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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문태준 시 별미

by 빗방울이네 202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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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님의 시 '별미'를 맛봅니다. 시인님이 오래 두고 먹었다는 별미는 무엇일까요? 함께 시를 읽으며, 시인님이 우리네 마음 위로 쏟아부어주는 따뜻한 사유의 우물물로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문태준 시 '별미' 읽기

 

별미(別味)
 
- 문태준(1970년~ , 경북 김천)

매일 아침 꾸지뽕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워요

꾸지뽕 열매는 음력 시월이 다 가도록 가지에 붉게 매달려 있어요

오늘 아침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웠어요

이제는 꾸지뽕 열매를 새가 쪼아 먹고 벌레가 갉아먹어 놓아요

나는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먹고 남긴

꾸지뽕 열매 반쪽을 얻어먹으며 별미를 길게 즐겨요


- 문태준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창비, 2023년) 중에서

 

2. '꾸지뽕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워요'

 
꾸지뽕나무. '찌찌뽕'이 자꾸 생각나는, 어딘가 귀여운 느낌의 나무 이름이네요. 나무 이름 유래 중에서 '굳이 따지자면 뽕나무'라고 해서 '굳이 뽕나무' → '꾸지뽕나무'가 되었다는 전언도 흥미롭고요.

 

그러니까 뽕나무와는 거리가 있는 나무네요.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검은색인데 꾸지뽕나무 열매는 붉은색이고요. 크기도 오디보다 더 큽니다. 꾸지뽕나무 열매의 크기는 호두알 크기 만하네요.   

 

매일 아침 꾸지뽕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워요

- 문태준 시 '별미' 중에서

 

시인님은 꾸지뽕 열매를 줍는다고 합니다. 꾸지뽕나무 열매를 '따지' 않고 '꾸지뽕나무 밑에 가서 꾸지뽕 열매를 '줍는다'는 점이 눈에 들어오네요. 자연에 조심조심 다가가는 시인님의 다정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꾸지뽕 열매는 음력 시월이 다 가도록 가지에 붉게 매달려 있어요

- 문태준 시 '별미' 중에서

 

요즘엔 감도 나무에서 잘 내려오지 못합니다. 예전 같으면 익기도 전에 따 먹곤 하던 감이었는데요, 요새는 잘 팔리지 않고, 그 높은 데 있는 걸 따 내릴 손도 없네요. 꾸지뽕 열매도 그런 신세인 걸까요?

 

오늘 아침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웠어요

- 문태준 시 '별미' 중에서

 

두꺼운 외투를 걸쳐야 할 정도로 날씨가 추워졌네요. 그런데도 꾸지뽕 열매가 달려있나 봅니다. 이 때도 시인님은 '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줍는다고 합니다. 따지 않고요.

 

이제는 꾸지뽕 열매를 새가 쪼아 먹고 벌레가 갉아먹어 놓아요

- 문태준 시 '별미' 중에서

 

엊그제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홍시를 파먹고 있던 까마귀를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까마귀는 홍시를 아래부터 먹지 않았어요. 아래부터 파먹으면 흘러내린다는 걸 알았을까요? 위쪽부터 파먹고 있었어요. 한입 먹고는 음미하는 듯 고개를 흔들었고요. 얘, 달콤하냐? 나도 한입 먹어보면 안 될까? 

 

꾸지뽕 열매는 특히 새가 좋아한다고 합니다. 새와 벌레. 이 친구들이 꾸지뽕 열매의 진정한 주인이겠네요. 꾸지뽕나무 밑에 떨어진 꾸지뽕 열매 서너 개씩 주워가는 시인님은 꾸지뽕나무 눈치 보는 나그네이겠고요.

 

문태준시별미중에서
문태준 시 '별미' 중에서.

 

 

3. 꾸지뽕 열매는 과연 어떤 맛일까요?

