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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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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석 시인님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습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줄까요? 천천히 읽으면서 노래하면서 함께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읽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정본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중에서

2.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온다니까요!


이 시의 백미는 단연 첫째 연 세 줄 것 같습니다.

-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네요. 시의 화자는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기 때문에 눈이 온다고 장담(!)하면서 시를 시작합니다.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늘이 눈을 뿌려준다네요. 그것도 푹푹 말입니다. 자신의 사랑에 천지를 동참시키고 있네요. 소주를 마신 탓인지, 시의 화자는 몽환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연인 나타샤에게 깊은 산골로 가자고 합니다.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여기에 나오는 '출출이'는 뱁새를, '마가리'는 오막살이를 뜻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 장만영 시인님이 1950년에 발표한 '사랑'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최헌 가수님의 노래 '순아'의 노랫말이 된 시입니다.

- 깊은 산 바위틈 /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 나는 너를 믿고 / 너는 나를 의지하며 /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에 꼭꼭 숨어 단둘이 살고 싶은 마음은 저절로 우리의 마음에 옮겨와 우리도 마냥 그러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불쑥 당나귀가 등장합니다. 이 흰 당나귀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킵니다. 당나귀는 우리를 태우고 눈이 푹푹 내리는 산골로, 아름다운 동화의 한 장면 속으로 터벅터벅 데려가줍니다. 백석 시인님의 당나귀 사랑은 유별납니다. 그가 1936년 9월 신문에 발표한 '가재미·나귀'라는 제목의 수필을 잠시 읽겠습니다.

- 이 골목의 공기는 하이야니 밤꽃의 내음새가 난다. 이 골목을 나는 나귀를 타고 일없이 왔다갔다 하고 싶다. 또 여기서 한 오리 되는 학교까지 나귀를 타고 다니고 싶다. 나귀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그래 소장 마장을 가보나 나귀는 나지 않는다. 촌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서 수소문해도 나귀를 팔겠다는 데는 없다. (중략) 그래도 나는 그 처량한 당나귀가 좋아서 좀더 이놈을 구해보고 있다.

- 「백석시전집」(이동순 편, 창비) 중에서

 

백석시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중에서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3. 노명희 가수님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의 만남


그렇게 눈이 오는 날 백석 시인님은 사랑하는 이와 흰 당나귀를 함께 타고 아주 깊은 산골로 가고 싶다고 합니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 시는 1938년 3월 발표된 시입니다. 백석 시인님이 27세 때입니다. 이 때는 시인의 개인사적으로, 또 시대사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 시를 쓰기 1년 전쯤에 백석 시인님이 연모했던 통영의 박경련이 친구 신현중과 결혼해 큰 충격을 받았고,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던 때였습니다. 평온한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쓸쓸하게 방황하는 시의 화자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시인은 스스로를 안아주는 것같습니다. 응앙응앙~ 당나귀 울음을 흉내내면서요. 이렇게요.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저는 이 구절에서 드러누워 두팔과 두발을 흔들며 울고 또 웃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만약 이 구절이 없었다면 우리는 백석 시인님이 파놓은 깊은 슬픔의 웅덩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같습니다.

이 시를 가사로 한 노래가 몇 곡 있습니다. 그중에 노명희 가수님이 만들고 부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노래를 찾아 들어보십시오. 이 노래는 너무나 절절하여, 참으로 삶에 지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그대가 이 노래를 듣는다면 그대는 하루종일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무한반복하며 듣다가, 노래가 그대를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저절로 몸에 달라붙어 그대의 18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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