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시인님의 시 '슬픔' 속으로 빠져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슬픔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금강석 같은 시입니다. 그 환한 빛으로 저마다의 마음을 맑히고 밝히며 독서 목욕을 하십시다.
1. 김현승 시 '슬픔' 읽기
슬픔
- 김현승
슬픔은 나를
어리게 한다.
슬픔은
죄를 모른다,
사랑하는 시간보다도 오히려.
슬픔은 내가
나를 안는다,
아무도 개입할 수 없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 준다,
나를 다시 한번 깨끗게 하여 준다.
슬픈 눈에는
그 영혼이 비추인다,
고요한 밤에는
먼 나라의 말소리도 들리듯이.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
신앙이 무엇인가 나는 아직 모르지만,
슬픔이 오고 나면
풀밭과 같이 부푸는
어딘가 나의 영혼 ···
- 「김현승 시전집」(김인섭 엮음·해설, 민음사) 중에서
다형 김현승 시인님(1913~1975)은 평양 출신으로 21세 때인 1934년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과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숭일학교 교감, 조선대 및 숭실대 교수, 숭전대 문리과대학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는 첫 시집 「김현승시초」(1957)를 비롯,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절대고독」(1970) 「한국현대시해설」(1972) 「김현승시전집」(1974) 「마지막 지상에서」(1975) 「고독과 시」(1977) 등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제1회 문화상 문학부문상, 서울특별시문화상 문학부문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슬픔 샤워'를 아시나요?
김현승 시인님의 시 '슬픔'은 시인님 46세 때인 1959년 6월 「현대문학」에 발표됐습니다. 이어 이 시는 시인님이 두 번째 시집으로 1963년 펴낸 「옹호자의 노래」에 실렸습니다.
이 시는 시인님이 애지중지한 시로 보입니다. 시인님은 이 시집 앞쪽에 쓴 '자서'에서 "(이 시집의) 제2부는 나의 개성이 소유하는 내부적 기질의 숨김없는 토로."라고 하면서, "제2부의 작품들에 얼마간의 애착을 느끼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첫 번째 시로 '슬픔'을 배치했습니다.
시 '슬픔' 속으로 빠져보십시다.
그대는 어떠신가요? 빗방울이네는 예전부터 슬픔이 나쁜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우울하고 괴롭고요, 창피해서 숨겨야 할 것만 같은 거 말입니다. 슬픔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도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잘 울지도 못했고요.
그런데 시 '슬픔'을 읽고나니 슬픔의 '정화' 기능이 생각났습니다. 실컷 슬퍼하고 나면, 한껏 울고 나면 정신이 개운해지는 것 말입니다. 슬픔의 비극성 안쪽에 이런 긍정적인 면이 내재해 있었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슬픔은 나를 / 어리게 한다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우리는 이 첫 구절에서 어리둥절해집니다. 시는 첫 구절이 중요한데, 첫 구절에서 독자의 눈을 붙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린 매우 낯설은 진술의 이 첫 구절에 딱 달라붙고 말았네요. 이게 무슨 뜻이지? 하면서요.
'어리게 한다'는 것은 아이 같아진다, 그래서 순수해진다는 의미로 새겨집니다. 슬픔 속에 있으면 체면 같은 것, 잘 보이려고 꾸미는 일, 어깨에 힘주는 일, 거짓말 같은 것들이 다 내팽개쳐진 상태, 때 묻지 않은 인간 본래의 마음이 되겠네요. 그래서 슬픔 속에 있으면 아이같이 순수하고 맑아진다고 하네요.
슬픔은 / 죄를 모른다 / 사랑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죄를 모른다'라는 것은 하염없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이네요. 우리는 보통 사랑하는 시간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시인님은 슬픔의 시간이 더 순수하고 깨끗하고 정결한 시간이라고 하네요. 슬픔 속에서는 착한 일, 고운 일만을 신 앞에 맹세하게 되겠네요.
슬픔은 내가 / 나를 안는다, / 아무도 개입할 수 없다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나(자아)에 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순수한 자아 말입니다. 슬픔이 그리로 자신을 데려다준다고 합니다.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슬픔의 시간이네요.
슬픔은 나를 / 목욕시켜 준다 /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 준다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이 평범한 진술 같은 문장 속에 많은 함의가 있네요. '슬픔 샤워'라고 할까요? '슬픔 목욕'이라고 할까요? 슬픔에서 빠져나오면 화자는 다시 한번 깨끗해진다고 합니다.
슬픈 눈에는 / 그 영혼이 비추인다 / 고요한 밤에는 / 먼 나라의 말소리도 들리듯이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슬픈 눈은 맑고 투명하여 그 속이 환하게 보이는 깊고 깊은 숲 속의 고요한 옹달샘 같은 걸까요? 얼마나 고요하였으면 먼 나라의 말소리까지 들리는 듯할까요? 그 고요는 물질세계의 고요가 아니라 맑고 밝게 정화된 정신세계의 고요인 것만 같습니다.
3. 나를 순수하고 깨끗하고 바르게 해주는 슬픔에 대해
슬픔 안에 있으면 / 나는 바르다!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시인님은 이 대목을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자리로 스스로 지목한 듯합니다. 느낌표까지 붙여 '나는 바르다!'라고 했네요. 느낌표는 그렇게 되겠다는 맹세나 언약의 분위기도 풍기네요. 시를 읽어내려 오던 빗방울이네는 이곳 '나는 바르다!'에 왔을 때, 불현듯 몸과 마음의 허리뼈가 우뚝 서는 것을 느꼈답니다.
신앙이 무엇인가 나는 아직 모르지만, / 슬픔이 오고 나면 / 풀밭과 같이 부푸는 / 어딘가 나의 영혼 ···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시인님은 '슬픔이 오고 나면' 영혼이 부푼다고 합니다. 영혼이 어떤 긍정적인 에너지, 봄비를 맞은 봄풀들이 풋풋이 일어서는 것 같은 좋은 힘으로 충만해진다고 하네요.
이렇게 우리는 기쁨보다 슬픔 속에 있을 때 정신이 더 명징해지는 것 같습니다. 삶의 길 위에서 만나는 어떤 절박한 위기 속에서 뚜렷히 자신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슬픔이 주는 긴장은 우리에게 삶의 참된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왜 살아야하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슬픔의 힘이네요.
시 '슬픔'을 읽고나니, 슬픔 속에 둘러싸인 자아를 관조(觀照)하며, 슬픔의 힘으로 욕탐과 갈애를 씻어내며, 순수한 자아를 만나는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시인님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삶의 숨을 뜻을 알려주는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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