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뜻과 유래를 알아봅니다.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을 보면서, 그 속뜻이 궁금해 도서관을 뒤져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뜻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뜻은 '날마다가 참 좋은 날이다'입니다.
날 '日(일)', 이 '是(시)', 좋을 '好(호)'로 구성되어 있네요.
'日日(일일)'은 '날마다'의 뜻입니다. 이 문장의 주어입니다. 그러니 '날마다가'로 풀이됩니다.
'是(시)'는 '이, 이것, 무릇' 또한 '맞다, 옳다'의 뜻인데, 문장 속의 형용사나 동사성 술어 앞에서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때의 뜻은 '확실히' '실로'에 해당하고, 강하게 발음합니다.
'好日(호일)'의 뜻은 '좋은 날'입니다.
그래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뜻은 '날마다가 참 좋은 날이다' 또는 '날마다가 실로 좋은 날이다'로 새겨지네요.
그런데 '날마다가 참 좋은 날이다'란 문장 속엔 어떤 숨은 뜻이 있을까요?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을 보았습니다.
다도(茶道)에 입문하여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다도를 배우는 공간의 벽에 '日日是好日'이라는 문장이 든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처음에 이 액자를 본 주인공은 이 문장의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글자 그대로 '매일이 좋은 날' 정도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도 수련의 세월이 많이 흐른 후 비로소 이 문장의 의미가 가슴에 들어옵니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이 액자의 글귀가 다시 주인공의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비를 바라보며 주인공에게 불현듯 이런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비 오는 날엔 빗소리를 듣는다.
오감을 동원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맛본다.
눈 오는 날에는 눈을 보고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매일이 좋은 날'이란 그런 뜻인가!
▷영화 「일일시호일」(오모리 타츠시 감독, 2019년 개봉) 중에서.
이 대사를 보니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의미가 가슴으로 가까이 안겨오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도를 통해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어떤 일이라도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삶의 순간에 임하는 법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는 희망으로 사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이 실로 좋은 날이 아니라고 하면서, 나중의 불확실한 좋은 날을 위해 지금을 유예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하겠는지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모하지 않는 것, 또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말하네요.
지금 이 순간을 즐겁고 의미 있게 사는 일, 그것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장이네요.
그런데 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어디에 처음 등장한 문장일까요?
2.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운문록(雲門錄)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중국 운문 스님(865~949년)의 말씀입니다.
운문 스님의 어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운문록」(백련선서간행회)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당나라 말기의 선승(禪僧)인 운문 스님은 운문종(雲門宗)의 종조입니다.
학인의 질문에 간결한 한마디로 설명을 끊어버리는 독특한 법문을 설파했다고 합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문장으로 새겨집니다.
상·중·하 세 권으로 된 「운문록」 중권의 아래 문장 속에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등장합니다.
시중하여 말씀하시기를, "15일 이전은 그대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후를 한마디 해보라."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나날이 좋은 날입니다."
示衆云(시중운) 十五日已前不問你(십오일이전불문니)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십오일이후도장일구래) 代云(대운)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 선림고경총서 「운문록(雲門錄)」(백련선서간행회, 장경각 발행, 불기 2534년) 중에서.
위에 인용한 문장의 한자는 이 책의 부록 '雲門錄'(古尊宿語錄)에 있는 표기 그대로를 옮긴 것입니다.
맨 앞의 한자 '示衆'은 여러 사람에게 훈시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님은 질문하고 대답이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고요.
그런데 질문 속 '15일 이전'과 '15일 후'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선(禪)의 황금시대」라는 책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니다.
운문이 하루는 대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보름달 이전의 날들에 대해서는 자네들에게 묻지 않겠다.
대신에 보름달 이후에 관해서 말해보거라."
대중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운문이 스스로 대답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로다.(日日是好日)"
여기서 말하는 보름달이란 깨달음을 뜻한다. 깨달은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선(禪)의 황금시대」(존 C. H. 우 지음, 김연수 옮김, 한문화, 2006년) 중에서.
'15일 이전'은 초승달이 점점 차올라 보름달이 되기까지의 시간이네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시간입니다.
