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시인님의 시 ‘새얼굴’을 만납니다. 시인님은 아기 얼굴은 언제나 새얼굴이라고 합니다. 아기처럼 새얼굴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인님이 주신 맑은 기운으로 독서목욕을 하며 저마다의 얼룩진 표정을 씻어 보십시다.
1. 김광섭 시 ‘새얼굴’ 읽기
새얼굴
- 김광섭(1905~1977, 함북 경성)
아기가 들어와
아침 하늘을
얼굴로 연다
아기는
울고나도 새얼굴
먹고나도 새얼굴
자고나도 새얼굴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새얼굴
- 「이산 김광섭 시전집」(홍정선 책임편집, 문학과지성사, 2005년) 중에서
2. 아기는 무엇으로 ‘아침 하늘’을 열까요?
이 시는 1971년 발간된 김광섭 시집 「반응」에 실렸습니다. 지금(2023년)으로부터 50년 전에 쓰인 시입니다. 시인님 66세 즈음입니다.
시인님은 이즈음 아기를 정말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만나는 ‘새얼굴’을 비롯, ‘대통령’ ‘손자를 안고’, 그리고 이곳 독서목욕탕에서 읽은 ‘아기와 더불어’와 같은 주옥같은 아기 시편들을 남겼습니다.
시인님은 왜 그리 아기를 좋아했을까요?
사람 가운데 가장 천진한 것이 아기인 까닭에 아기와 있는 것이 나의 생활의 큰 부분이다.
- 「시와 인생에 대하여」(김광섭 지음, 한국기록연구소, 2014년) 중에서
‘사람 가운데 가장 천진한 것이 아기’이기 때문에 아기를 좋아한다고 하셨네요. 천진난만한 아기에게서 때 묻지 않은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아기가 들어와 / 아침 하늘을 연다 / 얼굴로 연다
- 김광섭 시 ’새얼굴‘ 중에서
노후에 아기를 좋아하셨다는 시인님. 아침 잠자리에 있는데 손주가 아장아장 다가왔을까요? ‘아기가 들어와 아침 하늘을 연다’고 합니다. 방안에 ‘아기’가 들어옴으로써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기는 얼마나 신통방통한 힘이 있는지요. 다 큰 아들이나 딸이, 부인이나 남편이 방에 들어오면 그런 하늘이 열릴까요? 어림없다고요?
그것도 ‘아침 하늘’이 열렸다고 하네요. 저녁 하늘이 아니고요. 어두운 밤을 몰아내고 새로운 빛을 내는 아침 하늘요.
‘얼굴로 연다’. 이 3행에서 우리는 스르르 눈을 감지 않을 수 없네요. 그 ‘하늘’이 왜 열리는 걸까요? 아기 ‘얼굴’ 때문에요. 아기는 새로운 빛을 내는 ‘아침 하늘’을 ‘얼굴’로 연다고 하네요. 간밤의 어지러운 꿈을 순식간에 몰아내는 ‘아침 하늘’을 아기가 ‘얼굴’로 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귀여울까요? 그 방은 얼마나 환해졌을까요?
아기는
- 김광섭 시 ’새얼굴‘ 중에서
이 세 글자를 한 개의 독립행으로 배치했네요. 그만큼 비중이 있는 세 글자라는 말입니다. ‘어른’이 아니고 ‘아기’이어야 하니까요. 아기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다는 암시입니다. 아기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요. 무얼까요?
울고나도 새얼굴 / 먹고나도 새얼굴 / 자고나도 새얼굴
- 김광섭 시 ’새얼굴‘ 중에서
참으로 아기는 얼마나 ‘새얼굴’인지요? ‘울고나도’ ‘먹고나도’ ‘자고나도’ ‘새얼굴’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기는 순간순간 피어나니까요. 꽃이 난만(爛漫)하게 피어나듯이 아기 얼굴도 천진(天眞)하게 피어나니까요. 어른은 왜 그렇지 않을까요? 어른은 세상 먼지를 많이 마셔서 마음에 얼룩이 많으니까요. 어른이 되면서 마음에 쌓인,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 어리석음이 아기 때의 '순수'라는 보석을 덮고 있으니까요.
