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편 제14장을 만납니다.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논어 학이편 제14장 읽기
子曰(자왈) 君子食無求飽(군자식무구포)며
居無求安(거무구안)하며
敏於事而愼於言(민어사이신어언)이고
就有道而正焉(취유도이정언)이면
可謂好學也已(가위호학야기)니라
공자께서 말했다.
군자로서 배불리 먹기를 구하지 않고
편히 살기를 구하지 않으며
할 일을 미루지 않으면서 말은 신중하고
도를 좇아서 바르게 한다면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인가를 묻는 논어」(윤재근 지음, 동학사, 2008년 3쇄) 중에서.
2. 자기 향상을 추구하는 이의 삶의 자세는?
첫 문장부터 만나봅니다.
'君子食無求飽(군자식무구포)'
'군자(君子)'가 주어로 등장하네요.
국어사전에 '군자'의 뜻은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예전에 높은 벼슬에 있던 사람', '아내가 자기 남편을 이르던 말'로 나옵니다.
이 '군자'라는 단어에서 옛날의 냄새가 난다고요?
오늘날 군자는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위 책에서 내린 군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떠올려봅니다.
- '자기 향상(自己向上)을 쉼 없이 성취하는 주인'(학이편 제8장)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네요. 왜 배울까요? 자기 향상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고요.
군자에 대한 이런 정의이라면, 군자의 삶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이겠습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사람, 군자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食無求飽(식무구포)' 먹을 때는 배불리 먹기를 구하지 않는다.
'無'는 형용사 '없다'라는 뜻 말고도 동사로 '아니다, 금지하다, 하지 않다'의 뜻이 있다는 점을 새깁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하지 않다'의 뜻으로 쓰였네요.
배부를 '飽(포)'는 '속이 꽉 차다'는 뜻입니다. 구할 '求(구)'에는 '탐하다, 욕심을 부리다'의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無求飽(무구포)'는 속이 꽉 차도록 배부르기를 욕심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네요.
식탐(食貪: 음식을 탐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
음식을 먹을 때 지키면 좋은 3가지 실천사항도 떠오르네요.
①적게 ②천천히 ③꼭꼭 씹어서.
'食無求飽(식무구포)'는 음식을 너무 많이, 빨리, 잘 씹지 않고 쓸어 넣듯 먹는 식습관을 반성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居無求安(거무구안)' 사는 곳이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居無求安(거무구안)'은 앞에 나온 '食無求飽(식무구포)'와 같은 배치네요.
그런데 이 문장은 지금의 우리네 욕망과 동떨어진 나머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사는 곳이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다니요!
검소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호화롭게 사치하지 않고 딱 필요한 것만 있는 거처입니다.
불편할 정도로 딱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사는 삶이네요.
'居無求安(거무구안)'에서 옛날의 냄새가 난다면, 근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이라는 단어는 어떤가요?
둘 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소박한 생활을 말하네요.
욕망의 최소화!
3. 호학(好學)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쳐가는 삶
'敏於事而愼於言(민어사이신어언)' 일을 재빨리 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삼간다.
이 문장은 '敏於事(민어사)'와 '愼於言(신어언)'이 '그리고'라는 뜻의 '而(이)'로 연결된 구조입니다.
'敏於事(민어사)'에서 '敏(민)'은 '민첩(敏捷)하다' '재빠르다'의 뜻입니다. '敏於事(민어사)'는 일(事)을 하는 데 있어 민첩하다, 재빠르다는 말이네요.
'愼於言(신어언)'에서 '愼(신)'은 '삼가다, 근신하다, 두려워하다'의 뜻입니다. '愼於言(신어언)'은 말(言)에 신중한 태도를 말하네요.
그런데 이 둘을 왜 '그리고'라는 접속사(而)로 나란히 연결해 두었을까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말만 많은 사람이 떠오르네요. 입으로 일 다 하는 사람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라는 문장도 떠오르고요.
'就有道而正焉(취유도이정언)' 유도를 좇는다. 그래서 그 도에 따라 바르게 고친다.
이 문장에서는 '正(정)'이란 글자에 눈길이 머물게 되네요.
'正(정)'은 형용사인 '바르다'의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동사로는 '바로잡다' '다스리다' 같은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쓰임인데, 스스로를 바로잡는 것을 말하네요.
흐트러진 자신을 바르게 돌려 바로잡는 것, 고치는 것 말입니다.
'有(유)'는 '있다'(형용사)의 뜻 외에도 동사로 '가지다, 소지하다, 친하게 지내다'의 뜻도 있습니다.
'就(취)'는 '나아가다, 좇다, 따르다'의 뜻입니다.
그래서 '就有道(취유도)'에서는 '유도(有道)'를 지향한다는 함의가 느껴집니다.
그것도 잠시도 소홀함 없이 거기에 딱 달라붙는다는 느낌이 드네요.
'유도(有道)'는 '정도(正道)에 맞음' '덕행(德行)이 있음' '도덕(道德)을 몸에 갖추고 있음'이라는 뜻이네요.
'就有道而正焉(취유도이정언)'
이 문장은 '就有道(취유도)'와 '正焉(정언)'이 접속사 '그리고(而)'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군자는 한순간도 소홀함 없이 항상 '유도'를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쳐나가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드러나네요.
군자의 삶의 자세를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배불리 먹기를 욕망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일처리를 빠르게 하고 말에 신중하며,
항상 도(道)에 달라붙어 추구하면서
그 도에 자신의 행실이 맞는지 안 맞는지 스스로를 고쳐가는 삶!
그래놓고 논어의 제14장은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무리하네요.
'可謂好學也已(가위호학야기)' 그러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는 '好學(호학)'이 핵심어입니다.
나아가 오늘 만난 학이편 제14장의 핵심어입니다.
'好學(호학)'은 말 그대로 학문을 좋아하는 것,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군자'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상기해 봅니다.
군자의 정의는 '자기 향상(自己向上)을 쉼 없이 성취하는 주인'이라고 하였습니다.
'好學(호학)'의 배움(學)은 자기 향상을 위한 배움이겠지요?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배우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 내면에 점점 지혜가 쌓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밝고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욕망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요?
그리하여 행복해지는 일, 그것은 욕망을 줄이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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