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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함민복 동시 반성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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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님의 동시 '반성'을 읽습니다. 여섯 줄의 짧은 동시, 여기에는 어떤 소중한 팁이 들어있을까요? 우리 함께 읽으며 반성하고 성찰하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함민복 동시 '반성' 읽기

 
반성
 
- 함민복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 함민복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함민복 시, 윤태규 그림, 문학동네) 중에서

 
이 동시는 2019년 3월에 나온 위 동시집에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함민복 시인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동시에 가까이 가는 징검돌로 여기며 함께 읽어봅니다.

길자는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 이름입니다. (중략) 사실 길자는 3년 전에 죽었습니다. 나는 길자를 잊지 못하여 하루에도 여러 번 불러내 대화를 나눕니다. 길자에게 질문을 던져 보고 길자가 되어 나에게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합니다. 길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말랑말랑해집니다.
 

2. 타자를 향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

 
함민복 시인님은 강아지를 매우 좋아하나 봅니다. 사랑하던 강아지 길자가 2016년 즈음 죽었는데, 여태 길자를 못 잊어하는군요. 죽은 강아지와 이야기하는 시인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다 보이는 것만 같네요. 얼마나 길자를 사랑했으면 이런 동시가 나왔을까요?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으면 이런 마음이 일어날까요?
 
늘 / 강아지 만지고 /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 손을 씻고 / 강아지를 만져야지

- 함민복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빗방울이네는 처음 이 동시를 읽었을 때 속이 뜨끔했습니다. 아, 그렇네, 강아지 입장에서는 씻지 않은 내 손이 더러웠겠네. 여태 왜 그 생각을 못하고 살았을까! 이렇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한동안 마음을 숙이며 살았습니다.
 
이 동시를 읽고 나서 빗방울이네가 가끔 만나는 뽀삐를 만지는 일이 한층 행복해졌습니다. 그전에는 뽀삐가 바깥에서 묻힌 더러운 것이 나에게 묻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 내심 걱정이었는데, 그런 마음,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빗방울이네와 뽀삐가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지요. 뽀삐도 그런 마음이 들었겠지요?   
 
그런데요, 이런 반성하는 마음이 되어보니, 함민복 시인님의 동시가 비단 강아지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모든 타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는 것을요. 나는 타자에게 얼마나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타자의 입장을 생각하며 살아왔던가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함민복동시반성
함민복 동시 '반성'

 

 

3.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사는 건 아닌지

 
이렇게 타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함민복 시인님의 시 '소스라치다'를 함께 읽어봅니다.
 
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중에서

 
이 시를 보니, 언젠가 읽었던 '바퀴벌레에게 클레오파트라는 얼마나 무서운 괴물일까?' 하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이 시 '소스라치다'는 '우리는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하고 묻는 시입니다.
 
우리가 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방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뱀의 입장도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시인님은 말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놀라운 일은, 우리가 타자로 여기며, 우리의 범주에서 무심하게 빼버리는 대상으로 뱀이나 나무처럼 생명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바위나 하늘 같은 생명이 없다고 생각되는 무생명들도 다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나' 이외의 모든 존재의 필연성에 대한 경외감을 가질 때 모든 생명과 무생명들이 연기적으로 어울려 돌아가는 하나의 우주를 만날 수 있다는 시인님의 전언인 것만 같습니다. '나'도 커다란 우주에 동참하는 하나의 인연이니까요.
 
빗방울이네가 좋아하는 어떤 이는 물컵을 식탁에 내려놓을 때 '탁' 하는 작은 소리도 없이 아주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그 분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무감한 사물에 대한 공손함은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도 흐트리지 않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컵은 주변에 아무런 참여를 하지 않는 그저 딱딱한 사물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대는 이 사태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함민복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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