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시인님의 시 '푸라타나스'를 만납니다. 플라타너스를 70년 전엔 이렇게 표기했네요. 시인님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읽기
푸라타나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푸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푸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푸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푸라타나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것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窓)이 열린 길이다.
- 「김현승 시전집」(관동출판사, 1974년) 중에
김현승 시인님(호:다형, 1913~1975)은 전북 출신인 부친의 신학 유학지 평양에서 태어나 부친의 목회 부임지를 따라 제주로, 전남 광주로 이주해 성장했습니다. 1934년 시인님이 재학 중이던 숭실전문학교 양주동 교수님의 소개로 2편의 장시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57년 첫 시집 「김현승 시초」를 비롯, 「옹호자의 노래」 「견고한 고독」 「절대 고독」 「김현승 시전집」 등을 냈고, 사후에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 시선집 「다형 김현승 시선집」 등이 출간됐습니다. 평론집 「한국현대시해설」, 산문집 「고독과 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등이, 평전 「지상에서 마지막 고독」이 있습니다.
시인님은 1953년 전남 광주에서 동인지 「신문학」을 창간해 주간을 맡았고, 조선대 숭실대 숭전대 교수, 한국문학가협회 상임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및 시분과 위원장,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전라남도 제1회 문화상 문학부문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문학부문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절대 고독의 반려자, 푸라타나스
가로수 플라타너스, platanus는 그리스어 'platys'에서 유래된 '잎이 넓은 나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70년 전 이 시의 표기대로 ‘푸라타나스’로 읽습니다.
이 시에는 '푸라타나스'라는 단어가 5개 연마다 다 들어있네요. 낭송해 보면 단어의 리듬감이 근사합니다. 낭송해 보시지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서요.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푸라타나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중에서
약력(「다형 김현승의 삶과 문학」)을 보니, 1934년 등단한 시인님은 1937년(24세)부터 해방되던 1945년(32세)까지 시를 발표하지 않았네요. 왜일까요?
신사참배 문제로 시인님의 대학 문이 닫혀 학업이 중단되고, 관의 압력으로 교사직에서 해고됐습니다. 생활이 아닌 생존을 위해 직장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를 시인님은 스스로 "지상에 태어난 한 식민지 청년의 형극의 길"이라 했습니다. 이 시기에 모친상까지 당해 "삶의 무상을 체험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1953년 「문예」지에 처음 발표된 이 시 '푸라타나스'에는 그런 시인님의 좌절과 고뇌가 깔려있네요. 이 즈음 40세가 된 시인님의 산책길에는 푸라타나스가 줄지어 있네요.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푸라타나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중에서
시인님은 왜 '꿈을 아느냐'라고 푸라타나스에게 물었을까요? 그대처럼 지금 어떤 근원적인 괴로움을 견디고 있을까요? 푸라타나스에게 묻고 있지만 실은 스스로에게 묻는 거네요.
시인님은 지상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정신은 늘 파아란 하늘을 지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푸라타나스처럼요. 이러한 내면의 독백은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맑게 높이 올려주는지요.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 푸라타나스, /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중에서
사모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거나 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고고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는 푸라타나스, 이건 시인님 자신이겠지만요, 그런 형상에서 사모의 감정이 없는 듯 보이나요? 푸라타나스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남의 것이 아닌!) 그늘을 드리워 타인을 위무해 줍니다. 그런 삶을 지향하는 시인님의 깊고 다정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먼 길에 올 제, / 홀로 되어 외로울 제, / 푸라타나스, /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중에서
여기서 우리는 시인님의 고독과 동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시인님은 파아란 하늘에 머리를 두고 자신의 것으로 그늘을 늘이는 푸라타나스의 천성과 함께 걷고 있네요. 얼마나 든든했겠는지요?
욕망할수록 고독해지겠지요. 푸라타나스의 천성이라면 아무 고독도 두려움도 없을 것만 같네요. 사실은 이것이 시인님이 스스로 추구(!)한 진정한 고독이었지만요.
이제 너의 뿌리 깊이 /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푸라타나스, /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읽기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진술인데 느낌표(!)까지 찍으며 강조한 까닭은 무얼까요? 이 구절은 우리에게 보내는 시인님의 눈짓인 것만 같네요. 피조물이라는 자각을 강조한 구절로 새깁니다. 생명의 유한성을 가진 실존적 존재,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고독에 대한 인식 말입니다.
3. 파아란 하늘에 머리를 적시고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 푸라타나스, /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읽기
시인님은 사후(死後)에 영혼의 안식처가 있는지 푸라타나스에게 묻고 있습니다. 파아란 하늘에 머리를 두고 그늘을 드리워주는 자연만이 알고 있는 섭리를요. 절대 고독의 절벽에 매달린 시인님이 신의 영원성이나 무한성을 묻고 있는 걸까요?
아무런 구원도 바랄 수 없는,
바라지도 않는 고독이기에
나는 나의 고독을 철저화하려 한다.
- 「다형 김현승의 삶과 문학」의 김현승 산문 ‘나의 고독과 나의 시’ 중에서
이렇게 순수한 고독 그 자체를 동그마니 안고 있는 시인님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 그것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窓)이 열린 길이다
- 김현승 시 ‘푸라타나스’ 읽기
이렇게 실존이 처한 절대 고독의 반려자인 푸라타나스의 이웃이 되고자 합니다.
고독과 우수로 가득한 삶의 길에 육신은 땅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이렇게 자연과 동행하면서 정신은 언제나 저 멀고도 높은 '파아란 하늘'을 지향하며 살고자 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타인을 위한 그늘을 늘여가며 겸허하게 살고자 합니다.
이 시는 푸라타나스에게 묻는 형식이지만, 사실은 별빛처럼 형형한 시인님 내면의 독백이자 다짐이었네요. 이제 푸라타나스만 보면 시인님의 독백과 다짐의 목소리가 들려오겠네요. 사랑합니다,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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