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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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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님의 시 '새로운 길'을 따라갑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까요? 윤동주 시인님이 밝혀주신 빛나는 길을 우러르며 따르며 함께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읽기

 
새로운 길
 
-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가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시집」(권일송 편저, 청목문화사)

 
8·15 해방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우리가 참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님(1917~1945)이 돌아가셨습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죄명으로 수감되었던 후쿠오카 형무소 안에서 말입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만 27세 2개월이었습니다. 푸르른 소나무처럼 형형한 청년이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형무소에 수감된 지 1년도 안 되어 그렇게 허망하게 절명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친 윤영석 님과 당숙 윤영춘 님이 윤동주 시인님의 시신을 인도하러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을 때, 함께 수감되어 있던 윤동주 시인님의 사촌 송몽규 님으로부터 "이름 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윤동주 시인님의 유해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고향으로 돌아와 북간도 용정 동산(東山)의 중앙교회의 교회 묘지에 묻혔습니다.
 

2. 22세 청년 윤동주가 쓴 다짐의 시

 
오늘 만나는 시 '새로운 길'은 어떤 사연을 가진 시일까요?
 
만주 명동 땅에 있던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한 윤동주 시인님은 연희전문학교 입학시험 때 서울 나들이를 처음 했다고 합니다. 당시 연희전문학교 입학시험은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국내에는 남자 인문계 전문학교로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해 북간도의 연희전문학교 문과 합격생은 윤동주 시인님과 그의 사촌 송몽규 시인님 둘 뿐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이었을까요?
 
특히 그때 연희전문학교에는 국문법의 대가 외솔 최현배 님을 비롯, 명수필 '신록예찬'의 이양하 님, 한국사의 정인보 님, 한국민속학 개척자 손진태 님 등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청년 윤동주 님의 가슴은 얼마나 설렜을까요?
 
'새로운 길'은 이때 탄생했습니다. 윤동주 시인님이 22세 때인 1938년 5월 10일에 쓰인 것입니다. 그해 4월 9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니 입학하고 한 달쯤 뒤네요. 그렇게 공부하고 싶었던 학교의 기숙사 방에서 미래에 대한 설렘을 누르며 만년필에 청색 잉크를 가득 채운 뒤 '새로운 길'의 시상을 원고지에 옮기는 청년 윤동주 님의 필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나의 길 새로운 길

-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중에서

 
항상 새로운 길을 가리라!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새내기 윤동주 님의 각오가 느껴집니다. 말이나 행동에 거짓과 과장이 없고 언제나 조용한 성품이었던 그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목소리였을 것입니다. 거짓 없고 과장 없는 마음의 우물에서 솟은 맑고 깨끗한 찬물 같은 다짐이었을 것입니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 내일도 ······

-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중에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간 길을 답습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새로운 길을 지향하리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씩씩하고 호방한 기상으로 시작됐던 연희전문학교 문과 4년의 시간은, 일제 통치의 말기적 징후의 공포와 좌절 속에서도 그나마 윤동주 시인님의 27년 2개월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윤동주시새로운길중에서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중에서

 

 

 

3. 그의 장례식에서 낭독되었던 시

 
윤동주 시인님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1941년 12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윤동주 시인님은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1943년 7월 14일 독립운동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1944년 3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그리고 수감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45년 2월 16일 통탄스럽게도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윤동주 시인님의 장례식은 북간도 용정 그의 집 앞뜰에서 거행되었는데(1945년 3월 6일), 그때 자신의 시 '우물 속의 자화상'과 '새로운 길'이 낭독되었습니다. 봄 햇살 같았던 청춘이 언제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며 썼던 봄 햇살 같았던 시가 시인의 장례식에서 낭독되어야 했던 이 기막힌 시간을 어찌해야 하는지요.
 
그의 장례식 장면이 찍힌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사각모를 쓴 윤동주 시인님의 사진이 담긴 영정을 둘러싸고 일가친지 20여 명이 서서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그들의 눈빛은 슬프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화나고 너무나 억울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들은 78년의 시간을 넘어와 오늘의 우리를 향해, 이 시대를 향해 묻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하고요, 과연 그대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가 하고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윤동주 서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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