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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서운암 된장 이야기

by 빗방울이네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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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 된장 이야기입니다. 절에서 만든 전통된장입니다. 음식에 넣으면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는 된장입니다. 함께 읽으며 몸과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사찰 전래제조법으로 만든 '서운암 된장'

 
오늘 빗방울이네집에 된장 들이는 날입니다. 다 먹었거든요. 그래서 빗방울이네와 풀잎(빗방울이네 짝지임)은 일찍이 집을 나서 양산 통도사 서운암을 향해 차를 탔습니다. '서운암 된장'도 구하고 봄이 오는 오솔길 구경도 하고요.
 
이 '서운암 된장'은 좀 특별합니다. 누가 써라고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된장이네요. 절에서 만들어 파는 된장인데요, 맛이 좋습니다. 빗방울이네도 된장 떨어질 때면 오늘처럼 산보삼아 풀잎이랑 서운암으로 갑니다. 그렇게 이 '서운암 된장'과 맺은 인연이 20여년 정도 되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지정 전통식품(양산 제76호)이고요, 한방생약재가 들어간 된장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처음에는 스님들이 울력의 일환으로 콩 농사지었고, 공양을 위해 그 콩으로 직접 담근 된장이었는데, 일반에 보급되어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된 절집 음식입니다. 처음 일반에 보급된 때가 1998년이라고 하니 올해(2024년)로 벌써 25년이 넘었네요.
 
된장을 판매하는 '서운암 된장' 측은 농가에서 지은 햇콩을 가마솥에 장작불로 삶아서 된장을 만든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삶은 콩을 손으로 메주를 만들어 황토와 볏집으로 지은 전통가옥에서 발효한다고 하고요. 된장을 만들 때 한방생약제인 오미자, 구기자, 감초, 산수유 같은 한방생약제를 넣는데, 이 제조법이 절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이라고 합니다.  
 
'서운암 된장'은 된장에 이어 고추장, 청국장, 간장 같은 장류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서운암에 가서 된장(1.5kg 18,000원)과 고추장(1.5kg 21,000원)을 안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 서운암 장독대 이야기 더 들려드릴게요.
 

2. 1,000 여개의 장독이 있는 풍경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 있는 영축총림 통도사는 모두 17개의 암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암자들은 통도사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퍼져 영축산 기슭에 포진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운암인데, 된장 맛 덕분에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 암자입니다.
 
통도사에서 1.5킬로미터 정도 산쪽으로 가면 서운암이 나옵니다. 서운암에 들어서면 가장 눈길을 끄는 사물이 바로 장독입니다.
 
1,000여개의 장독들이, 펑퍼짐한 된장독들이 나란히 앉아 우리에게 한 컷 찍어보라는 듯 둥그런 바디를 반짝이고 있답니다. 영축산의 양지바른 포근한 품에 안긴 된장독들이, 고향으로 온 자식 반기듯 누구라도 포근히 품어주겠다는 듯이요. 
 
이 장독들을 보니, 한동안 이 장독대 울타리에 붙어 있던 이 문구가 떠오르네요.
 
'쉿, 된장이 익어가고 있어요!'
 
이런 문장을 만나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게 됩니다. 바로 앞에 먹이를 발견한 수탉처럼요. 
 
눈에 초점을 모으고 다시 보아도 '쉿, 된장이 익어가고 있어요!'였답니다. 그래서요, 스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요?
 
그런데요, 그때 풀잎이랑 조잘거리며 장독대 옆을 걸어가던 빗방울이네는 이 문장을 보고 자동적으로 쉿, 하고 말았답니다. 마치 익어가는 된장, 아니 고요히 잠을 자고 있는 된장에게 방해가 될까봐요. 스님, 왜 그런 문장을 거기 붙여놓으셨나요?
 
까치발로 살금살금 장독대를 지나오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답니다. 빗방울이네랑 풀잎이랑 조잘댐이 된장 익어가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경남-양산-통도사-서운암-장독대-풍경.-뒤쪽으로-보이는-산봉우리가-영축산-정상.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 장독대 풍경. 뒤쪽으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영축산 정상.

 

 

 

3. 잠시라도 오감의 창을 닫고 부디 잠잠하기를!

 
우리는 말이 좀 많았군요. 집에서, 그리고 차를 타고 오면서 그렇게 조잘대고요, 여기 조용한 절에 와서 장독대 곁에서 또 조잘대고요.
 
'쉿, 된장이 익어가고 있어요'.
 
조용한 절에 왔으니, 밖으로 향한 오감(五感)의 창을 닫고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요청인 것만 같았습니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이 문장이 떠오르네요.
 
안식이 뭔가? 무위, 무언(無言) 아닌가? ···
이 병든 문명, 망할 인간에게 약이 있다면 단 한마디 "잠잠하라!"뿐이다.

▷ <바가바드 기타>(함석헌 주석, 한길사, 2021년) 중에서

 
'잠잠하라'.
 
된장이 장독 속에서 조용히 익어가듯 우리에게도 잠잠하게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놓치고 있었네요. 그래서 눈을 감아봅니다. 
 
눈을 감았는데요, 난데없이 된장찌개는 왜 떠오르는 건지요. 된장찌개가 떠오르니 침은 왜 넘어가는지요. 이 글을 마무리하며 거실의 짝지에게 톡을 보냅니다.
 
풀잎님, 오늘 저녁 된장찌개 끓여주오. 서운암 된장으로요, 땡초와 돼지고기 총총총 잘게 썰어넣고요. 좀 칼칼하게요.
 
넹! 하고 답이 왔네요.
 
··· 아, 얼마나 맛있을까? 소주라도 한잔할까? 요즘 너무 잦은 거 아닌가? 두어 잔인데 뭐.
 
(빗방울이네, 부디 잠잠하라!)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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