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명저 「에티카」의 한 문장을 만납니다.
질투심에 대한 문장입니다. 질투심은 왜 생기게 될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스피노자 「에티카」 문장 읽기
책을 읽다가 만약 이런 문장을 만난다면, 성격 급한 이라면, 읽던 책을 덮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말입니다.
어떤 문장일까요?
스피노자(1632~1677,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명저 「에티카」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인간은 본성상 질투적이라는 것,
즉 동배의 무력함을 기뻐하고 동배의 덕을 슬퍼한다는 것이다.
▷「에티카」(스피노자 지음, 황태연 옮김, 비홍출판사, 2015년) 중에서.
인간은 질투적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본성상(!)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본성적으로 질투하게끔 되어 있다는 말인데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인간은 본성상 질투적이라는 것'
이 문장은 「에티카」의 제3부 '감정의 기원과 본성에 관하여' 부분에 등장합니다.
감정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미주알고주알 캐고 있는 챕터입니다.
그중의 하나로 질투라는 감정의 기원과 본성을 설명하면서 앞의 문장이 나온 것입니다.
그대는 '인간은 본성상 질투적'이라는, 이 스피노자의 통찰에 동의하시나요?
빗방울이네는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요, 조금씩 시간이 흐를수록 이 문장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빠져들고 말았답니다.
'그래 맞아, 스피노자의 말이 맞아, 내 경우를 봐서도 이 말 맞아'라고 동의하면서요.
2. 질투심은 왜 일어나는가?
이 문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이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문장을 함께 읽습니다.
우리 자신을 고찰함으로써 인해 생기는 기쁨은 자기애 또는 자기만족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기쁨은 자기의 덕 또는 활동능력을 고찰할 때마다 되풀이되기 때문에,
각자는 자신의 실적을 드러내어 말하거나 자신의 신체 및 정신의 힘을 과시하게 되고,
결국 인간은 이런 이유로 서로 불쾌감을 가지게 된다.
▷위의 같은 책 중에서.
좀 까다롭게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의외로 뜻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 기쁨 중에는요, 스스로를 보면서 생기는 기쁨, 즉 자기애/자기만족이 있다고 하네요.
이 자기애/자기만족의 기쁨은 자기의 잘난 점이 느껴질 때마다 샘물처럼 퐁퐁 솟아난다는 거죠.
바로 이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어 상대방에게 뻐기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기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적을 드러내어 말하거나 자신의 신체 및 정신의 힘을 과시'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A라는 사람도 그렇고 B라는 사람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서로 충돌하게 되겠지요.
스피노자는 그 말을 이렇게 써놓았네요.
'결국 인간은 이런 이유로 서로 불쾌감을 가지게 된다'.
A가 자기애/자기만족을 끊임없이 추구하므로 자기를 드러내놓고 뻐깁니다.
B도 마찬가지입니다. A에게 질 수 없습니다.
B도 자기애/자기만족의 기쁨을 끊임없이 추구하므로 자기를 과시하게 됩니다.
이러니 A와 B는 서로에게 불쾌감을 가지게 되는, 참으로 불행한 구조가 되고 맙니다.
A는 자신의 기쁨을 위해 자신이 B보다 우월한 상태여야 합니다.
그런데 B가 우월하면 어떻게 되겠는지요?
기쁨보다 슬픔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하네요.
'인간은 본성상 질투적이라는 것,
즉 동배의 무력함을 기뻐하고 동배의 덕을 슬퍼한다는 것이다.'
「에티카」는 1675년에 완성된 책이라 이렇게 문장들이 무겁습니다.
현대어로 바꾸면, 한마디로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본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A의 입장에서 B가 자기보다 못났으면 기쁘고, B가 자기보다 잘 나가면 기분 나쁘다, 슬프다는 말입니다.
B가 못났다는 점에 비추어 A는 자기가 더 잘 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A는 자기만족/자기애의 기쁨이 퐁퐁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B가 자신(A)보다 잘 나가면 A의 신체는 위축되고 슬픔에 빠집니다. 기분이 나빠지는 거죠.
