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시인님의 시 '그리움'을 만납니다. 그리운 이를 찾아 거리를 헤맨 적이 있나요? 마음의 옷을 벗고 시인님이 건네주신 뜨거운 시어로 저마다의 서러운 사연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유치환 시 '그리움' 읽기
그리움
- 유치환(1908~1967, 경남 통영)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기(旗)빨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유치환 시선」(배호남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년) 중에서
2.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위의 시는 처음 발표될 때의 모습 그대로를 옮긴 것입니다. 처음 그때의 율동과 향기 그대로를 음미해 보려고요.
1939년 시인님 32세 때 발간한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鈔)」에 실려 있네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시인님 20대 때 쓰인 시들입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님이 20대 청춘 때 쓴 '그리움'으로 들어가 볼까요?
오늘은 바람이 불고 /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바람이 불고' '마음은 울고' 있네요.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날씨의 상태에 따라 우리의 기분도 달라진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도 그 자체로 자연이어서 우리의 감정도 자연 현상과 같이 연동되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일은 생각할수록 얼마나 신묘한 일인지요?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이 구절을 쓰던 당시의 심정을 기록한 시인님의 글을 봅니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흘러 넘어나는 거리에서
오직 하나 그리운 얼굴만이 보이지 않음이
얼마나 기적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또한 그같이 많은 사람을 죄두고 유독 한 사람만을 찾아서
애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 역시 얼마나 놀라와할 일입니까?
- 「청마 유치환 그 생애와 문학 -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고」(김광회 편저, 지문사, 1984년) 중에서
두 번째 문장 좀 보셔요.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을 찾아서 애달파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는 말! 왜 그 한 사람만이 이토록 나의 가슴을 찢어놓을까요? 오직 그 사람요. 한번 맞으면 사랑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는 큐피드의 화살!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 긴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기(旗)빨처럼 울고만 있나니
-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경남 통영이 고향인 유치환 시인님은 중학교 때 일본 동경 유학 이후 부산의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다녔습니다.
동래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청년시절(19~20세), 시인님은 부산 북항에 정박된 배들을 만났을까요? 거기 배 기둥에는 깃발(신호기)이 펄럭이고 있었네요.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공중의 깃발은 찢어질 듯, 배를 메고 공중으로 날아갈 듯 펄럭입니다. 견디지 못할 정도로 세찬 바람에 한없이 부대끼는 깃발처럼, 견디지 못할 거센 그리움으로 나의 마음도 찢어질 듯 펄럭이며 울고만 있네요. 이를 어찌할까요?
3. 꽃이 지면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이 시의 계절, 꽃이 없는 겨울이었을까요? 지금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가 지금 곁에 없는 꽃으로 환치되어 시의 화자가 느끼는 그리움의 질감을 우리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네요.
이 꽃이 숨어버렸다고 하네요. 꽃이 지면 어디로 가는 걸까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꽃’의 행방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막막한 마음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네요.
그런데요, 꽃은 때가 되면 다시 피어납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그대도 부디 그 사랑을 만났기를, 만나기를!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유치환 시인님의 시 '깃발'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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