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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강은교 시 사랑법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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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님의 시 ‘사랑법’을 만납니다.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사랑의 법, 삶의 법을 알려줍니다. 시인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강은교 시 ‘사랑법’ 읽기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시선 「풀잎」(민음사, 1974년) 중에서


강은교 시인님은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성장했습니다.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시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71년 첫 시집 「허무집」을 발간한 것을 비롯, 시집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벽 속의 편지」 「어느 별 위에서의 하루」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초록 거미의 사랑」 등을 냈습니다.
산문집으로 「추억제」 「그물 사이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무명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잠들면서 잠들지 않으면서」 「그 푸른 추억 위에 서다」 등이 있습니다.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박두진문학상, 구상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2. 사랑법, 제 몸의 힘을 전부 빼는 일


강은교 시인님의 시 가운데 독자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시, ‘사랑법’을 만납니다. 시구절의 울림이 좋아서 낭송 시로 인기가 많은 시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읽었나요?

빗방울이네는 시의 분위기가 참 단아하고도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인님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독백하는 어조가 우리를 시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네요.

사랑법이란, 사랑하는 방법 또는 사랑하는 데 필요한 법칙 같은 것이라는 뜻일 텐데요, 시인님의 사랑법은 무엇일까요? 시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시에 대한 시인님의 생각을 먼저 들어볼까요?

사랑한다는 것은 제 몸의 힘을 전부 빼는 일이다.
그리하여 아주아주 가벼워져서,
자기를 사랑에게 놓아버리고,
그런 다음 깊이깊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어떤 보상도 기다림 없이 자기를 던지는 일이다.
삶의 법이다.

- 강은교 시·산문집 「꽃을 끌고」(열림원, 2022년) 중에서


시인님의 사랑법은 ‘제 몸의 힘을 전부 빼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전부 빼는 일’이라 하네요. 힘을 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떠나고 싶은 자 /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 시간은 침묵할 것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타인을 내버려 두는 일이네요. 그것은 사랑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 일입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힘을 빼는 일이네요. 우리는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을 얼마나 구속하는지요?

또는 꽃에 대하여 / 또는 하늘에 대하여 / 또는 무덤에 대하여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시의 전후 맥락으로 보아 이 구절들의 의미는 꽃과 하늘과 무덤에 대하여 침묵하라는 이야기네요. 침묵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는 것을 말할 텐데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으로 새겨봅니다.

시인님은 앞의 글에서 사랑법은 ‘제 몸의 힘을 전부 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겠네요. 시인님은 나를 집착하게 하는 대상으로 꽃과 하늘과 무덤을 꼽았네요. 이는 곧 아름다움이나 꿈, 죽음이네요. 우리는 이런 것에 목덜미를 붙잡혀 얼마나 옴짝달싹도 못하는지요!

서둘지 말 것 / 침묵할 것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이 구절을 하나의 독립적인 연으로 배치했네요. 그만큼 이 구절이 소중하다는 시인님의 눈짓입니다. 서둘지 않고 침묵하는 것 말입니다. 타인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요.

 

강은교시사랑법중에서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3.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그대 살 속의 /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그대 살 속에도 ‘오래 전에 굳은 날개’가 있지요? 이미 오래전에 포기해 버린 꿈 말이에요. 꿈의 날개가 굳어버리면서 나의 강물은 흐르지 않고 나의 별은 빛나지 않았네요. 꿈을 상실한 뒤 삶은 무의미하기만 합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쉽게 꿈꾸지 말고 / 쉽게 흐르지 말고 / 쉽게 꽃피지 말고 / 그러므로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시인님은 앞의 글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제 몸의 힘을 전부 빼고 아주아주 가벼워져야 한다고 했네요. 이 가벼움은 섣불리 꿈꾸고 흐르고 꽃 피우는 것 같은 집착에서 벗어난 가벼움일까요?

실눈으로 볼 것 / 떠나고 싶은 자 /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 홀로 잠드는 모습을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실눈'은 실처럼 가늘게 뜬 눈입니다. 상대방이 보기엔 감고 있는 것 같은 눈이네요. 그렇지만 나는 상대가 다 보이는 눈이네요. 이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상대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는 나의 행동에 개의치 않고 편안하게 떠나고 잠들 수 있겠네요.

타인을 내버려 두는 행위, 타인에게 집착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타인과 접속하는 법, 사랑법이라는 말이네요. 시인님은 앞의 글에서 ‘어떤 보상도 기다림도 없이 자기 자신을 던지는 일’, 그것이 사랑법, 바로 ‘삶의 법’이라고 합니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시 ‘사랑법’ 중에서


이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훅 들어오네요. ‘가장 큰 하늘’은 무얼까요? 우리가 그토록 간구하는 진정한 사랑, 참된 사랑 아닐까요?

그렇게 찾아 헤매던 것이 바로 우리의 등 뒤에 있다고 하네요. 앞만 보고 내달리던 우리는 몰랐네요. 눈앞에 닥친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등 뒤에 가장 크고 밝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몰랐네요. 그것도 ‘언제나’ 있다는 사실을요. 어서 짝지한테 맛있는 거 먹자고 전화해야겠어요!

이렇게 소중한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님!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사랑법에 대한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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