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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현승 시 겨울 나그네

by 빗방울이네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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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시인님의 시 '겨울 나그네'를 만납니다.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히고 싶어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현승 시 '겨울 나그네' 읽기

 

겨울 나그네

 

- 김현승(1913~1975, 평양 출생)

 

내 이름에 딸린 것들

고향에다 아쉽게 버려두고

바람에 밀리던 푸라타나스

무거운 잎사귀 되어 겨울길을 떠나리라.

 

구두에 진흙덩이 묻고

담장이 마른 줄기 저녁 바람에 스칠 때

불을 켜는 마을들은

빵을 굽는 난로같이 안으로 안으로 다수우리라.

 

그곳을 떠나 이름 모를 언덕에 오르면

나무들과 함께 머리 들고 나라니 서서

더 멀리 가는 길을 우리는 바라보리라.

 

재잘거리지 않고

누구와 친하지도 않고

언어(言語)는 그다지 쓸데없어 겨울 옷 속에서

비만(肥滿)하여 가리라.

 

눈 속에 깊이 묻힌 지난해의 낙엽(落葉)들 같이

낯설고 친절한 처음 보는 땅들에서

미신(迷信)에 가까운 생각들에 잠기면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치리라.

 

어름장 깨지는 어느 항구(港口)에서 

해동(解凍)의 기적 소리 기적(奇蹟)처럼 울려와 

땅 속의 짐승들 울먹이고

먼 곳에 깊이 든 잠 누군가 흔들어 깨울 때까지.

 

- 「김현승 시전집」(김인섭 엮음/해설, 민음사, 2005년) 중에서

 

2. '더 멀리 가는 길을 우리는 바라보리라'

 

김현승 시인님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시 '가을의 기도'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견고한 고독」 「절대 고독」 등의 시집을 냈는데, 고독을 추구하며 고독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했습니다.

 

오늘 만나는 김현승 시인님의 시 '겨울 나그네'에도 고독이 가득하네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도 떠오르는 시입니다.

 

고독과 고통으로 가득한 한 남자가 창백한 겨울 풍경 속을 끊임없이 헤매는 운율의 시입니다.

 

우리도 저마다 고독한 '겨울 나그네'가 되어 시 속으로 들어갑니다.

 

'내 이름에 딸린 것들 / 고향에다 아쉽게 버려두고

바람에 밀리던 푸라타나스 / 무거운 잎사귀 되어 겨울길을 떠나리라.'

 

우리 이름에는 참으로 많은 것이 딸려 있네요.

 

누구의 어머니나 아버지, 아내나 남편, 친구나 연인, 직장에서 팀장이나 팀원 ···

 

그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지요?

 

그 수많은 관계 속에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딸린 것들'을 '고향에다 아쉽게 버려' 둔다고 합니다.

 

그렇게 버려두고 플라타너스('푸라타나스') 잎사귀 되어 겨울길을 떠난다고 하네요.

 

'바람에' 이리저리 '밀리던' 플라타너스 '무거운 잎사귀'라고 했으니 정처 없이 떠나는 길입니다.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위치나 명칭을 다 떼어버린 뒤 정처 없이 떠나는 길입니다.

 

현실에서의 억압과 고통을 벗어나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상태입니다.

 

'구두에 진흙덩이 묻고 / 담장이 마른 줄기 저녁 바람에 스칠 때'

 

'구두에 진흙덩이 묻고'에서 화자의 오랜 방황의 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담장이(담쟁이) 마른 줄기'가 저녁의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네요.

 

'담장이 마른 줄기'에서는 화자의 바스러질 듯, 그러나 무언가를 타고 오르려 안간힘을 다하는 애틋한 정서가 느껴지네요.

 

'불을 켜는 마을들은 / 빵을 굽는 난로같이'

 

참으로 아름다운 구절이네요.

 

화자는 들길과 산길을 하루종일 걸었을까요?

 

허기진 몸으로 어느 언덕에 도착했을 때 멀리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있는 마을을 보게 되었네요.

 

그 원경으로 본 '불을 켜는 마을'이 '빵을 굽는 난로' 같았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빵을 굽는 향기로운 냄새도 나고요, 난로 속에서 빵이 부풀듯 그 집의 행복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도 드네요.

 

'안으로 안으로 다수우리라'

 

'다수우리라'의 기본형 '다숩다'는 '다습다'의 변형으로 새깁니다. '다습다'는 '알맞게 따스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수우리라'에서는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따뜻함 말고도 심리적으로도 편안한 기운이 함께 느껴지네요.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다수운' 풍경에서 소외된 화자의 쓸쓸함을 더 진하게 느끼게 되네요.

 

'그곳을 떠나 이름 모를 언덕에 오르면 / 나무들과 함께 머리 들고 나라니 서서'

 

'구두에 진흙덩이'가 묻은 화자는 '빵을 굽는 난로' 같은 '그곳' '불을 켜는 마을'에 가지 않았네요.

