주 시인님의 시 '눈 오는 지도(地圖)'를 만납니다. 지금 가고 있는 '나의 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눈 오는 지도(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겨울 시 탕약 국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닥불 오리 망아지 토끼 (33) | 2025.02.12 |
---|---|
서유석 노래 타박네 가사 해설 숨은 뜻? (29) | 2025.02.11 |
일일시호일 뜻 유래 운문록 벽암록 (32) | 2025.02.10 |
겨울 노래 추천 5곡 유영석 이종용 박인희 이문세 조용필 (31) | 2025.02.07 |
절차탁마 뜻 유래 시경 논어 예기 (27) | 2025.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