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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백석 시 삼방

by 빗방울이네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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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인님의 시 '삼방(三防)'을 만납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 살아가는 순박한 산골사람들의 삶이 담긴 시, 마음이 따스해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백석 시 '삼방(三防)' 읽기

 

삼방(三防)

 

백석(1912~1995, 평북 정주)

 

갈부던 같은 약수(藥水)터의 산(山) 거리엔 나무그릇과 다래나무 짚팽이가 많다

 

산(山) 넘어 십오리(十五里)서 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산(山)비에 촉촉이 젖어서 약(藥)물을 받으려오는 두멧아이들도 있다

 

아래ㅅ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백석 시집 「사슴」(1936년 오리지널 디자인, 도서출판 소와다리, 2016년) 중에서.

 

2. 백석 시집 「사슴」의 마지막 시 '삼방'은 어디일까요?

 

백석 시인님의 시집 「사슴」의 마지막 시로 '삼방(三防)'이라는 3행짜리 짧은 시를 배치했네요.

 

'삼방(三防)'은 지역 명칭입니다. 북녘땅 강원도 세포군(예전의 함경남도 안변군)에 있는 고장입니다.

 

시 '삼방(三防)'은 1936년 즈음의 이곳 '삼방'의 모습을 그렸네요.

 

삼방은 과연 어떤 곳일까요?

 

최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천연기념물 제236호인 '삼방협곡'을 소개했네요.

 

이 통신의 내용을 전한 <통일뉴스>의 기사(2020. 5. 22)에 따르면, 삼방협곡의 길이는 25㎞, 너비는 100~250m, 골짜기 깊이는 500~600m입니다. 참으로 길고 높고 깊은 협곡이네요.

 

북한 이 통신에서 이런 험난한 협곡의 양쪽에는 비탈면의 벼랑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고, 이 협곡에는 건강에 좋은 이름난 삼방약수도 있고, 삼방폭포도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삼방이라는 지역은 매우 길고 깊은 협곡지역, 산골 중에서도 깊은 산골이라는 말이네요.  

 

시 '삼방'은 그 삼방협곡에 있는, 그 유명하다는 삼방약수터 이야기입니다. 

 

그즈음 20대 초반의 백석 시인님은 거기서 무얼 보았을까요?

 

'갈부던 같은 약수(藥水)터의 산(山)거리엔 나무그릇과 다래나무 짚팽이가 많다'

 

'갈부던'은 국어사전에 '떡갈나무 이깔나무 등이 양쪽에 우거진 층계 길'이라고 합니다.

 

높고 깊고 긴 협곡이니 얼마나 경사진 길이 많겠는지요? 

 

'약수터의 산(山)거리'. 약수터가 있는 거리인데, 산(山)거리라고 하네요. 경사진 길의 약수터 근처 거리를 말합니다.

 

험한 삼방협곡에 있는 삼방약수는 얼마나 좋을까요?

 

이 약수는 다량의 탄산·규산·칼슘·나트륨 등의 광물질을 함유하여

만성소화불량·신경쇠약·빈혈·성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연중 국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며,

특히 한여름에는 울창한 수림으로 더위를 모르는 피서지로서,

한여름 보신제로 특효라는 살모사탕과 함께 약수를 찾는 유람객이 붐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발행)의 '삼방약수' 글 중에서.

 

정말 유명한 약수네요.

 

위 책에 따르면, 광복 전에는 서울에서 경원선(京元線)을 타고 삼방협곡에 가서 약수 먹고 삼방폭포 구경하기를 즐겼다고 하네요.

 

삼방지역은 이렇게 그 당시 서울 지역 사람들의 주말 여행지와 관광 피서지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산지(山地)'라는 시를 1935년 11월 「조광」에 발표했다가 '삼방(三防)'으로 제목을 고치고 대폭 줄여 시집 「사슴」에 실었습니다.

 

'산지(山地)'의 첫행은 이렇습니다.

 

'갈부던 같은 약수(藥水)터의 산(山)거리 여인숙(旅人宿)이 다래나무지팽이와 같이 많다'

 

'여인숙이 다래나무지팽이와 같이 많다'라고 했는데, 그만큼 삼방약수터 근처에는 여인숙이 많아 삼방약수로 몸을 고치려고 여인숙에 투숙해 치료하는 환자들로 붐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효험이 높은 약수인지 짐작이 가네요.

 

시인님은 '삼방(三防)'에서 '산지(山地)'의 여인숙 이야기는 빼고 그냥 '나무그릇과 다래나무 짚팽이가 많다'라고만 했네요.

 

깊은 협곡이 있는 산골마을이라 나무가 많아 나무를 깎아 만든 나무그릇이 많았고요, 다래나무 지팡이가 많았네요.

