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인님의 시 '가을날에는'을 만납니다. 왜 우리는 가을날이면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고 싶을까요?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함께 시를 읽으며 독서목욕을 하며 마음을 씻어봅시다.
1. 최하림 시 '가을날에는' 읽기
가을날에는
- 최하림(1939~2010, 전남 목포)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는
가을날에는 요란하게 반응하며 소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컨대 조심스럽게 옮기는 걸음걸이에도
메뚜기들은 떼 지어 날아오르고 벌레들이 울고
마른풀들이 놀래어 소리한다 소리들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저만큼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멀리
사과밭에서는 사과 떨어지는 소리 후두둑 후두둑 하고
붉은 황혼이 성큼성큼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 최하림 시집 「풍경 뒤의 풍경」(문학과지성사, 2001년) 중에서
2. 시집 「풍경 뒤의 풍경」에 첫 시로 실린 시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최하림 시인님의 여섯 번째 시집 「풍경 뒤의 풍경」을 폅니다. 이 시집의 첫 시로 오늘 만나는 시 '가을날에는'이 있네요.
시집의 첫 시는 시인님의 윙크라 했지요? 「풍경 뒤의 풍경」이라는 시의 뜨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며 초롱을 들고 수줍게 서 있는 첫 시랄까요? 그만큼 시인님이 심사숙고 선택한 대표 주자일 것입니다.
첫 시는 시집 제목과 가까운 거리네요. '풍경 뒤의 풍경'. 풍경의 뒤편에 다른 풍경이 있다는 말로 새겨봅니다. 늘 거기 있었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풍경요. 우리의 편의대로 기호대로 ‘해석된 풍경’이 아니라 순수한 시간의 풍경요. 우리는 얼마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본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요.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는 / 가을날에는 요란하게 반응하며 소리하지 않는 것이 없다
- 최하림 시 ‘가을날에는’ 중에서
시의 제목이 된 ‘가을날에는’이 여기에 등장하네요.
우리 왜 ‘가을날에는’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게 될까요? 왜 그럴까요, '가을날에는'요.
문득 이 시 구절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 '독서 목욕'에서 읽었던 시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 안도현 시 '가을의 소원' 중에서
우리는 봄에서 여름까지 탄생과 약동, 성장과 쌓임의 시간을 거쳐왔습니다. 가을은 결실의 시간을 거쳐 상실로 가는 시간이네요. 그리하여 이 가을의 시간은 우리에게 쇠락과 소멸, 존재의 한계를 돌아보게 하네요. 비움을 위한 겸허한 성찰의 시간입니다.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는' 그대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요? 외롭고 쓸쓸한 그대의 촉수는 예민하게 벼려 있네요.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걷는 들길은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그 생명들이 '요란하게 반응하며 소리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시의 화자가 온몸의 세포를 열어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풍경 뒤의 풍경'을 감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습니다.
예컨대 조심스럽게 옮기는 걸음걸이에도 / 메뚜기들은 떼 지어 날아오르고 벌레들이 울고 / 마른풀들이 놀래어 소리한다
- 최하림 시 '가을날에는' 중에서
왜 화자는 걸음걸이를 '조심스럽게' 옮기고 있었을까요? '풍경 뒤의 풍경', 풍경의 이면에 있는 진실에 닿고자 하는 화자는 자신의 발을 딛는 곳이 수많은 생명들의 거처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른풀들이 놀래어 소리한다'. 우리는 풍경의 이면과 감응하려는 화자의 감성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3. 풍경 뒤의 풍경, 해석 이전의 풍경을 만나보셨나요?
소리들은 연쇄 반응을 / 일으키며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저만큼 나는 /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 최하림 시 '가을날에는' 중에서
'소리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는 구절과 '저만큼 나는'이 한 구절로 이어져 있네요. 그 연쇄 반응 속에 '나'도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네요. 풍경 속의 수많은 소리들의 연쇄 반응으로 인해 이 장엄한 자연의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네요. '나'도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네요. 존재들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동안 '나'는 늘 풍경 밖에서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주관적으로 재단된 풍경이었으므로 그때는 '풍경 뒤의 풍경'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나'는 이제 그 풍경 '속으로' 풍덩 들어왔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그 순간, '나'도 풍경의 일부였음을, '나'도 자연의 일부였음을 알게 되었을까요?
멀리 / 사과밭에서는 사과 떨어지는 소리 후두둑 후두둑 하고 / 붉은 황혼이 성큼성큼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 최하림 시 '가을날에는' 중에서
나와 풍경이 동화되면서, 나의 풍경이 아니라 풍경의 나로 치환되면서 생긴 내면의 변화일까요? 평상시에는 들을 수 없었던 멀리(!) 있는 사과밭의 사과 떨어지는 소리, 황혼이 내려오는 소리마저 들린다고 합니다. 화자는 이렇게 '풍경 뒤의 풍경', 해석 이전의 풍경과 조우하게 되었네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님의 시 구절이 떠오르네요.
명민한 짐승들은 우리가 이 해석된 세계에서
마음 편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란 아마도
날마다 바라보는 언덕의 한 그루 나무, 어제 거닐던 길
또는 한사코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르는 어떤 관습에의 맹종이리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집 「두이노의 비가」의 제1 비가 중에서
'해석된 풍경'에 갇혀버린 빗방울이네는 순수한 생명의 눈, '명민한 짐승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풍경 뒤의 풍경'이 궁금하기만 합니다.
사물의 참된 본질을 깊숙이 꿰뚫어 보아,
실재를 개념과 관념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곧장 실재에 연결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는 것,
그곳이 바로 수행입니다.
- 「틱낫한의 사랑법」(틱낫한 지음, 이현주 옮김, 나무심는사람, 2002년)
보다 열린 가슴으로 사물/풍경을 깊이 들여다보는 수련이 되어 있다면, 정의나 개념과 관념에 포획된 실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재'에 바로 다가갈 수 있게 될까요? '풍경 뒤의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요? 시인님, 궁금하고 또 궁금하기만 합니다!
'가을날에는'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녀보아야겠습니다. 천천히요. 혼자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최하림 시인님의 시 '메아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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