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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희성 시 경칩

by 빗방울이네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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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님의 시 '경칩'을 만납니다. 옆사람의 사랑에 대해, 함께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희성 시 '경칩' 읽기

 

경칩

 

- 정희성(1945년~ , 경남 창원)

 

세상에!

등에 업힌 저 개구리들 좀 봐

 

겨우내 얼마나 힘들었을꼬

 

- 정희성 시집 「흰 밤에 꿈꾸다」(창비, 2019년) 중에서

 

정희성 시인님은 1945년 경남 창원 출신으로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답청(踏靑)」을 비롯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돌아다보면 문득」 「그리운 나무」 등을 출간했습니다. 만해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지용문학상, 구상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시를 만나기 전에 만나보는 것들

 

이 시의 제목이 된 '경칩(驚蟄)'은 24 절기의 하나로, 그 날짜는 3월 5일입니다. 입춘(立春), 우수(雨水) 다음의 세 번째 절기입니다.

 

'경칩(驚蟄)'은 놀랄 '驚(경)', 숨을 '蟄(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숨을 '蟄(칩)'은 '숨다' '모이다' '고요하다' 등의 뜻과 함께 '겨울잠을 자다', '자는 벌레'의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칩(驚蟄)'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긴 겨울잠을 자고 있던 벌레들이 놀란다, 즉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 되네요. 

 

우리는 보통 '경칩(驚蟄)'을 '개구리도 깨어나는 날'이라고 하는데, 막상 경칩이라는 글자 속에는 개구리가 없네요.

 

개구리는 기온에 민감한 양서류라서 예부터 개구리가 겨울잠을 깨어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농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옛사람들은 겨울잠을 자는 '대표선수'로 개구리를 꼽은 것이네요. 그래서 경칩을 '벌레가 깨어나는 날'이라고 하지 않고 개구리를 대표선수로 해서 '개구리도 깨어나는 날'이라고 했네요.

 

겨울에도 바깥의 기온보다 비교적 따뜻한 땅속이나 물밑 돌틈 사이에 몸을 숨기고 길고 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입니다.

 

잠자던 개구리가 놀란다!

 

개구리는 이 따뜻한 봄을 얼마나 꾹 참고 기다렸을까요?

 

경칩(驚蟄)! 이 글자 속에 너무 좋아서 한껏 위로 뛰어오르는 개구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네요.

 

"등에-업힌-저-개구리들-좀-봐"-정희성-시-'경칩'-중에서.
"등에 업힌 저 개구리들 좀 봐" - 정희성 시 '경칩' 중에서.

 

 

 

3.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해 준 사랑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경칩 즈음에는 겨우내 얼었던 대지를 적셔주는 봄비도 내리고, 땅속에 숨어있던 작은 생명들이 땅밖으로 나온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작은 생명들을 생각해서, 땅에 불을 질러서 농사를 짓는 화전행위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얼마나 가슴 촉촉이 적셔주는 말인지요.

 

달래와 쑥, 냉이 같은 향긋한 풀들도 겨울의 대지를 뚫고 나오는 경칩입니다. 추운 겨울 동안 달래와 쑥과 냉이는 얼마나 몸을 움츠리고 있었을까요?

 

나무들은 어떨까요?

 

지난 가을, 잎사귀가 떨어진 자리에 '떨켜'가 생겨 증산활동이 일제히 중단되었던 나무들입니다. 그래서 나무 줄기의 모세관현상, 뿌리의 삼투압현상도 중단되어 물의 흐름이 끊어졌던 나무들입니다. 그렇게 속을 비워 추위를 견디고 있던 나무들입니다.

 

경칩 즈음, 얼었던 대지가 녹으면서 그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들의 물관에도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네요. 

 

그래서 경칩이 되면 우리는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 흠을 내어 그 나무들이 대지에서 막 길어 올리기 시작한 좋은 물을 얻어 마시며 좋은 기운을 얻습니다.  

 

세상에! / 등에 업힌 저 개구리들 좀 봐 // 겨우내 얼마나 힘들었을꼬

 

3행으로 된 짧은 시, 정희성 시인님의 시 '경칩'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경칩(驚蟄)'이라는 글자에 개구리가 없듯이, 저 '등에 업힌 저 개구리들'이라는 구절에 개구리들은 보이지 않네요.

 

그럼 '등에 업힌 저 개구리'는 누구일까요?

 

바로 그대가 아닐까요? 춥고 추운 겨울을 막 건너온 그대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추운 겨울을 건너온 그대는 그대 홀로 그 긴 추위를, 그 고된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대는 누구의 등에 업혀 그 긴 추위의 시간을 건너왔는지요?

 

그대는 누구를 업어서 그 긴 추위의 시간을 건너게 해 주었는지요?

 

'세상에!'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등에 업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무거운 시간을 건널 수 있었겠는지요?

 

'겨우내 얼마나 힘들었을꼬'

 

경칩입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또는 누군가를 등에 업고 우리는 무사히 봄에 도착했습니다.

 

경칩, 봄의 간이역에서는 그 등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가도 좋겠습니다.

 

아, 봄은 얼마나 경쾌한 시간인지요.

 

겨울 동안 내가 업혀서 온 그 넓고 따뜻한 등을 생각하는 시간, 경칩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봄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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