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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목월 시 나무

by 빗방울이네 202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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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인님의 시 '나무'를 만납니다.

 

내 속의 뿌리내린 '나무들'을 떠올리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생각하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목월 시 '나무' 읽기

 

나무

 

박목월(1916~1978, 경북 경주)

 

유성(儒城)에서 조치원(鳥致院)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修道僧)일까, 묵중(默重)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은 조치원(鳥致院)에서 공주(公州)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過客)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公州)에서 온양(溫陽)으로 우회(迂廻)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문(門)을 지키는 파수병(把守兵)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溫陽)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默重)한 그들의, 침울(沈鬱)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박목월 평전·시선집 「자하산 청노루」(이형기 편저, 문학세계사, 1986년) 중에서.

 

2. 나무로부터 받은 세 가지 인상은?

 

풍경 속에서 나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박목월 시인님은 나무를 보면서 3가지 생각을 하셨네요.

 

왜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을까요?

 

박목월 시인님의 산문시 '나무' 속으로 함께 들어가 봅니다.

 

'유성(儒城)에서 조치원(鳥致院)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修道僧)일까, 묵중(默重)하게 서 있었다.'

 

화자가 첫 번째로 만난 나무는 '한 그루 늙은 나무'였네요.

 

'수도승'은 깨달음을 위해 수행하는 승려를 말합니다. '묵중(默重)'은 말이 적고 몸가짐이 신중하다는 뜻입니다.

 

화자에게 왜 '한 그루 늙은 나무'가 '묵중하게' 서 있는 '수도승'처럼 보였을까요?

 

지금 화자는 수도승의 마음일까요?

 

삶이여, 저 '늙은 나무'처럼 묵중(默重)할 수 있기를.

 

저 '늙은 나무'처럼 부디 자잘한 욕망에서 벗어나 허허로울 수 있기를.

 

'다음날은 조치원(鳥致院)에서 공주(公州)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過客)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다음날' 화자가 두 번째 만난 나무는 '떼를 져 몰려' 있는 나무들입니다.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이라고 하네요.

 

이 구절은 언뜻 한 무리의 무지몽매(無知蒙昧)한 군중을 떠올리게 하네요.

 

화자 자신도 지금 그런 군중 속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소문에 휘둘려, 또는 자신의 소소한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는 삶이기를.

 

'가난한 마을'을 지나가는 '과객(過客)'의 삶이 아니라 온기라도 나누어 주는 삶이기를.

 

'공주(公州)에서 온양(溫陽)으로 우회(迂廻)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문(門)을 지키는 파수병(把守兵)일까, 외로와 보였다.'

 

화자가 세 번째 만난 나무는 '산마루'에 서 있는 나무들입니다.

 

낮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에 사는 몇 그루 나무였나 봅니다.

 

'하늘문(門)'은 하느님이 계신 곳의 문, 또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올라가 머무른다고 하는 곳의 문이겠습니다.

 

그런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이라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고 서 있는 파수병일 것입니다.

 

화자는 높은 '산마루'에 사는 나무를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좀 무거운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죽음이여, 늘 너를 생각하는 삶이기를.

 

나에게 삶만 있다면 이처럼 외롭지 않았겠으나 죽음을 생각하므로 더 소중해지는 삶이기를.

 

나에게 삶만 있다는 어리석은 자만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는 삶이기를.

 

"그후로_나는_뽑아낼_수_없는_몇_그루_나무를_기르게_되었다"-박목월_시_'나무'_중에서.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 박목월 시 '나무' 중에서.

 

 

 

3. 그대 안에 뿌리내린 나무 잘 기르고 있습니까?

 

화자는 유성에서 조치원, 조치원에서 공주, 공주에서 온양으로 가는 길에 모두 세 번 나무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행로에서 만난 각각의 나무들의 인상이 화자의 뇌리에 박혔습니다.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시의 급상승이 일어납니다.

 

온양을 떠나 서울로 돌아온 화자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온양(溫陽)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默重)한 그들의, 침울(沈鬱)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지난 며칠 동안 화자에게 세 가지 인상을 준 나무들입니다.

 

- 묵중한 수도승, 어설픈 과객,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

 

그런데 서울에 돌아와 보니 그 나무들이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라고 합니다.

 

마음 깊이 새겨져 떠나지 않는 그 나무들의 인상을, 나무들이 내 안에 그 뿌리를 깊이 박고 있다고 한 시적 표현이 이 시의 백미입니다.

 

외부의 현상과 내부의 현상을 의도적으로 혼동시켜 시를 읽는 우리를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우리의 내부에 뿌리내린, 잊고 있던 저마다의 나무를 떠올리게 되네요.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뇌리에 박힌 그 나무에 대한 세 가지 인상이 결국 나의 성정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기르게 되었다.'

 

이 마지막 구절이 우리네 가슴에 그 뿌리를 내리네요.

 

'몇 그루의 나무가 크고 있었다'가 아니라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기르는 일'은 방임하는 일이 아니라 돌보는 일이겠지요?

 

내 안에 뿌리내린 나무들을 방치한다면 그 무성해질 각각의 성정을 어찌하겠는지요?

 

묵중하고 침울하고 고독한 나무의 성정들, 나의 성정들 말입니다.

 

내 안에 뿌리내린 나무들을 잘 '기르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먼 하늘까지 날아가는 새들이 잠시라도 앉을 수 있게 가지를 내어주는 나무의 삶이기를.

 

한여름 길손에게 좁은 그늘이라도 내어주는 나무의 삶이기를.

 

그렇게 한철 꽃 피우고 열매 맺어도 제 것 아닌 나무의 삶이기를.

 

그대도 그대 속에 뿌리내린 나무들 잘 기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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