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8. 3.
반응형

윤동주 시인님의 시 '자화상'을 만납니다.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함께 읽으며 자신만의 우물에 마음을 비추어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윤동주 시집」(권일송 편저, 청목문화사) 중에서


윤동주 시인님(1917~1945)은 북간도 명동촌 출신으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43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유학 중 '독립운동' 사상범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에 시달리다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습니다. 1948년 정지용 시인님의 서문, 그리고 윤동주 시인님 친구인 언론인 강처중 님의 발문이 붙은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습니다.

2. 자기를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반성하기


시를 만나봅니다. 시의 제목이 ‘자화상’이라는 점을 떠올립니다. 스스로 그린 자신의 초상화라는 말이네요. 윤동주 시인님은 어떻게 자신의 초상화를 완성해 갔을까요?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 윤동주 시 ‘자화상’ 중에서


혼자입니다. 이렇게 혼자서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에 있는 우물을 찾아가는 심정은 어떤 심정일까요?

이 시가 쓰인 때는 1939년 일제강점기입니다. 윤동주 시인님은 이때 억압과 굴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22세의 청년입니다. 괴로움과 외로움이 전해오네요.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


밤이군요. 달이 밝은 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주춤거리게 되네요. 밝은 달밤이라도 우물에 무엇이든 비칠까요? 깊은 우물은 깜깜할 텐데요. 그런데 시인님은 우물 속에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 그리고 가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우물이 실재의 우물이 아니라 마음속의 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네요. 시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행위는 무얼까요? 바로 성찰입니다.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관찰하고 반성하고 고치는 일입니다.  

그대도 그대 자신을 타자처럼 객관화해서 바라본 적이 있겠지요? 거울이나 우물에 비친, 객관화된 그대 모습은 아주 마음에 드는 편인가요?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이상적인 모습에 투영하곤 합니다. 그래서 '현실의 나'와 '이상적인 나'와는 괴리감이 큽니다. 자의식의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겠네요. 시의 화자도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졌다고 합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윤동주 시 '자화상' 중에서


미워졌던 자신이 왜 가여워졌을까요? 미워졌던 그 사나이도 타자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요. 이렇게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미워졌다가 이젠 그런 자신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윤동주시자화상중에서
윤동주 시 '자화상' 중에서.

 

 

3.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힘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 윤동주 시 '자화상' 중에서


이젠 그리워진다고 합니다. 이 진술로 비추어 우리는 우물을 들여다보는 시 속 화자의 행위가 이날 단 한번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우물이라고 명명된 자의식 속에 자신을 비춰보고 또 비춰보는 행위를 끊임없이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네요.

그리하여 방황과 고뇌 속에서 좌충우돌하던, 그래서 스스로 보아도 미웠던 그 이전의 사나이가 이제 그리워졌다고 하네요. 이는 이 사나이에게 심적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미워했던 그 사나이가 그리워질 만큼 시의 화자는 성숙한 걸까요?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


어느 날 다시 우물을 찾아갑니다. 그 우물이 현실 속의 우물이든 마음속의 우물이든 이제 중요하지 않겠네요. 대자연이 응축되어 있는 그 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물 밖의 사나이는 변했네요. 변화된 화자는 우물 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립니다. 그 우물 속에는 방황하고 고뇌하던 그 시절의 청춘이 아직 있었네요.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었네요.

윤동주 시인님의 시 '자화상'은 백석 시인님의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 백석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백석 시인님은 이 시에서 계속 자기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세상이 자기에서 주는 상처를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생각이 나를 뜨겁게 한다, 슬프게 한다는 것도 생각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우리는 백석 시인님의 '내가 생각하는 것은'을 함께 읽으며 '메타 인지(meta認知)'에 대해 공유한 바 있습니다. 이는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발견하고 통제하는 성찰의 정신작용입니다. 인지에 대해 인지하는 것,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자기를 검증하면서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한 두 시인님들의 뜨거운 몸부림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빗방울이네도 어서 빗방울이네만의 우물가로 가보아야겠습니다. 좀 씻어야겠습니다, 마음을요. 그대에게도 그대만의 우물이 있겠지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 '새로운 길'을 만나보세요.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읽기

윤동주 시인님의 시 '새로운 길'을 따라갑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까요? 윤동주 시인님이 밝혀주신 빛나는 길을 우러르며 따르며 함께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승 시 플라타너스 읽기  (63) 2023.08.06
김규동 시 느릅나무에게 읽기  (59) 2023.08.04
김종삼 시 묵화 읽기  (62) 2023.08.01
유치환 시 깃발 읽기  (53) 2023.07.31
김현승 시 눈물 읽기  (56) 2023.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