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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이육사 시 청포도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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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님의 시 '청포도'를 만납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견디고 내일을 꿈꾸게 하는 시입니다. 시인님이 건네주시는 청포도의 향기에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육사 시 '청포도' 읽기


청포도(靑葡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러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이육사 시선」(홍용희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중에서

이육사 시인님(본명 이원록, 1905~1944)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30년 1월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했습니다. 1925년 21세 때 형제들과 함께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했고, 의사(義士)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3년 간 옥고를 치르는 등 생애 무려 17회나 옥고를 치렀습니다. 1937년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이 발간됐습니다.


2. 필명 '이육사' = 감옥 수인번호 '264 '


시인님의 본명은 '이원록'입니다. 필명인 '이육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1927년 일본 경찰이 장진홍 의거(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하자 고문으로 진범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육사 시인님을 비롯 시인님의 4형제도 검거되었습니다. 그때 투옥된 시인님의 수인번호가 264였던 것입니다. 시인님 23세 때의 일이네요.

시인님의 필명 이육사(264)에서 빗방울이네는 시인님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어떤 고동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네요. 이 고통을 잊지 않겠다, 이름 석자를 쓸 때마다 뜻을 다지고 다지리라!

시인님은 40년이란 짧은 생애를 살면서 무려 17차례나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가로, '민족시인' '저항시인'으로 살아온 시인님의 삶을 벼락처럼 요약해 주는 문장인 것만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인님이 겪었을 고통과 절망, 그리고 아득히 먼 건너편의 간절했던 희망까지 느껴지네요.

그런 삶 속에서 탄생한 시가 '청포도'입니다. 이육사 시인님은 생전에 모두 36편의 시를 발표했는데, 그중에서 시인님이 가장 아끼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빗방울이네는 '청포도'의 이 구절이 너무 좋습니다.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 이육사 시 '청포도' 중에서


청포도 알 속에,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혔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말입니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어김없이 청포도는 영글었습니다. 그냥 영글었을까요? 그 속에 '먼 데 하늘'이 들었다고 하네요. 그냥 하늘일까요? 내일을 꿈꾸려는(!) 하늘이라고 합니다. 필연적인 자연의 법칙과 우리의 우주적 존재성, 그 영원성을 환기시켜 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위안인지요?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이육사 '청포도' 중에서


청포(푸른 도포)를 입고 손님이 찾아온다는 구절에서 시인님이 간절히 바라던 조국의 광복, 인간답게 사는 삶의 행복을 생각합니다. 오늘을 사는 빗방울이네도 이 구절을 읽으며 눈을 감고 시인님의 꿈을 떠올리니 어디선가 청포도의 짙은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꿈을 잊지 않고 그 꿈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네요.

그런데요, 시인님의 이런 간곡한 염원은 시인님 생전에 이루어졌을까요?
 

먼데하늘이꿈꾸려알알이들어와박혀-이육사시청포도중에서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 이육사 시 '청포도' 중에서.

 

 


3.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시인님은 35세 때인 1939년 시 '청포도'를  「문장」에 발표했고, 1943년 경주 남산의 옥룡암으로 요양차 들렀을 때 먼저 와서 요양하고 있던 이식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육사는 스스로 "어떻게 내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하면서,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곧 일본도 끝장난다."고 이식우에게 말했다고 한다.

- 「새로 쓰는 이육사 평전」(김희곤 지음, 지영사) 중에서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라고 했네요. '곧 일본도 끝장난다.'라고 했네요. 그리고 시인님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움직였네요. 그해 4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국내 무기 반입계획을 세웠고, 7월 모친과 맏형 소상(小祥: 1주기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됩니다.
 
이듬해 1944년 1월 16일 시인님은 새벽 베이징의 차가운 감옥에서 병으로 돌아가십니다. 그토록 바라던 조국 광복을 코앞에 둔 채 말입니다. 억압을 벗어난 해방의 세상에서 포도를 따면서 두 손 함빡 적시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얼마나 아프고 아픈 일인지,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 일인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새로운 길을 가리라 다짐한 윤동주 시인님의 시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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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님의 시 '새로운 길'을 따라갑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까요? 윤동주 시인님이 밝혀주신 빛나는 길을 우러르며 따르며 함께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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