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으로 유명한 동시 한 편을 읽으려 합니다. 강소천 시인님의 동시 '닭'입니다. 이 손톱만큼 짧은 동시는 어떤 천둥 같은 의미를 품고 있을까요? 한 구절씩 읽고, 닭처럼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우리 함께 마음목욕을 해봅시다.
1. 강소천 시인님의 동시 '닭'
닭
- 강소천(1915~1963)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보고
- 「강소천 평전」(박덕규 지음, 교학사) 중에서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동시입니다. 이 동시는 강소천 시인님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 대표 동시로 꼽힙니다.
함경남도 고원 출신인 강소천 시인님은 21세 무렵에 이 동시를 썼습니다. 늦은 나이인 17세에 함흥의 영생고보에 입학했던 그는 이 동시를 썼을 당시에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간도 용정에 있었는데, 「소년」이라는 잡지를 하던 서울의 윤석중 선생님으로부터 청탁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강 시인님이 써 보냈던 동시가 '닭'입니다. 그렇게 '닭'은 1937년 「소년」 창간호에 실려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2. 닭과 함께 물을 먹는 아이의 천진난만
그런데 '닭'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이 동시는 마당에서 물을 먹고 있는 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을 쳐다보고 또 한모금 입에 물고 구름을 쳐다본다는 진술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다는 말일까요?
우선 「강소천 평전」에서 '닭'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강소천 시인님과 절친인 최태호 님이 「다이제스트」 (1952년)에 '닭'에 대한 느낌을 써서 낸 글입니다.
- 목을 쳐들고 오물오물하면서 물을 먹는 병아리와 함께 하늘을 쳐다보고, 구름까지 찾아낼 수 있는 그 맑은 '눈'을......소천은 이 동요 한 편만으로도 명목(瞑目)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짧은 글-32개의 글자로써 조그만 세계의 찰나를 영원으로 바꾸고, 아무 데서나 발견할 수 있는 현상에 생명을 빛내었기에.
이 글에서 우리는 아이가 물을 먹는 닭과 함께, 아니 아이가 물을 먹는 닭이 되어 닭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천진난만한 광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우리의 마음도 맑아집니다. 소천은 이 동요 한 편만으로도 눈을 감고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
3. 물을 마시며 물의 근원을 생각하다
그래도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이 동시에는 더 환한 시의 창문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창문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강 시인님은 이 동시를 간도 용정에서 썼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신사참배와 일본을 향해 경배하는 궁성요배를 강요당하고 한글이 탄압받던 시기였습니다.
용정은 국내보다 일제의 탄압이 덜한 공간이었습니다. 외삼촌이 있는 용정에 갔던 강 시인님은 윤동주 시인님과도 교류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강 시인님은 조국의 운명과 자신의 꿈과 미래도 생각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겠지요? 아래의 문장을 읽어봅시다.
- 고국 하늘을 우러러보며 읊은 것이 '닭'이다.
「강소천 평전」에 있는 이 문장은 동아일보(1963.5.7)에 게재된 강소천 시인님의 글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문장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나라의 가장 문제적 동시인 '닭'을, 이리저리 도망가려해 잘 잡히지 않던 '닭'을 가슴에 꼭 품을 수 있는 단초를 발견했습니다.
이 동시에서 닭은 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을 봅니다. 그리고 또 한 모금 물고 구름을 봅니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는 행위는,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면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행동이네요.
맞습니다. 그렇게 닭이 물을 마시는 광경을 천천히 그리고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시인은 우리에게 '그 물이 온 곳'을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동시에 등장한 닭이 물을 한 모금 물고 쳐다보는 '하늘'이고 '구름'입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한자성어를 기억하시지요?
물을 마시면서 물의 근원(根源)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근원을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강소천 시인님의 '닭'은 자신의 뿌리인 조국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사랑하겠다는 소중한 다짐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낯선 땅 용정에서 "고국의 하늘을 우러러보며 읊은 것이 '닭'이다."라고 하셨네요.
강소천 시인님이 말한 '고국'은,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 또는 이미 망하여 없어진 나라를 말합니다. 그런 고국의 하늘을 우러러보며 읊은 것이 '닭'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강 시인님의 애절한 심정이 이 짧은 동시에 숨겨져 있었네요. 당시 문인들은 일제의 시퍼런 서슬에 이처럼 얼마나 많은 은유의 옷을 작품에 걸쳐 놓았겠는지요.
앞으로 강소천 시인님의 동시 '닭'을 읽을 때마다 '음수사원'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대는 무엇이든지, 그것이 온 근원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편인지요? 지금 나에게 온 사랑이나 직장, 또는 은사님이나 친구, 마시는 물 같은 것의 근원, 또는 '나'의 근원 말입니다.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아름다운 동시 한 편을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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