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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광섭 시 마음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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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시인님의 시 '마음'을 만납니다. 시인님이 괴로울 때마다 암송했다는 시입니다. 시인님이 건네준 사유의 여울에 저마다의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광섭 시 ‘마음’ 읽기

 
마음

- 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백조(白鳥)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 시전집(일지사, 1974) 중에서


김광섭 시인님(1905~1977 )은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으로 「해외문학」(1927년)과 「문예월간」(1931년) 동인으로 활동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대한신문 및 세계일보 사장, 경희대 교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첫 시집 「동경(憧憬)」(1939년)을 비롯, 「마음」 「해바라기」 「성북동 비둘기」 「반응」 등의 시집이 있습니다.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국민훈장 모란장, 예술원상 등을 받았습니다.


2. 시인님이 괴로울 때마다 암송했던 시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 중에서
 

이 구절, 우리 모두 좋아하는 김광섭 시인님의 시 '성북동 비둘기'의 첫소절입니다.
 
오늘은 그의 다른 시 '마음'을 읽습니다. 시인님이 자서전 「시와 인생에 대하여」(한국기록연구소)에서 "괴로울 때면 이 시를 암송하면서 마음을 달랬다"라고 말한 바로 그 시입니다.
 
시인님이 수시로 암송하면서 괴로움을 삭힌 시라니 어떤 시인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우리도 함께 읽으며 시인님처럼 마음을 달래 볼까요?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 김광섭 시 '마음' 중에서
 

우리네 마음은 이렇게 무시로 '흔들리고' '그림자 지는 곳'입니다. 잠시도 고요한 상태로 머무는 것이 힘듭니다. 시인님의 마음도 고요한 물결이어서 외계의 사물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고 하네요.
 
돌을 던지는 사람 / 고기를 낚는 사람 / 노래를 부르는 사람

- 김광섭 시 '마음' 중에서
 

나쁜 말이나 행동으로 나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돌을 던지는 사람), 나의 물질이나 권리를 가져가 이익을 취하는 사람(고기를 낚는 사람), 내 마음을 유혹하며 평온을 방해하는 사람(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고요한 물결 같은 우리네 마음을 아프고 슬프고 화나게 합니다.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 /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 김광섭 시 '마음' 중에서
 

그런데 갖가지 이해관계로 얽힌 세속의 사람이나 일들과는 달리 별과 숲은 그럴 일이 없습니다. 별이나 숲 같은 자연은 나의 욕망과는 아무 얽힘 없이 본래 그대로 고요하여 시인님의 마음을 흔들지 않습니다.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릴뿐이고 숲은 말없이 잠드니 마음의 물결에 파문을 일으키지 않네요.  오히려 시인님의 외로운 밤의 동무이네요. 시인님은 이렇게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네요.
 

김광섭시마음중에서
김광섭 시 '마음' 중에서.

 

 

3. 일생의 진리는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

 
행여 백조(白鳥)가 오는 날 / 이 물가 어지러울까 /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 시 '마음' 중에서
 

이 마지막 연에서 다양한 변주가 일어납니다. '백조'와 '꿈을 덮노라'의 모호성은 우리가 시에 가까이 가는 것을 어렵게 하지만, 이 때문에 시의 의미망이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시인님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시에 대한 시인님의 직접적인 전언을 먼저 읽겠습니다.
 
시의 소지(素地)는 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 마음의 순수는 가난한 데 있다.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고 했다.
나는 이 마음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제3자를 시켜 비판하게 하는 것을 내심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욕(物慾)을 버리자는 것이 내 일생의 양심이었다. 
일생 동안 나에게서 변하는 않는 진리는 이 한 가지뿐이다.
물욕을 버리고 내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
이 풍파 많은 세상에 나를 오래 살게 한 데 대한 보은(報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이 시 '마음'은 내게 중요한 작품이다.

- 「시와 인생에 대하여」(김광섭 지음, 한국기록연구소, 2014) 중에서
 

시인님은 '내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이 '일생의 양심'이었고, 그러기 위해 물욕을 버리는 것을 삶의 기조로 정해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왜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려 했을까요? 바로 시의 소지(素地), 즉 시의 밑바탕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마지막 연을 읽습니다.
 
행여 백조(白鳥)가 오는 날 / 이 물가 어지러울까 /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 시 '마음' 중에서
 

백조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시인님이 지향한 지고(至高)의 순결한 경지, 깨달음의 경지를 생각합니다. 그처럼 더없이 순수한 마음, 가난한 마음의 눈에 시인님이 간구(干求)하는 시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백조는 순결한 경지에서 만나는 시심(詩心)이라고 새겨집니다. 시인님은 '시의 소지(素地)가 마음'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런 순수한 마음, 가난한 마음이 흔들리거나 어질러지면 '백조'가 올까요? 그래서 시인님은 밤마다 꿈을 덮는다고 하네요. 욕망을 덮는다고 하네요. 마음의 평정을 흔드는 욕망을 내려놓는다고 하네요. 밤마다요.
 
시 '마음'은요, 1939년 「문장」지 6월호를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시인님 30대 중반 즈음 쓰인 시네요. 그때는 일제강점기입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도 「마음」입니다. 궁핍과 억압의 고통 속에서도 순수하고 가난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쏟아내고 또 들여다보고 쏟아내곤 했을 시인님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광섭 시인님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만나보세요.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 읽기

김광섭 시인님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만납니다. 쫓기는 새 비둘기를 보니 자꾸 우리도 슬퍼지네요.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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