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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남조 시 겨울 바다

by 빗방울이네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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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님의 시 '겨울 바다'를 만납니다. 겨울 바다에 가서 삶의 먼지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남조 시 '겨울바다' 읽기

 
겨울 바다
 
- 김남조(1927~2023, 경북 대구)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한국대표시인선집 - 김남조」(김남조 지음, 문학사상사, 2002년) 중에서

 

2.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김남조 시인님의 시 '겨울 바다'는 1967년에 나온 시인님의 제6시집 「겨울 바다」에 실린 시입니다. 시집 이름이 된 시, 시집의 '대표선수' 시입니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 미지의 새 /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 김남조 시 '겨울 바다' 중에서

삶이 우울해지면 바다에 가고 싶어집니다. 바다가 부르는 것만 같아서요.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고 모태여서 약해진 우리 몸과 마음을 자꾸 당기는 걸까요?

그런데 겨울 바다에 간 시인님은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라고 합니다. 새는 '꿈'이나 '희망' '소망'의 상징입니다. 그런 '새가 죽고 없었네'라는 것은, 지금 시인님이 꿈과 소망이 사라진, 고독과 절망에 빠져있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 매운 해풍에 /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 불붙어 있었네

- 김남조 시 '겨울 바다' 중에서

 
우리는 이 연에서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만납니다. 불과 물이 맞붙어 불붙고 있는 형상입니다. 상징의 대립입니다. 물은 생명이자 탄생, 변화와 성장, 희망을 상징합니다. 불의 상징은 소멸이자 상실, 허무이며 절망이겠네요.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허무의 불'이라는 구절에서 포말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시인님의 허무와 절망이 파도 위의 포말처럼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네요. 이렇게 물과 불이 뒤섞여 번뇌를 일으키고 모습이 겨울 바다에 온 시인님의 내면일까요?
 
나를 가르치는 건 / 언제나 시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 남은 날은 적지만

- 김남조 시 '겨울 바다' 중에서

 
우리도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그렇게 말하곤 하는데요, 시인님도 '세월이 약'이라고 말하네요. 겨울 바다를 마주하고 서서 시인님은 이 고통 또한 시간의 물살을 타고 나를 스쳐 지나가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통들도 그래왔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주는 가르침과 우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남은 날은 적지만'. 삶이 유한할지라도 서두르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 내면의 고통을 시간의 물살에 맡겨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까요?
 

"겨울바다에가보았지"-김남조시'겨울바다'중에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 김남조 시 '겨울 바다' 중에서.

 


 

3.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 기도의 문이 열리는 /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 남은 날은 적지만

- 김남조 시 '겨울 바다' 중에서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이 시에서 가장 높은 '우듬지'입니다.
 
이때의 기도는 일상 속의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겠네요. '작은 나'가 아닌 '큰 나'를 위한 기도일 것입니다. 허무와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고통에 쉽게 달라붙고 갈등하고 대립하는 '작은 나'를 버려야 가능하겠지요?
 
시인님은 삶의 유한성 속에서 그런 '사아(私我)'를 버리고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을 지나 궁극의 깨달음으로 가고자 합니다.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은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오는 황홀한 기쁨의 문일 것입니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 인고(忍苦)의 물이 /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김남조 시 '겨울 바다' 중에서


이 시의 마지막 연도 매우 인상적이네요. 우리 마음속에 단단한 신념의 기둥이 세워지는 듯한 느낌을 불러오는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시인님과 함께 '겨울 바다'에 왔습니다.

이 넓은 바다를 보아라, 너는 그렇게 작은 이가 아니란다, 본래 이렇게 다함이 없는 크기가 바로 너란다. 바다는 이렇게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겨울 바다로 가고 싶습니다. 거기 수평선 앞에 서서 마음속에 든든한 인고(忍苦)의 빗돌을 세우고 싶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남조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김남조 편지

김남조 시인님의 시 '편지'를 만납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이를 떠올려주는 시입니다. 시인님이 퍼올려주시는 따뜻한 사유의 목욕물을 저마다의 머리에 끼얹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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