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시인님의 시 '하늘'을 만납니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양희은 서유석 가수님의 노래 '하늘'도 만납니다.
초가을 '하늘 한 모금' 하셨습니까? 한없이 맑고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말입니다.
그 기분이 어떨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두진 시 '하늘' 읽기
하늘
박두진(1916~1998년, 경기 안성)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 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거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작고 목 말러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박두진 전집 제1권」(박두진 지음, 범호사, 1982년) 중에서.
2. 왜 '나는 하늘을 마신다'라고 했을까요?
박두진 시인님의 시 '하늘'은 1949년 나온 시인님의 첫 개인시집 「해」에 실린 시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좋은 가을하늘을 소재로 이렇게 좋은 박두진 시인님의 시 '하늘'이 있습니다!라고 전 세계에 소리치고 싶은 시입니다.
유난히 높고 푸른 우리의 가을 하늘-.
시인님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초가을 하늘을 한참 동안 우러러보고 있네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하늘이 내게로 온다 / 여릿 여릿 / 머얼리서 온다'
아, 시인님의 '하늘이 내게로 온다'라는 구절의 발명은 우리를 얼마나 푸르게 설레게 하는지요!
이 구절로 인해 하늘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여릿여릿'에서 아주 천천히 조용히 여유롭게 움직이는 하늘을 느낍니다. 꼭 하늘이 뒷짐을 지고 온달까요?
'멀리서'가 아니라 '머얼리서' 온다고 합니다.
아득히 높고 푸른 초가을 하늘이 여릿여릿 내게로 오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네요.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 호수처럼 푸르다'
초가을 하늘을 쳐다보면 '호수처럼 푸르다'라는 구절이 실감 납니다.
푸른 호수가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니!
그 푸른 호수에 풍덩 빠지고 싶네요.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도취(陶醉)'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구절입니다. 하늘에 마음이 쏠려 하늘에 취한 상태 말입니다.
'온 몸이 안긴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에 도취되어 '나'는 하늘의 품에 풍덩 안겼습니다.
'내가 안긴다'라고 했다가 '온 몸이 안긴다'라고 했네요.
'나'라는 존재가 '하늘'과 합일되는 경지일까요?
그렇게 풍덩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안기면 '나'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포근할까요?
'나'는 얼마나 안심(安心)이 될까요?
'하늘'에 나를 완전히 놓아버린 자유란 어떤 것일까요? 어머니 품에 안긴 편안함일까요?
「바가바드 기타」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자아가 최고 주재의 한 부분인 것이
마치 항아리 속이나 방 안에 있는 공간이
대우주 공간의 한 부분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바가바드 기타」(함석헌 주석, 한길사, 2021년 16쇄) 중에서.
그런데도 우리는 하늘로부터 얼마나 멀리 도망치고 있었는지!
원래 푸른 하늘과 '나'는 하나라는 이 문장은 우리의 지친 정신을 얼마나 넓고 높고 푸르게 하는지!
그리하여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가슴으로, 가슴으로 / 스미어드는 하늘 /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이렇게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을 마시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요?
마치 어머니 품속에 풍덩 안겨 향기로운 어머니 체취를 맡는 기분일까요?
그렇게 하늘에 안겨, 어머니 품에 안겨, 세상에서 겪은 설움 다 일러바치고 싶어지네요.
그렇게 하늘에 안겨, 어머니 품에 안겨, 이런저런 세상사 나 몰라라 잠들고 싶어지네요.
'따거운 볕 / 초가을 햇볕으론 / 목을 씻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던 시인님, 이제는 하늘을 향해 입을 활짝 벌리고 있네요.
'따가운('따거운') 볕'으로는 '나'의 목을 씻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목을 깨끗이 씻었을까요?
높고 푸른 하늘을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요.
'나는 하늘을 마신다 / 작고 목 말러 마신다'
높고 푸른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한껏 숨을 들이켜본 적이 언제였는지요?
'자꾸('작고') 목 말라('말러') 마신다'.
세상에 주눅 들어 땅바닥만 쳐다보고 다닌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의 영혼은 얼마나 메말라 있었던지!
이제 생명수 같은 하늘을 마십니다.
어머니 같은 하늘을요.
'마시는 하늘에 / 내가 익는다 /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정말 가을의 능금처럼 발갛게 익어가는 것만 같네요.
이 가을, 하늘은 세상의 모든 능금들을 익어가게 하니까요,
이 가을, 하늘은 세상의 푸릇한 것들을 발갛게 만들어주니까요,
당연히 푸릇한 우리네 마음도 익어가게 해 주겠지요?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라는 구절을 자꾸 읽으니 이 구절은 예사말이 아니네요.