하늘에서 / 금방 내려온 / 새얼굴
- 김광섭 시 ‘새얼굴’ 중에서
그러므로 ‘아기 얼굴’은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천사 얼굴이네요. 아무런 꾸밈이 없는 얼굴, 꾸밀 필요 없이 예쁜 얼굴, 아니 ‘아기 얼굴’은 꾸미면 절대 안 되는 얼굴입니다.
어른들은 얼마나 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는지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얼마나 많은 표정을 바꾸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가면은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표정이겠네요. 나의 욕망이 만들어낸 얼굴 말입니다. 또 다른 욕망이 생기면 또 다른 표정이 생기겠지요?
이리하여 어른들은 가면을 벗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 걸까요?
3. ‘아기 얼굴’이 되는 묘책은 무엇인가요?
시인님, 어찌하면 아이처럼 ‘아침 하늘’을 여는 얼굴이 될 수 있을까요? 어른도 그것이 가능할까요?
어른은 천사의 상태에서만 / 아기의 천진(天眞)에 통한다
- 김광섭 시 ‘아기와 더불어’ 중에서
시인님은 아기의 천진(天眞)에 통하려면 천사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쁜 아기 앞에서 두 무릎이 저절로 자무룩 꺾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바로 그런 순간이 천사의 상태일까요?
일전에 이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읽은 문장이 떠오릅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어린아이 같이 하라.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가히 사람을 융화하고 덕을 이루는 데 들어가리라.
(待人之時如少兒樣 常如花開之形 可以入於人和成德也)
- 「천도교 경전 공부하기」(라명재 주해, 모시는사람들, 2013년 증보 1쇄) 중에서
사람을 대할 때 어린아이 모양(樣)으로 하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처럼요. 어린아이가 하듯이 하라고 하네요.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이 구절은 오늘 읽은 시의 구절과 맥락이 통하네요. 아까 시인님은 아기가 ‘울고나도’ ‘먹고나도’ ‘자고나도’ ‘새얼굴’이라고 합니다. 아기 얼굴은 순간순간 피어나는 얼굴이네요.
그런데 말이 쉽지, 어찌 어른이 이렇게 순간순간 피어나는 아기 얼굴이 될 수 있을지요?
흐린 기운을 쓸어버리고 맑은 기운을 어린 아기 기르듯 하라.
(消除濁氣 兒養淑氣)
- 「천도교 경전 공부하기」(라명재 주해, 모시는사람들, 2013년 증보 1쇄)의 ‘동경대전 탄도유심급’ 중에서
아기는 ‘못생김’ ‘잘생김’이 없습니다. 세속의 잣대로 아무리 ‘못생김’의 얼굴이라도 그 아기 얼굴은 참으로 사랑스럽지 않던가요? 뺨에 살며시 손가락을 대고 싶지 않던가요?
그 이유가 이 문장에 들어있네요.
맑은 기운!
아기는 맑은 기운의 절대 강자입니다. 그 맑은 기운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기 앞에서 스스로 무장해제 되네요. 이렇게 맑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으면 겉모습과 상관없이 사랑스럽겠네요. 그대가 아는 사람 중에도 잘 생긴 사람이 아닌데 같이 있으면 언제나 편안한 사람이 있지요? 그 사람은 맑은 기운이 가득한 이네요.
그래서 이 문장에서는 맑은 기운을 기르라고 합니다. 그것도 어린 아기 기르듯이요.
위의 같은 책에서는 흐린 기운은 욕심과 미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맑은 기운은 무엇인가요?
만물을 위하는 마음!
자기만, 또는 자기 가족만 챙기는 마음 말고, 세상 만물을 향하고 위하는 마음이 맑은 기운이라고 하네요. 욕심 없는 마음, 아이 마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김광섭 시인님의 시 '시인'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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