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님의 시 '소릉조'를 만납니다. 추석에 여비가 없어 고향에 가지 못한 시인님이 쓴 시입니다. 슬픈 시인데요, 읽으면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시입니다. 시인님이 데워주신 목욕물로 독서목욕을 하면서 마음을 씻어봅시다.
1. 천상병 시 '소릉조' 읽기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석에
- 천상병(1930~1993, 일본 출생, 창원 성장)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천상병 전집·시」(평민사, 1996년 1쇄, 2007년 12쇄) 중에서
2.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70년 추석에'라는 부제로 보아 1970년에 쓰인 시, 이 때는 천상병 시인님 40세 즈음입니다.
시인님이 돋아놓은 시의 이랑을 따라, 시인님이 파놓은 삶의 고랑을 따라 함께 졸졸 가보십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 고향 산소에 있고
- 천상병 시 '소릉조' 중에서
「천상병 시선」(박승희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년)에 따르면, 시인님의 부모님 고향은 창원입니다. 일본에서 난 시인님은 네 살 때 귀향해 초등학교 2학년까지 창원에서 살았네요. 그 고향에 아버지 어머니 산소가 있다고 하네요. 시인님 40세이니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네요.
외톨배기 나는 /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 부산에 있는데
- 천상병 시 '소릉조' 중에서
시 '소릉조' 속의 시인님은 지금 혼자 서울에 있습니다. 추석인데요. 이런 시인님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요?
시인님은 마산중학교 5학년 때 담임이었던 김춘수 시인님의 주선으로 「문예」지에 시를 발표했습니다. 정식 등단은 1952년이네요. 「문예」지를 통해서였는데, 1회 추천자가 유치환 시인님, 2회 추천자는 모윤숙 시인님이네요. 김춘수 유치환 모윤숙 시인님 같은 분들이 시인님의 언덕이었네요.
시인님은 한국전쟁 중 미군 통역관으로 일하기도 했고, 서울대학교 상대를 입학해 수료했습니다. 시작과 평론활동을 열심히 했고요, 다수의 외국서적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1964년에는 김현옥 부산시장 공보비서로 시청에서 2년 간 재직했습니다. 전도유망했던 젊은 시절의 시간들이네요.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사건 하나가 시인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네요. 1967년 동백림 사건요. 시인님은 이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그때 받았던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했습니다.
그는 왜 옥고를 치렀을까요?
북한을 다녀온 친구(강빈구)가 자기에게 북한을 갔다 왔다는 얘기를 했는데도
그걸 당국에 고발하지 않은 죄였다고 밝혔다.
친구를 고발하지 않은 죄가
투옥과 고문으로 이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 「천상병 시선」(박승희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년) 중에서
시 '소릉조'의 추석은 1970년 추석입니다. 목순옥 님과는 1972년 결혼했으니, 이 해 추석의 시인님은 노총각이네요. 3년 전 고문 후유증으로 그는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습니다. 매우 가난하고요.
여비가 없으니 / 가지 못한다
- 천상병 시 '소릉조' 중에서
얼마나 아프고 가난했을까요? 1년 후인 1971년에는 길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로요. 고문 후유증에다 과음과 영양실조로 말입니다. 그때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당했을 정도입니다.
'여비'가 없어 고향에 가지 못한다고 하네요. 천애의 고아처럼 외롭고 쓸쓸한 시인님의 처지가 슬프게 다가옵니다. 객지에서, 혼자서, 아픈 몸으로, 그것도 텅 빈 주머니로.
3.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저승 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 가지도 못하나?
- 천상병 시 '소릉조' 중에서
급반전이 일어났네요. 앞으로 잘 가시던 시인님이 갑자기 뒤를 획 돌아보는 느낌입니다.
하느님! 저는 여비가 없어 거기 못 가니 그리 아셔요! 이렇게 한 마디 던지고 줄행랑치는 시인님은 장난꾸러기 아이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쿡 하고 웃었다가 한숨 짓게 되네요. 가난하지만 천진난만한 시인님이 떠오르네요. 슬픔과 웃음이 뒤섞여 앞이 흐릿해집니다.
이렇게 시인님은 돈이 없어 고향에 못 가는 삶의 비애조차도 익살스러운 시 한 구절로 환하게 밝혀버리시네요. 그러나 그 바닥에 고여있는 눈물과 고단을 우리 왜 모르겠는지요?
생각하느니, 아,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천상병 시 '소릉조' 중에서
이 구절에서 시인님은 다시 한번 우리를 높고 환한 곳에 올려주시네요. '깊은 것'이라는 말에 우리는 저마다의 처지를 담가보며 서러워집니다. '깊은 것'. 삶이란 심연(深淵) 같아서 깊이를 알 수 없고 앞도 바닥도 알 수 없네요. 깜깜해서 숨을 쉬기도 어렵네요.
그렇지만 삶이란 희로애락이 무작위로 출몰하는 ‘깊은 것’이라서 지금의 고달픔 다음은, 꼭 그 다음은 우리가 기다리던 행복이겠지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왜 이 시의 제목이 '소릉조(小陵調)'일까요?
당나라 두보 시인님의 호가 소릉야로(少陵野老)인데, '소릉조(小陵調)'라는 제목은 두보의 시풍(詩風)으로 읊은 시라는 뜻이네요.
두보 시인님은 평생 변변한 직장 없이 타향을 떠돌며 가난과 비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서 천상병 시인님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꼈을까요?
1970년 추석입니다. 그립고 그리운 고향에 여비가 없어 가지 못한 그날, 천상병 시인님은 덩그러니 집에 홀로 남아 무엇을 했을까요?
만 리 밖 서글픈 가을에 늘 나그네 되어 / 백 년 많은 병에 홀로 높은 대에 올랐네
가난 속 희끗머리 많아 몹시 괴로운데 / 노쇠하여 새로이 탁주잔에 멈추네
- '두보 시 '등고(嶝高)' 중에서
'등고(嶝高)', 즉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중국의 중양절(음력 9월 9일) 풍속이라고 합니다. 두보 시인님이 56세 때 지은 시인데, 온갖 고단함을 겪은 삶의 결과는 가난과 무성한 백발, 늙어 쇠약해진 몸이라고 하네요. 이런 두보 시인님의 고달픈 삶을 위로해 주는 것은 탁주뿐인 것 같습니다.
천상병 시인님도 좋아했던 탁주입니다. 유난히 술을 좋아한 시인님도 그해 추석 고향에 못 가고 혼자 탁주를 드셨겠지요? 이렇게 맑고 깨끗한 슬픔의 시를 썼다 지웠다 하면서요. 아이같이 순수했던 자유인, 천상병 시인님이 그리운 밤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천상병 시인님의 시 '귀천'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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