그건 B의 입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돌아보면 흔한 모임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서로 자기 잘 났다고 자랑하기 바쁜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이 나서면 또 한 사람이 나섭니다. 끊임없이 자랑대회가 이어집니다.
그런 상태를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네요.
'결국 인간은 이런 이유로 서로 불쾌감을 가지게 된다.'
모임에 갔다 오면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이 드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네요.
바로 자기 자랑대회에서 상대에게 한 수 밀렸기 때문이겠네요.
그런데 오늘의 문장에서 '동배'라는 단어가 나왔네요. 어떤 뜻일까요?
「에티카」는 라틴어로 쓰였지만, 그걸 번역했던 영어본을 함께 읽어봅니다.
Men are by nature envious,
or are glad of their equals' weakness and saddened by their equals' virtue.
▷「Ethics」(Benedict De Spinoza, Edited and Translated by Edwin Curley, Penguin classics, 1996)
'동배'는 영어판에서는 'their equals'로 번역되었네요.
'동배(同輩)'는 나이나 신분이 서로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말합니다. 동갑, 동년배, 또래 등과 유사한 말입니다.
'equal'은 명사로 쓰일 때 '동등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질투적이 되는 상대는 이런 '동배'간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오늘의 문장 속의 '동배'는 꼭 나이나 신분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동배'는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그룹'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같은 목적을 향해 가는 그룹의 일원이라면, 그 목적이 경쟁적으로 먼저 성취하면 좋은 구조라면, 나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질투심은 스피노자가 말한 대로 작동할 것입니다.
3. 영화 '그녀가 죽었다', 드라마 '대행사'의 질투의 대사들
영화 「그녀가 죽었다」 중에 나오는, 여주인공 한소라의 마지막 대사를 함께 읽습니다.
그녀는 남에게 관심을 받아야 살 수 있는 SNS 인플루언스입니다.
동료 인플루언스 살해혐의 등으로 구속되는데, 옥중 인터뷰 중에 기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당신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 한데 그거 얘기하면
'어떡해' 막 이러면서 위로해 주는 거 같죠?
근데 그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그냥 당신이 얼마나 불행하다고 느낄까 궁금해하고, 그게 끝이에요.
잘 나가는 사람 보면 사람들이 선망하는 거 같죠?
속으론 엄청 망하길 바라. 그게 인간이야.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보고 싶어서 환장을 해요.
남의 불행 보면서 상대적으로 우월감 채워보려는 한심한 것들이 바로 인간이라니까요.
▷영화 「그녀가 죽었다」(김세휘 감독, 엔진필름 제작, 2024년) 중에서.
영화의 내용 전개를 위한 극단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영화가 세태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새길 만한 문장입니다.
이 대사는 오늘의 문장에서 우리가 만나본 질투심의 문장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기쁨에만 온통 취해있는 존재인 것 같네요. 상대방의 기쁨은 아랑곳없이요.
얼마 전 캘리그래피를 하는 분이 쓴 글을 보여주었는데, 바로 이 문장입니다.
'기쁨을 나눴더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
이 문장은 드라마 '대행사'에서 인용된 문장이라고 합니다.
내가 기쁜 일이 있어 상대에게 말하니까 그게 '질투'가 되어 돌아오더라는 말입니다.
뒤의 구절은, 내가 슬픈 일이 있어 상대에게 말하니까 그것이 나의 흠이 되는 '약점'으로 돌아오더라는 말이네요.
왜 그런지는 우리 함께 앞서 질투심의 기원과 본성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통찰한 '인간은 본성상 질투적'이라는 이 믿기 힘든 사실 말입니다.
이 절망적인 기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성과라면, 우리는 질투심의 작동 원리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질투심은 '인간의 본성'대로 작동하는,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성상 질투적'이라는 문장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질투심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상대에게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을 조심하고 자제할 줄 알게 될 테니까요.
또한, 상대의 불도저 같은 드러냄을 참아낼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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