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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두진 시 묘지송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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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 시인님의 시 '묘지송'을 만납니다. 음산하고 무섭다고요? 밝고 경쾌합니다. 시인님이 보여주는 환하고 따뜻한 세계에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두진 시 '묘지송' 읽기


묘지송(墓地頌)

- 박두진

북망(北邙) 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이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觸髏)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읫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太陽)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군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 「박두진 전집」(박두진 지음, 범조사) 중에서


박두진 시인님(1916~1998)은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1939년 「문장」지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박목월 조지훈 시인님과의 공동시집 「청록집」을 비롯 「해」 「오도(午禱)」 「박두진 시선」 「거미와 성좌」 등이, 수필집 「시인의 고향」 등이, 시론집 「시와 사랑」 「한국 현대시론」 등이 있습니다. 아시아자유문학상, 서울시문화상, 3·1문화상 예술상, 인촌상, 지용문학상, 외솔상, 동북아기독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고향 안성에서 '혜산 박두진 문학제'가 열리며, '혜산 박두진 문학상' 공모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2. 이처럼 밝고 빛나는 '묘지송' 보셨나요?


참으로 엉뚱합니다. 이 시의 첫인상 말입니다. 박두진 시인님의 시 '묘지송(墓地頌)'요. 묘지라면 음울하고 슬프고 허무하고 무서움을 느끼는 곳인데 어떻게 이리 밝고 빛나는 느낌을 줄까요? 이 점이 이 시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제목부터 '긍정'으로 가득합니다. '묘지송(墓地頌)'의 '송(頌)'은 칭송하다, 낭송하다, 기리다는 의미입니다. 묘지송(墓地頌)이니 묘지를 기린다는 말이네요. 묘지를 칭송하고 기리다니요. 시인님은 묘지에서 어떤 긍정을 발견했을까요?

북망(北邙) 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이 외롭지 않어이

- 박두진 시 '묘지송' 중에서


'북망(北邙)'은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말합니다. 묘지가 많은 곳이네요. 금잔디는 잡풀없이 탐스럽게 자란 잔디를 말합니다. 지금 화자는 공동묘지를 스케치해 보여주는데요, 짙은 초록으로 탐스런 잔디가 덮힌 동그만 무덤들이 외롭지 않다고 하네요. 무덤들이 옹기종기 서로가 친구 같은 분위기네요. 공동묘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정반대의 진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화자의 의도가 범상치 않다는 점을 첫구절에서 느낄 수 있네요.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觸髏)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읫내도 풍기리

- 박두진 시 '묘지송' 중에서


우리는 무덤 내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기도 하고요, 무섭기도 하고요, 또 그건 일종의 금기 같은 것이랄까요? 화자는 작정한 듯 무덤 내부를 보여줍니다. 시각과 후각까지 동원해서 말입니다. 
 
하이얀 촉루(觸髏)가 빛난다고 하네요. '촉루'는 '살이 전부 썩은 죽은 사람의 머리뼈'라고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해골이네요. 주검의 냄새도 풍긴다고 하네요. 향기롭다고 합니다. 주검은 '죽은 사람의 몸', 시체를 말합니다. 
 
화자는 왜 이렇게 무덤 내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죽음을 직시(直視)하는 과정으로 새겨봅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죽음을 똑바로 보는 것, 죽음의 진실을 보는 일 말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지요? 죽음에 대한 곡해와 망상, 신비화로 우리는 얼마나 죽음을 멀리하고 무서워하며 또 무지하게 되었는지요? 

박두진묘지송중에서
박두진 시 '묘지송' 중에서.

 

 

3.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돌아가신 분을 땅속에 묻으면 우리와 그이는 단절된 걸까요? 우리가 있는 공간과 사자(死者)와는 완전히 차단된 걸까요?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군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 박두진 시 '묘지송' 중에서

 
이렇게 한 품에서 어우러져 돌고 도는 것만 같습니다. 무덤은 죽은 자의 공간이지만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삶의 공간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생명들을 재생하는 공간인 것만 같습니다.
 
봄날에 탐스럽게 자라 무덤을 뒤덮은 잔디, 무덤의 잔디 사이로 뿌리를 내려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운 할미꽃, 그 할미꽃의 달콤한 꿀을 따먹는 멧새 ···. 이런 식으로 무한히 나아간다면 우리가 돌아가신 이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보내드렸다는 것이 맞겠는지요? 
 
박두진 시인님 생각은 어떨까요? 시인님은 1939년에 쓴 자신의 데뷔작인 '묘지송'을 통해 '죽음에서 생명, 죽음에서 부활을 갖는 그러한 열원(熱願)'을 노래하고 싶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덤 속의 촉루들을 나는 깨끗하고 친근하고 동정(同情) 공감에 찬 감정으로 그려보고 친화(親和)했고,
그리고 그것을 미화(美化)된 아주 승화(昇華)된 시의 빛깔과 향기와 노래로 투시(透視)하고 감각하고 관조해 보았다.
햇볕과 죽음과 촉루와 무덤이 한 포근한 세계,
한 동경(憧憬), 한 조화, 한 품안의 존재, 한 신비로 따뜻하게 느껴졌고,
그렇게 인상(印象)지어졌고, 그렇게 신념(信念)해졌던 것이다.

- 「한국현대시론」(박두진 지음, 일조각, 1970) 중에서


햇볕과 죽음과 촉루와 무덤이 한 포근한 세계, 한 품안의 존재라고 하네요. 멀리 떠났다고 생각해왔던 사랑하는 이가 바로 우리와 한 품안에 있다고 하네요. 얼마나 따뜻한 위안인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존재의 영원성을 노래하는 시, 김소월의 '금잔디'를 만나 보세요.

 

김소월 시 금잔디 읽기

김소월 시인님의 시 '금잔디'를 만납니다. 이 시 속에는 어떤 삶의 통찰이 숨겨져 있을까요? 시인님이 건네주는 다정한 위로 속에 우리의 마음을 담가 흔들어 씻으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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