하늘을 마신다는 것은 하늘을 받아들인다, 하늘을 인식한다는 말이겠지요?
하늘을 인식하며 사는 삶은 하늘을 경외(敬畏)하며 사는 삶일 것입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삶요.
윤동주 시인님의 시 구절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하고 노력하는 삶일 것입니다.
하늘의 바탕(質)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하늘을 추구하는 삶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을 마시고 하늘과 화(化)하여 새로 태어난 '나'는 그전과는 다른 '나'가 되었겠지요?
하늘처럼 푸르고 자유로운 영혼을 향하는 삶입니다.
하늘처럼 넓고 높은 존재를 향하는 삶입니다.
이제 '능금처럼 내 마음 익는다'라는 구절이 가슴으로 뛰어들어오네요.
3. 양희은 서유석이 박두진의 '하늘'을 노래하다
박두진 시인님의 시 '하늘'은 아름다운 노래로 탄생했습니다.
시 '하늘'을 노랫말로 해서 서유석 가수님이 작곡하고 양희은 가수님과 둘이서 노래 '하늘'을 불렀습니다.
이 가을, 무한반복으로 듣게 되는 좋은 노래입니다.
시 전문의 맛을 잘 살린 노랫말이어서 더욱 좋습니다.
오선보에서 단소 음계를 따 단소로 불러봅니다.
빗방울이네가 참고로 한 오선보 첫 음은 '無'인데 한 음 높여 '潢'으로 시작해 봅니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 여릿- 멀리서 온다
潢潢潢潢 潢潢潢汰 汰潢潢 潢潢潢 㳞㳞㳞 㴌㴌汰㴌㳞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潢潢潢 汰汰 汰汰潢 潢潢㳞㳞 㴌汰㴌㳞
호수처-럼 푸른하늘-에 내가안-긴다 온몸이 온몸이
㳞㳞潕潕潕 湳湳湳湳湳淋 㳞㳞淋淋淋淋 淋淋淋 淋湳淋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호흡--
㳞㳞潕潕潕 湳湳湳湳湳 淋淋 㳞㳞淋淋淋 淋淋淋 淋淋 淋湳淋㳞
따가운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潢潢潢潢 㳞㳞㳞 汰汰汰潕潕 潢潢潢潢潢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㳞㳞㳞 㴌㴌㴌㴌 汰㴌㳞㳞 㴌㴌 㴌㴌㴌 汰㴌㳞㳞
마시는 하늘에 내가 능금처럼 내마음 익어요
潢潢潢 汰汰汰 汰潢 潢潢㳞㳞 㴌㴌㴌 汰㴌㳞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 여릿- 멀리서 온다
潢潢潢潢 潢潢潢汰 汰潢潢 潢潢潢 㳞㳞㳞 㴌㴌汰㴌㳞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潢潢潢 汰汰 汰汰潢 潢潢㳞㳞 㴌汰㴌㳞
호수처-럼 푸른하늘-에 내가안-긴다 온몸이 온몸이
㳞㳞潕潕潕 湳湳湳湳湳淋 㳞㳞淋淋淋淋 淋淋淋 淋湳淋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호흡--
㳞㳞潕潕潕 湳湳湳湳湳 淋淋 㳞㳞淋淋淋 淋淋淋 淋淋 淋湳淋㳞
랄 라라흘라라 랄 라라흘라라 랄 라라흘라라 날 라라흘라라 라라라
㳞 㳞㳞潕潕潕 湳 湳湳淋淋淋 㳞 㳞㳞潕潕潕 湳 湳湳淋淋淋 㳞淋淋
랄 라라흘라라 랄 라라흘라라 랄 라라흘라라 날 라라흘라라 라라라 라라
㳞 㳞㳞潕潕潕 湳 湳湳淋淋淋 㳞 㳞㳞潕潕潕 湳 湳湳淋淋淋 㳞淋淋 淋㳞
행복한 연주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빽빽한 콩나물 숲을 오래 헤매다 보니 눈이 침침하네요.
빗방울이네는 산보 좀 가야겠네요. '하늘' 노래 들으며, 하늘 마시러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두진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노래 추천 신계행 가을사랑 최헌 가을비 우산 속 백영규 슬픈 계절에 만나요 (29) | 2024.10.11 |
---|---|
백영규 노래 슬픈 계절에 만나요 가사 단소보 (24) | 2024.10.09 |
최헌 노래 가을비 우산 속 가사 단소보 (22) | 2024.10.07 |
10월 시 황동규 시월 김동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박진규 10월의 문진 (18) | 2024.10.04 |
귀뚜라미 시 나희덕 귀뚜라미 황동규 귀뚜라미 이수복 실솔 이형기 실솔가 (21) | 2024.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