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님의 시 선우사'를 만납니다. 가자미를 좋아하십니까? 백석 시인은 유달리 가자미를 좋아한 시인입니다. 가자미를 소재로 쓴 시 한 편을 읽으며 함께 마음을 씻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백석의 반찬 친구들을 위한 시 '선우사'
선우사(膳友辭)
-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은 것 같다
- '정본 백석 시집'(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에서 발췌
어떻습니까? 천천히 읽다보면 서서히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오지요? 이 시는 백석의 함주시초(咸州詩抄) 연작 5편 중 네번째 시입니다. '선우사(膳友辭)'의 뜻은 '반찬 친구들을 위한 헌시'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2. 욕심 없고 착하고 정갈한 마음
이 시의 백미는 가자미와 흰밥 같은 사물을 자신과 나란히 놓고, 친구라고 따뜻하게 호명한 백석의 시선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평소 먹는 반찬에게 이렇게 정다운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쓸쓸한 '혼밥'의 풍경입니다. 흰밥에 반찬은 달랑 가자미(가재미) 하나 뿐입니다. 그리고 나 백석이 있습니다. 이렇게 적막한 외로움 속에 고요히 있다 보면 사물과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백석은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고 하는군요.
이들은 얼마나 오래 그리고 자주 만난 친구 사이기에 이렇게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3연에서는 순서대로 가자미와 흰밥과 나의 천성을 차례대로 소개해줍니다. 그런 다음 세 친구 모두 '욕심이 없어' '착하디착해서'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고 합니다.
이런 성정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백석은 이렇다고 말합니다.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로워할 까닭도 없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고!
욕심 없고 착하고 정갈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마음인지, 얼마나 큰 기쁨의 마음인지 백석은 깊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중한 성정을 가진 흰밥과 가자미와 내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은 것 같다'는 백석의 진술이 가슴 깊이 들어옵니다.
3. 당신은 어떤 반찬을 드시나요?
가자미와 흰밥을 앞에 두고 혼자 저녁을 먹는 백석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의 어깨를 만져주고 싶습니다. 가자미를 흰밥에 올려 놓고 바라보는 그의 깊고 검은 눈을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참으로 소박한 음식으로 정갈하게 살아가는 백석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서 백석은 가자미를 닮고 흰밥을 닮고 또 그런 식으로 서로를 닮아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세괃은(억센) 가시 하나 없는' 마음도 시도 나왔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반찬을 좋아하시는지요? 그것은 당신의 성정을 닮은 것인가요?
오늘 백석 시 '선우사'를 읽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음 목욕이 좀 되셨는지요?
책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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