 

덩굴식물인 다래나무 줄기는 구불구불하고 가벼워 지팡이로 좋은 나무라고 합니다. 

 

깊은 산속이지만 삼방약수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약수를 찾는 사람들로 붐비는 '산(山)거리'입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그 거리 한 켠에 팔려고 내놓은 이런저런 물품 가운데 시인님에게 나무그릇과 다래나무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네요.

 

지팡이가 많다는 것은 약수를 찾는 사람 중에 노약자들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quot;산_너머_십오리서_나무뒝치_차고_싸리신_신고_산비에_촉촉히_젖어서_약물을_받으려오는_두멧아이들도_있다&quot;-백석_시_'삼방'_중에서.
"산 너머 십오리서 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산비에 촉촉히 젖어서 약물을 받으려오는 두멧아이들도 있다" - 백석 시 '삼방' 중에서.

 

 

 

3. 자연에 의지하여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산골사람들의 처연한 삶

 

'산(山) 넘어 십오리(十五里)서 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산(山)비에 촉촉이 젖어서 약(藥)물 받으려오는 두멧아이들도 있다'

 

'뒝치'는 '뒤웅박'의 평북 방언입니다. '나무뒝치'는 통나무 속을 파 만든 '물병'으로 새깁니다. 약물을 받아가려고 그런 '나무뒝치'를 허리에 차고 왔다고 하네요.

 

싸리신은 두메산골 사람들이 신는 '두메싸립'을 말하네요. '두메싸립'은 싸리 껍질로 바닥을 거칠게 짚신처럼 삼아 만든 미투리입니다.

 

싸리신은 요즘의 단단한 등산화 역할을 한 신발이었을까요? 지형이 험한 산지를 다니려면 짚신보다 더 질긴 싸리신이 필요했겠지요? 

 

약효가 그렇게 좋다는 삼방약수터에 두메아이들이 산에서 나오는 그 약물을 받으러 왔는데요, 산 넘어 십 오리(약 8㎞)를 걸어왔는데요, 나무뒝치 허리에 차고요, 싸리신 신고요, 산비에 촉촉이 젖어서 왔네요.

 

산물과 산길과 산에서 나는 나무뒝치와 싸리신과 산비. 이 모두 산에서 나지 않는 것이 없네요. 그 아이도 두메산골에서 났으니, 그야말로 산과 딱 붙어 산에 의지하여 산과 함께 산처럼 사는 생명입니다. 

 

그 깊고 깊은 외진 산골 아이의 집에 누가 아픈가 보네요. 그 환자에게 먹이려고 약물을 떠러 왔네요. 십 오리나 걸어서 말입니다.

 

아프면 병원이 아니라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산골사람들의 외따로이 떨어진 삶들이 애연하게 그려지네요. 

 

'아래ㅅ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무당은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애기무당'은 그 무당 아래에서 무당 일을 배우는 사람을 말할까요?

 

무당은 왜 작두를 탈까요?

 

무당이 굿을 할 때 신의 영력(靈力), 즉 신령스러운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요란한 음악소리에 맞추어 격렬한 춤을 추다가 망아(忘我) 상태가 되면 맨발로 작두 날 위에 올라섭니다. 그 위에서 접신(接神)해서 신의 소리를 내는 것을 공수를 내린다고 하고요.

 

이런 일을 큰 무당이 아니라 애기무당이 하면, 보는 이의 가슴은 얼마나 더 조일까요?

 

그런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작두를 타는 무당과 산골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늘에 비는 제의(祭儀), 굿을 하는 때가 많다고 하네요. 

 

'아래ㅅ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이렇게 '굿을 하는 때가 많다'라는 것은 그만큼 하늘의 힘에게 빌어야 할 정도로 아픈 사람이 많다는 말입니다.

 

가난하고 아픈,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사람입니다.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을 치유해 달라고 약수에 기대기도 하고, 세속과 초월적인 세계를 오가는 무당의 신통력에 매달리기도 하네요.

 

자연의 힘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생명과 삶을 지켜나려는 산골 사람들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시인님은 이런 시를 자신의 유일한 시집 「사슴」의 마지막 시로 올려두었네요.

 

젊은 시절 시인님이 그 유명하다는 삼방에 갔다 와서 쓴 시에는 그 효험 있다는 약수 맛이 어떻더라는 이야기도 없고요, 협곡이나 폭포 이야기도 없네요.

 

시에 등장한 것은 나무그릇과 다래나무지팡이, 나무뒝치를 차고 산비에 젖은 아이, 애기무당 같은 낮고 낮은 이야기뿐이네요.

 

「사슴」의 마지막 시행을 다시 읽어봅니다.

 

'아래ㅅ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가난하지만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순박하게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의 삶에 깊은 연민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시인님의 다정한 마음이 시집 「사슴」의 마지막 페이지에 놓여있네요. 아, 따스하네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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