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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용래 시 저녁 눈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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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시인님의 시 '저녁 눈'을 만납니다. 여름에 읽으면 시원하고 겨울에 읽으면 따뜻한 마법의 시입니다. 시인님이 펄펄 내려주는 신비한 '저녁 눈'으로 마음을 맑히며 독서 목욕을 하십시다.


1. 박용래 시 '저녁 눈' 읽기


저녁 눈
 
-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박용래 시선」(이선영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중에서


박용래 시인님(1925~1980)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1956년 32세에 「현대문학」을 통해 박두진 시인님의 추천으로 등단하였습니다. 1969년 45세에 첫 시집 「싸락눈」을 발간한 것을 비롯, 「강아지풀」 「백발의 꽃대궁」을, 공동시집 「청와집」 등을 냈습니다. 
조선은행, 출판사 창조사 편집부에서 근무했고 덕소중학교 한밭중학교 등의 교사, 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56세인 1980년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충청남도문화상, 제1회 현대시학작품상,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이 시로 가는 중요한 징검돌은?

 
1970년 제1회 현대시문학상 수상작 '저녁 눈'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 박용래 시 '저녁 눈' 중에서

 
호롱불(이 시는 1969년 「현대문학」에 발표됐습니다.)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운 저녁입니다. 시의 무대는 '말집'이네요. '말집'은 액면 그대로 '말(馬)을 키우는 집'으로 새깁니다. 예전에 빗방울이네 고향마을에서 황소를 키우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황소집'이라고 불렀답니다. 
 
그 마을 송아지들의 아비가 그 황소집의 황소였듯이, '말집'은 그 마을의 이 집 저 집의 짐들을 날라주고 삯을 받는 말꾼의 집이네요. 호롱불을 켜는 순간, 호롱불 밑에 눈발이 들이치는 모습이 선명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네요.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 박용래 시 '저녁 눈' 중에서

 
방금 켠 호롱불은 마구간의 호롱불이었네요. 호롱불이 켜지면서 주위가 환해지고 카메라 앵글은 호롱불 아래에서 조랑말 발굽으로 이동하네요. 말의 발굽 아래로 눈발이 들이칩니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 박용래 시 '저녁 눈' 중에서
 

이 행에서 아주 특별한 단서가 나옵니다. 뭘까요? 이 시의 속살로 가는 중요한 징검돌입니다. 이 시 속의 시간이 '아직 저녁을 먹지 않은 때'라는 것입니다.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에 집에 왔네요. 지친 말꾼은, 역시 치진 말을 마구간에 넣고 호롱불을 켰네요. 그리고 말에게 늦은 저녁으로 먹이기 위해 여물을 썹니다.
 
'저녁때'는 ①저녁인 때, ②저녁밥을 먹는 때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이 시는 저녁을 늦게 먹게 된 날의 풍경, 아직 저녁 끼니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나 말이나 허기진 상태네요.
 
겨울날, 조랑말은 하루종일 짐을 등에 지고 말꾼을 따라다니다 집에 왔겠지요? 말꾼은 그렇게 수고한 조랑말에게 먼저 밥을 챙겨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이 밥을 먹겠지요.
 
지금 여물 써는 말꾼 좀 보셔요. 바삐 바삐요. 여물 써는 소리도, 거기 섞이는 눈발도 바쁘네요. 짚단이었을까요? 왼손에는 여물을 쥐고 오른손에는 작두 손잡이를 잡고 쭈그리고 앉아 석둑석둑 서둘러 여물을 썰고 있는 주인의 속도 텅 비어 있겠네요. 참, 이 장면 따스하지요? 
 

박용래시저녁눈중에서
박용래 시 '저녁 눈' 중에서.

 


 

3. 추우니까요, 배고프니까요, 쓸쓸하니까요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박용래 시 '저녁 눈' 중에서

 
카메라 앵글은 아래로 아래로 향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를 읽는 우리의 시선도 자꾸 아래로 향하게 됩니다. 말집 호롱불 밑으로요, 조랑말 발굽 밑으로요, 여물 써는 소리로요, 변두리 빈터로요. 언제나 위로 시선을 두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래쪽도, 외진 곳도 좀 보라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찮고 시시하다 무시하는 것, 작다고 업신여기는 것, 외지다고 쳐다보지 않는 것에게도 관심을 가져보라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거기에 진실로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것이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 시 전체 4개의 행의 말미에 기본형 동사 '붐비다'를 사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기본형 동사는 시제가 없네요. '붐볐다'(과거), '붐비고 있다 또는 붐빈다'(현재), '붐빌 것이다 또는 붐비리라'(미래)가 아니라 마냥 '붐비다'입니다.
 
이 '붐비다'로 인해 이 시가 주는 풍경이 동영상 같으면서도 스틸(still) 사진 같기도 하네요. 아니, 자기들끼리 동영상이었다가 빗방울이네가 돌아보면 일순 정지해 스틸사진으로 바뀌는 건 아닐까요? 아주 묘한 효과를 내는 동사입니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왜 '붐비다'일까요?
 
말꾼이나 말이나 빈터나 추우니까요, 배고프니까요, 쓸쓸하니까요. 하얀 눈은 낮고 배고프고 지치고 가난한 것들을 이불처럼 포근하게 아름답게 덮어주고 있네요. 그것도 붐비면서요, 바삐 바삐요.
 
이런 눈발이라면 정말 '약눈'이겠네요. 하루종일 노동에 지쳐 허기진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그대의 지친 어깨를 덮어주고 찜질해주는 '약눈'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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