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님의 시 '나를 위로하며'를 만납니다. 이 다섯 줄의 짧은 시에는 어떤 깊은 우물이 들어 있을까요? 시인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우물 물에 우리 함께 마음을 담그며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함민복 시 '나를 위로하며' 읽기
나를 위로하며
-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중에서
함민복 시인님은 1962년 충북 노은 출신입니다. 1988년 「세계의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등이,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 비롯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았습니다.
2. 시집의 첫 시가 가진 의미는?
2005년 발간된 시집 「말랑말랑한 힘」은 함민복 시인님의 네 번째 시집인데, 강화도에 정착해 사는 시인님의 '강화도 생활 10년'에 대한 시적 보고서로 일컬어집니다. 자본과 욕망의 중심에서 저만치 떨어져 강화도에서 살아가는 시인님은 이 시집으로 제24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을 시 '나를 위로하며'는 이 시집의 첫번째 시입니다. 시인님은 이 다섯 줄의 짧은 시를 서시처럼 시집의 맨 앞자리에 두었군요. 시집의 첫 시는요, 이 시집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시인의 눈짓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가는 시네요.
'나를 위로하며'라는 제목이 시인의 깊은 사연을 다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시집의 첫 시 제목이 '나를 위로하며'로 시작하는 걸 보니, 그사이 시인에겐 힘든 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를 위로해 본 적이 있었던가요? 타인을 위로해 준 일만큼요. 늘 나는 뒷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를 위로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할까요?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참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참는다는 건 얼마나 아픈 일인지도 모르고 참기만 했다니요. 함부로 자책하고 원망만 했다니요. 이제는 정말로 나를 위로해야 할 시간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의 울음터는 어디일까요? 빗방울이네에게는 '삐뚤삐뚤'입니다. 살아가면서 일어난 실수와 실패를 말하네요. 삶은 언제나 실수와 실패 투성이인 것만 같습니다. 실수와 실패를 거치지 않고 성공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요?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 고쳐 썼다고 하는데요.
삐뚤삐뚤 / 날면서도 / 꽃송이 찾아 앉는 / 나비를 보아라
- 함민복 시 '나를 위로하며' 중에서
시의 화자는 나비도 그렇게 삐뚤삐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꽃송이를 찾아 앉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나비는 하늘에서 일직선으로 내려와 꽂히듯 꽃송이에 앉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시의 화자는 '나비도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라고 하네요. 누구에게요? 바로 자신에게요. '마음아'라고 부르면서요.
3. 마음이 마음을 마주하고 말하다
마음아
- 함민복 시 '나를 위로하며' 중에서
시인은 '마음아'라는 세 글자를 한 개의 연으로 따로 구성해 두었네요. 그만큼 중요한 상징이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시인이 '마음아'라고 부른 마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앞에 세워두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고 격려하며 위로하고 있네요.
사실 누가 아무리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해도, 자신이 스스로를 다독여서 스스로를 수용하는 일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자세히 바라보고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겠네요. 그래서 시인은 '마음아'라고 자신의 마음을 불러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멋진 장면이네요.
마음아, 이만하면 잘 하고 있어. 더 이상 잘 하려고 애쓰지 말자. 보통만 하면 되지 뭐. 그래 잘 하고 있어. 응?
이제 나비를 보면 생각나는 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비를 보면 나를 위로하는 습관도 생길 것 같습니다. 그래,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를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하면서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함민복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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