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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조병화 시 낙엽끼리 모여 산다

by 빗방울이네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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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인님의 시 '낙엽끼리 모여 산다'를 만납니다. 낙엽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쓸쓸함 속에서 따뜻함이 은근히 스며나오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조병화 시 '낙엽끼리 모여 산다' 읽기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화(1921~2003년, 경기 안성)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조병화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慰安)」(1950년 산호장에서 처음 나온 시집을 1994년 동문선에서 시선집으로 발행)중에서. 

 

2. 소멸의 계절, 낙엽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거리에 낙엽이 쌓이는 계절이네요.

 

쇠락과 소멸로 가는 계절의 거리를 걸으며 조병화 시인님의 시 '낙엽끼리 모여 산다'를 음미해 봅니다.

 

이 시는 1950년에 나온 시인님의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慰安)」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29세 즈음의 시네요. 그때 시인님은 낙엽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낙엽에 누워 산다 /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이 구절을 읽으니 문득 우리는 저마다 한 잎의 낙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쓸쓸한 낙엽, 소멸로 가고 있는 외로운 낙엽 말입니다.

 

그러니 쓸쓸한 낙엽이 낙엽에 누워 잠들 듯이 쓸쓸한 우리도 저마다의 마음 자락에 기대어 또 누워 잠들 수밖에요.

 

외로운 낙엽이 낙엽끼리 모여 살듯이 외로운 우리도 우리끼리 모여 살 수밖에요.

 

지난봄 그 파릇했던 이파리들은 한여름의 폭풍우 속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나무를 살 지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일은 단지 지금을 사는 것이겠지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일이겠지요?

 

조만간 세찬 바람결에 흩어지고 대지로 스며버릴지라도 말입니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낙엽이 지는 시간, 우리의 마음과 몸도 예민해지는 시간입니다.

 

생명의 소멸과 순환에 대하여, 존재의 영원성에 대해 우리의 촉수가 열리는 시간입니다.

 

'가는 목소리'는 낙엽이 지는 소리일까요?

 

낙엽이 지는 작은 소리는 '그 파릇하던 이파리가 물들어 떨어지는 것을 보아라'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 가을, 한 장의 낙엽 같은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요?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이 구절이 참 좋네요.

 

'보이지 않는 곳'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북돋워줍니다.

 

미지(未知)의 세계를 동경하게 하고 공부하게 하고 도전하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명약인 것만 같습니다.

 

아직 오지 않는 것들이 우리에게 다 보인다면 우리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겠지요?

 

"보이지_않는_곳이_있기에_슬픔을_마시고_산다"-조병화_시_'낙엽끼리_모여_산다'_중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 조병화 시 '낙엽끼리 모여 산다' 중에서.

 

 

 

 

 

 

 

3.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는 말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우리는 애써 죽음을 외면하면서 죽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려 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네 삶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요?

 

우리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낙엽 속에 버려보곤 하는지요?

 

그렇게 늘 소리 없이 가까이 있는 슬픔입니다.

 

그 슬픔을 자양분으로 삼아 우리는 살아내고 있겠지요?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한때 생명이었던 것은 이렇게 비에 젖은 낙엽이 되어 잊히는 걸까요?

 

그렇게 잊힌 것을 밟고 디디며 또 다른 생명은 일어서는 걸까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속에서 시인님은 밤새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인님의 몸과 마음은 밤처럼 차갑습니다. 

 

'나의 소리'는 낙엽의 소리이기도, 밤새 방황하는 '나'의 신음이기도 하겠지요?

 

생명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슬픔은 아무도 달래주지 못하는 슬픔일 것입니다.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비에 젖은 한 마리 새가 부리로 자신의 털을 비비며 온기를 찾는 가련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 낙엽에 누워 산다 /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앞서 나온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라는 구절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 구절이 바로 이 시의 핵심구절이네요.

 

삶이 저 낙엽처럼 쓸쓸하고 쓸쓸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산다고 합니다.

 

삶이 저 낙엽처럼 허무하고 허무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산다고 합니다.

 

우리 저 낙엽 같은 존재여서 쓸쓸할지라도, 그래도 낙엽끼리 모여 사니 따뜻하네요.

 

우리 서로의 마음에 누워 사니 정말 다행이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조병화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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