'15일 후'란 깨달음에 도달한 이후의 시간입니다. 15일 후 보름달은 점점 그믐으로 가겠지만, 이미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겐 자유로운 나날이겠습니다.
이 책은 "(깨달은 사람은) 운명에 부대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런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일일(日日)은 시호일(是好日)이라는 말이겠습니다.
![](https://blog.kakaocdn.net/dn/pl8R9/btsMcJkEyxV/VuXdzajMvCbJkqPPGxEa10/img.jpg)
3.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벽암록(碧巖錄)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뜻을 더 파봅니다.
그 뜻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주는 문장이 「벽암록(碧巖錄)」에 있습니다.
「벽암록(碧巖錄)」 제6칙이 바로 오늘의 문장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입니다. 제6칙의 제목이 '운문일일호일(雲門日日好日)'로 운문 스님의 어록을 소재로 삼고 있네요.
이 제목의 풀이로 <운문이 말하기를 "날마다가 참 좋은 날이다">라고 했네요.
「벽암록(碧巖錄)」 제6칙에 나오는 운문의 어록은 바로 이 문장입니다.
擧(거), 雲門垂語云(운문수어운), 十五日已前不問汝(십오일이전불문여)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십오일이후도장일구래) 自代云(자대운)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 「벽암록(碧巖錄)」(안동림 역주, 현암사, 2014년 13쇄) 중에서.
앞의 책 「운문록(雲門錄)」의 문장과 같은 문장인데, '你' 자리에 '汝'로 표기되어 있네요. 둘 다 '너'라는 뜻입니다.
이 책에 덧붙인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풀이가 가슴에 와닿네요.
이 책은 ‘15일 전’과 관련해 "과거에 너무 집착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나가버린 일은 그대로 묻어 버리고 잊어야 한다."면서 ‘15일 후’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래 문장 가운데 괄호 속의 문장이 그 풀이입니다.
(세상 사람은 비가 오면 "날씨가 나쁘다."라고 하고,
비가 그치면 "날씨가 좋아졌다."라고 한다.
계속 해만 쪼이면 "가뭄이 든다."라고 하고
비가 많이 오면 "홍수다"하고 소란을 피운다.
그러나 우주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본체에서 보면, 소나기도 태풍도 홍수도 가뭄도 모두 자연 현상일 뿐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날마다가 참 좋은 날이다.
▷ 같은 책 「벽암록(碧巖錄)」 중에서.
그동안 자연의 모든 일을 너무 인간 본위로 생각해온 삶을 통찰하게 하는 문장이네요.
인간에게 이로우면 선(善)이고 인간에게 해로우면 악(惡)이라는 이기적인 신념 말입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것은 일어나지 않을 뿐, 거기에 인간을 위하거나 또는 위하지 않으려는 뜻이 자연에게는 없다는 말이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할까요?
바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하라는 말이네요.
법정스님이 강의에 하신 말씀도 생각나네요.
"추우면 추위가 되고, 더우면 더위가 돼라"
그 문장도 '현재에 집중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도 생각나네요.
이 영화에 나왔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대사 말입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의 원문은 아래의 시입니다.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새운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을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 호라티우스 서정시집 「카르페 디엠 CARPE DIEM」(김남우 옮김, 민음사) 중에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문장의 속뜻을 쫓아오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는 '15일 전'의 시간, 그리고 삶의 이치를 깨달은 '15일 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대는 지금 어느 쪽의 시간에 있는가요?
부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하시길!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행복한 삶의 팁을 주는 문장을 더 만나 보세요.
절차탁마 뜻 유래 시경 논어 예기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뜻과 유래를 만나봅니다. 이 문장이 유래된 「시경(詩經)」, 「논어(論語)」, 「예기(禮記)」 속의 문장을 음미해 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겨울 시 탕약 국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닥불 오리 망아지 토끼 (13) | 2025.02.12 |
---|---|
서유석 노래 타박네 가사 해설 숨은 뜻? (28) | 2025.02.11 |
겨울 노래 추천 5곡 유영석 이종용 박인희 이문세 조용필 (31) | 2025.02.07 |
절차탁마 뜻 유래 시경 논어 예기 (27) | 2025.02.05 |
오늘도 함께 크고 있습니다 춤 잘 추는 팁 (37) | 2025.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