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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문덕수 시 꽃과 언어

by 빗방울이네 2024.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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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수 시인님의 시 '꽃과 언어'를 만납니다. 사상(事象)의 본질에 닿는 일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문덕수 시 '꽃과 언어' 읽기

 
꽃과 언어
 
- 문덕수(1928~2020 경남 함안)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영원한 한국의 명시를 찾아서」(문덕수 편저, 혜원출판사, 1981년) 중에서

 

2. '꽃잎'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나요?

 
문덕수 시인님의 시 '꽃과 언어'에서, '꽃'은 사상(事象), 즉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의 '대표 선수'입니다.
 
그러니까 '꽃과 언어'는 '사상(事象)과 언어'로 바꿔놓을 수 있겠네요.
 
우리는 사물과 현상을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고 인식합니다.
 
우리가 표현하는 언어는 그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을까요?
 
그 언어를 통해 우리는 사상(事象)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언어는 /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 된다'
 
이렇게 언어는 '꽃잎'이라는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고 하네요.
 
꽃잎에 닿자 꽃잎의 본질을 벗어나 '나비'가 되고 만다고요.
 
누군가 '꽃잎이다!'라고 꽃잎을 호명했을 때, 그대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꽃잎'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비'가 떠오르나요?
 
혹시 '동백꽃'이 떠오르나요? 
 
'꽃잎'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꽃잎'보다는 다른 것들이 줄줄이 따라 나오는 걸까요?
 
이런 현상에 대해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개념을 형성하는 방법입니다.
 
감각을 통하여 단편적이며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어떠한 지성적 질서도 없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개물로부터.
이런 이유로 나는 이러한 지각들을 닥치는 대로의 경험에 의한 인식이라고 부른다.

▷「에티카」(스피노자 지음, 황태연 옮김, 비홍출판사, 2015년) 중에서

 
그러니까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어떠한 지성적 질서도 없이' '닥치는 대로의 경험'에 의해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는 말로 새깁니다.
 
이런 인식을 스피노자는 제1종 인식이라 부르면서 '허위(오류)'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오류 속에서 언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언어는 /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 펄럭이다가 / 쓰러진다'
 
'쓰러진다'라고 하네요.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벗어난다는 말입니다. 변죽만 울리는 언어네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기호는 '문자 또는 소리(기표·記票)'와 '뜻(기의·記意)'이 결합된 것입니다. 
 
'꽃잎'이라는 문자는 기표, '꽃잎'이라는 문자의 의미(개념)는 기의입니다.
 
기표에 기의가 결합되어 기호/언어로서의 단어 '꽃잎'이 됩니다.
 
그런데요, 누군가 '꽃잎'이라고 호명했을 때 각자가 떠올리는 그 의미(개념)는 너무나 주관적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꽃잎'에 대한 개념이 똑같지 않다는 말이네요.
 
그래서 '꽃잎'이라는 언어를 들었을 때 우리는 각자가 자의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그 개념을 떠올리기 때문에 공통개념/본질을 공유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네요.
 
그러면 그 언어 '꽃잎'은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 채 공허하게 허공에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님은 '쓰러진다'라고 합니다.
 
왜 우리는 같은 '꽃잎'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 - 문덕수 시 '꽃과 언어' 중에서.

 

 

 

3. 왜 우리는 '꽃잎'에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요?


'꽃의 둘레에서 /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 불꽃처럼 타다간 / 꺼져도'
 
이렇게 언어가 사상(事象)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 우리가 언어를 통해 본질을 파악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네요.
 
왜 그럴까요?
 
각자는 자신의 신체의 상태에 따라서 사물의 일반적인 심상을 형성할 것이다.

▷위의 같은 책 「에티카」 중에서

 
스피노자는 어떤 사물을 접했을 때 저마다의 정신은 그 사물의 본질보다 저마다의 신체의 상태를 더 많이 반영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체의 상태에 따라 인식이 달라져 실체와 다르게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체는 각자 너무나 다르지 않나요?
 
신체의 상태, 즉 우리는 저마다 지식의 깊이나 경험의 폭이 다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신체의 상태를 가진 우리가 어떤 언어를 접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언어가 가리키는 외부의 사상(事象)의 본질보다 서로 다른 신체에 고정되어 있는 저마다의 개념을 먼저 떠올리게 되겠네요.
 
그러니 사상(事象)의 매개자인 '언어'는 제대로된 매개자 역할을 상실한 채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가고 말겠네요.
 
'어떤 언어는 /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 된다'
 
같은 꽃잎을 스쳤는데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내용으로 상념이 작동합니다.
 
어떤 이에게 닿은 언어(꽃잎)는 나비가 되고 어떤 이에게 닿은 언어(꽃잎)는 '꿀벌'이 되네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이 기막힌 사태를 어찌할까요?
 
우리는 시 '꽃과 언어'를 통해 언어의 한계, 지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물의 본질에 끊임없이 다가가는 노력하는 일 말입니다.
 
그 고군분투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행하게 될 오류를 방지하는 길일 테니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춘수 시인님의 시 '꽃을 위한 서시'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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