 

화자의 관심은 현실에서의 만족과 안온이 아닌가 봅니다. 

 

그 따뜻한 난로 같은 마을에 가서 추위를 녹이고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 '나무들과 함께 머리 들고 나라니(나란히) 서서'

 

이 구절도 참 좋습니다.

 

인간과 나무라는 분별에서 벗어난 허허로움과 자유가 느껴집니다.

 

자연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아니 자연 그 자체이고 싶은 것이 화자의 심정일까요?

 

'더 멀리 가는 길을 우리는 바라보리라'

 

'더 멀리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

 

현실은 암울합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다툼 속에 아무것도 믿고 의지할 수 없었네요.

 

그 속에서 우리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더 멀리 가는 길'은 그런 고독과 불안을 벗을 수 있는 길일까요?

 

아등바등 살고 있는 세속의 욕망과 번뇌를 벗어나는 길일까요?

 

"겨우내_다수운_호올로에_파묻히리라"-김현승_시_'겨울_나그네'_중에서.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히리라" - 김현승 시 '겨울 나그네' 중에서.

 

 

3.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치리라'

 

'재잘거리지 않고 / 누구와 친하지도 않고'

 

'재잘거리지 않고'. 어쩌다가 우리는 말을 잠시도 멈출 수 없게 되었나 봅니다.

 

내면으로 향하는 침묵의 시간을 견딜 수 없게 되었나 봅니다.

 

말을 줄인다면 우리의 번뇌를 그만큼 줄일 수 있을까요?

 

'누구와 친하지도 않고'.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 일도 번뇌를 수반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는 누구와 친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감추어야 할 때가 많은지!

 

그러기 위하여 얼마나 없는 말과 없는 표정이어야 하는지! 

 

'언어(言語)는 그다지 쓸데없어 겨울 옷 속에서 / 비만(肥滿)하여 가리라.'

 

그렇게 고독 속으로 침잠하게 되면 '언어는 그다지 쓸데없어'지게 되겠지요?

 

'언어'는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고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그 '언어'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분별과 망상에 휩싸이는지 모릅니다.

 

언어가 적멸한 상태, 언어가 가리키는 실체는 그 언어에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참'을 볼 수 있을까요?

 

'눈 속에 깊이 묻힌 지난해의 낙엽(落葉)들 같이 / 낯설고 친절한 처음 보는 땅들에서

미신(迷信)에 가까운 생각들에 잠기면 /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치리라.'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치리라'라는 구절이 이 시의 가장 높은 솟대이네요.

 

- 겨우내(겨울 내내) 다수운(다스운) 호올로(홀로)에 파묻치리라(파묻히리라) 

 

겨울 내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겠다고 합니다.

 

'내 이름에 딸린 것들' 다 버리고 '재잘거리지 않고 누구와 친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병이 들면 곡기를 끊고 몸의 자생력을 키우는 짐승이 문득 떠오르네요. 

 

'다수운 호홀로'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화자의 고독이 결코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 자초된 고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홀로'의 옛말 '호올로'는 빵이 부풀듯 서서히 내면이 부풀어 오르는 '홀로'라고 할까요?

 

그리하여 '더 멀리 가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치리라'

 

이 구절에서 김현승 시인님의 다른 시 '가을의 기도'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김현승 시 '가을의 기도' 중에서.

 

두 구절 모두 세속의 욕망과 번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인님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미신(迷信)에 가까운 생각들에 잠기면'은 어떤 의미일까요?

 

'미신'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미신에 경도되곤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안과 고독의 상태에서 화자는 절대 고독의 세계로 침잠하여 구원을 간구하는 것일까요?

 

'어름장 깨지는 어느 항구(港口)에서 / 해동(解凍)의 기적 소리 기적(奇蹟)처럼 울려와 

땅 속의 짐승들 울먹이고 / 먼 곳에 깊이 든 잠 누군가 흔들어 깨울 때까지.'

 

'해동(解凍)'은 얼었던 것이 녹아서 풀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해동의 기적소리'에서 우리는 화자가 처한 현실이 꽁꽁 얼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꽁꽁 언 현실은 암울한 시대 상황일 수도 있고, 개인이 처한 고뇌와 방황의 시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적(奇蹟)'은 신에 의하여 행하여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꽁꽁 언 시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울 때까지' 

 

누군가 화자를 흔들어 깨웠을까요?

 

그 누군가는 신일까요?

 

신은 화자를 고독과 불안의 늪에서 건져주었을까요?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치리라'라고 읊어야 했던 시인님의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꽁꽁 언 시간, 불안과 고독 속에서도 '더 멀리 가는 길'을 지향했던 시인님의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좀 나아졌는지요?

 

'구두에 진흙덩이'를 묻히고 하염없이 걷는 '겨울 나그네'의 시간이 필요한 겨울입니다.

 

'겨우내 다수운 호올로'에 파묻혀 내면을 향하는 긴 동면이 필요한 혹독한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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