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자심(不欺自心)의 뜻을 알아봅니다. 성철스님의 친필휘호로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인지, 함께 읽으며 마음을 씻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불기자심(不欺自心) 뜻
불기자심(不欺自心)의 뜻은 '자기를 속이지 마라'입니다.
한자 구성은 아닐 '불(不)', 속일 '기(欺)', 스스로 '자(自)', 마음 '심(心)'으로 되어 있네요.
불기자심(不欺自心), 이 구절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요?
2. '불기자심' 탄생 이야기
불기자심(不欺自心). 이 네 글자는 '우리 곁에 왔던 부처',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받는 성철스님이 불자들에게 써준 휘호입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의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요, 사실은 이 중에서 '불기(不欺)'만 성철스님의 문장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성철스님을 20년 넘게 시봉(侍奉)한 사람이 원택스님입니다. 성철스님 임종 때까지 스님의 손발이 되어 옆에서 지켜드리며 생활한 분입니다. 원택스님은 대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친구를 따라간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을 처음 뵙게 됐다고 합니다. 그 첫 만남의 장면을 함께 읽습니다. 원택스님의 글입니다.
"큰스님, 오늘 처음 뵙게 되었습니더. 그 기념으로 저희에게 평생 지남(指南)이 될 좌우명 한 말씀 해주이소."
큰스님께서 예의 그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보시더니 당돌한 주문에 흥미를 느낀다는 듯 다시 한마디 뱉었다.
"그래, 그라먼 절돈 3,000원 내놔라."
-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1」(원택스님 지음, 김영사, 2012년) 중에서
원택스님은 절돈 3,000원 내놔라는 성철스님의 말씀에 실제로 1,000원짜리 석장을 내밀었고, 성철스님은 받아야 할 절돈을 10,000원으로 올렸습니다. 절돈 3,000원은 3,000배를 뜻했는데, 10,000원이니 10,000배였네요. 천신만고 끝에 10,000배를 한 원택 스님에게 성철스님은 이렇게 좌우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속이지 마라! 이 한마디 해주고 싶데이."
그 순간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큰스님이 주는 좌우명이라면 무슨 거창한, 정말 평생 실행하려고 해도
힘든 어떤 굉장한 말씀일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기껏 '속이지 마라'라니.
너무 쉬운 좌우명이었다.
- 위의 같은 책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1」 중에서
그러니까 성철스님이 처음 원택스님에게 내려준 좌우명이 '속이지 마라', 즉 불기(不欺)였네요. 그런데 어쩌다 '불기자심(不欺自心)', 네 글자가 되었을까요?
그로부터 석 달쯤 지났다. 문득 '속이지 마라'라는 큰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속인 적은 없지만, 나 자신을 속이고 산 날은 얼마나 많은가.'
그때는 큰스님의 말씀을 '남을 속이지 마라'고 해석하여 그렇게 실망했었다.
그러나 '자기를 속이지 마라'라고 해석하면 정말 평생 지키기 힘든 좌우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위 같은 책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1」 중에서
이렇게 성철스님으로부터 받은 좌우명 '불기(不欺)'에 원택스님 자신이 깨달은 '자심(自心)'이 합쳐져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불기자심(不欺自心)'이네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합작품이네요.
3.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남도 속이지 않게 된다
불가에서는 '오계(五戒)', 수행자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그 다섯 가지는 이렇습니다.
- 생명을 죽이지 말라
- 훔치지 말라
-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 거짓말을 하지 말라
- 술을 마시지 말라
이 오계는 일반 신도(재가자)도 지켜야 하는 계율입니다. 네 번째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가 등장합니다.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부처님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증오의 극복에 대하여 설법하신 내용 중에 '거짓말' 부분을 함께 읽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런 행동으로 인하여 현생과 내생에 두려움과 증오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괴로움과 슬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증오가 가라앉습니다.
- 위 같은 책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일아 역편, 민족사, 2008년 1쇄, 2020년 증보판 5쇄)중에서
이렇게 부처님이 정한 오계 중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이 성철스님과 원택스님에 의해 '불기자심(不欺自心)'으로 발전했네요.
상대방을 속이는 것은 1차로 자기를 속이는 행위를 전제로 일어나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상대방도 속이는 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빗방울이네가 평소 존경하는, 팔순이 넘은 분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 같이 밥 먹자는 전화 오면, 만나기 싫을 때는 선약이 있다고 거짓말한다.
다음에 하자고 또 거짓말한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일, 그것만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씀은 이렇게 하셨어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맑고 밝은 삶을 위해 매 순간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문장이네요. '자기를 속이지 마라'. 마음 깊은 곳에 품고 가야겠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성철스님의 '소식(小食)'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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