 

나는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먹고 남긴 / 꾸지뽕 열매 반쪽을 얻어먹으며 별미를 길게 즐겨요

- 문태준 시 '별미' 중에서

 

아니, 시인님! 벌레 먹고 새가 파먹은 걸 사람이 어떻게 먹나요?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먹은 열매는 상품 가치도 없고 지저분하다고 버려지는 경우가 보통의 세상사입니다만, 시인님은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먹고 남긴' 것을 먹었다고 합니다. 열매 반쪽은 새와 벌레가, 그 나머지는 시인님이 드셨네요.

 

'얻어먹으며'. 그것도 시인님은 반쪽을 얻어먹었다고 말하네요. 내 열매를 너희들이 왜 파먹었노!가 아니라 그들의 열매를 내가 얻어먹는다고 하시네요. 거참.

 

그것이 별미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새와 벌레가 파먹은 그게 왜 별미일까요? 같은 꾸지뽕 열매면 같은 맛일 텐데요.

 

새와 벌레가 파먹고 남긴 것을 내가 먹는 일은 어떤 느낌일까요? 친구가 된 느낌, 같은 식구가 된 느낌일까요?

 

아, 너흰 이런 맛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희미하게 웃으며 새와 벌레가 느꼈던 그 맛을 지긋이 음미하는 시인님의 표정이 떠오르네요. 타자와 같은 맛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서로 바짝 가까워지는 느낌이겠는지요. 시인님은 그렇게 타자와 하나 되는 맛을 길게 즐긴다고 하네요. 

 

정말 어떤 맛일까요? 꾸지뽕 열매를 구해 직접 먹어보았습니다. 처음 먹어본 꾸지뽕이었어요.

 

실물을 보니 언뜻 딸기 같네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나무의 열매라기보다는 울퉁불퉁하게 생긴 바다생물 같은 느낌마저 드는데요, 손가락으로 누르면 꿈틀거릴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한 외관이랄까요?

 

한 개 먹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달지 않은 홍시맛이랄까요? 약간 미끌거리는 맛이고요. 새콤하거나 떫거나 시거나 짠맛 같은 강한 맛이 없고, 연한 단맛에 연하게 향긋한 맛이네요. 이런 순한 맛을 새와 벌레들이 좋아했군요. 시인님도요. 이런 순한 맛을 좋아하는 걸 보니 다들 무던한 성격이겠네요. 

 

꾸지뽕열매는 자양 강장, 신체 허약증, 불면증, 여성질환 치료에 이롭다고 합니다. 항산화 효과가 있는 플라보노이드라는 좋은 성분을 가진 열매라고 합니다. 먹고 남은 꾸지뽕열매로 술을 담가 거실 책장에 올려두었어요. 겨울내내 오며 가며 예쁜 붉은색 우러나는 거 보려고요. 

 

열매의 연한 과육을 씹으면 입속에서 탁하고 터지는 것이 있는데, 씨입니다. 모양이 꼭 검정쌀 같네요. 새가 열매를 먹으면, 씨의 껍질이 딱딱해서 새의 뱃속에서도 소화될 염려는 없겠네요. 꾸지뽕 열매를 배불리 먹은 새는 나중에 씨앗을 응가와 같이 몸 밖으로 내보내겠죠. 이렇게 새는 씨앗을 멀리 운반해 주는 수고로 꾸지뽕열매 먹은 값을 치르네요.

 

꾸지뽕열매를 맛있게 먹은 빗방울이네도 꾸지뽕나무에게 값을 치러야 할 텐데요, 그 생각을 하니 입 속에서 씨앗을 터뜨리지 못하겠네요. 따로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산책할 때 숲에 던져줘야겠네요.

 

이렇게 우리는 꾸지뽕 열매를 같이 먹은 꾸지뽕 친구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순한 맛을 좋아하는 새와 벌레, 그리고 시인님!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문태준 시인님의 시 '아버지의 잠'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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