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님의 시 '강아지풀'을 읽습니다. 이 시는 우리네 어떤 삶의 풍경을 보여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용래 시 '강아지풀' 읽기
강아지풀
- 박용래
남은 아지랑이가 홀홀
타오르는 어느 驛 構
內 모퉁이 어메는 노
오란 아베도 노란 貨
物에 실려온 나도사
오요요 강아지 풀. 목
마른 枕木은 싫어 삐
걱 삐걱 여닫는 바람
소리 싫어 반딧불 뿌
리는 동네로 다시 이
사 간다. 다 두고 이
슬 단지만 들고 간다.
땅 밑에서 옛 喪輿 소
리 들리어라. 녹물이
든 오요요 강아지 풀.
- 박용래 시선 「강아지풀」(민음사, 1975년) 중에서
박용래 시인님(1925~1980)은 충남 논산 강경 출신으로 '동백시회' 동인활동을 했습니다. 1955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첫 추천(박두진 님)을 받고 다음 해 '황톳길' '땅'으로 2회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69년 첫 시집 「싸락눈」을 발간한 것을 비롯 「강아지풀」 「백발의 꽃대궁」 등 3권의 개인시집과 6인 공동시집 「청와집(靑蛙集)」을 발간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충청남도문화상, 시 '저녁눈'으로 제1회 현대시학작품상,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미물의 '가난한 아름다움' 노래한 시인
그는 남들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미물의 ‘가난한 아름다움’에 눈길을 돌려
우리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서정시로 새겨 놓았다.
그는 우리 현대 시인 중
가장 한국적인 서정이 풍기를 쓴 시인으로 꼽힌다.
- 「박용래 평전」(고형진 지음, 문학동네, 2022년) 중에서
이렇게 한국적인 서정이 가득한 시를 쓴 이, 박용래 시인님을 대표하는 시 ‘강아지풀’을 만납니다. 1969년 <월간문학> 12월호에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은 강아지풀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1975년에 나온 시인님의 두 번째 시집 이름도 「강아지풀」입니다.
위에 소개된 시 '강아지풀'은 시집 「강아지풀」에 나온 그대로를 옮긴 것입니다. 시어의 배치도 시집 그대로입니다.
시인님, 왜 그렇게 강아지풀을 좋아했는지요?
꽃망울도 없이 들길에 혹은 박토에 밀생하는 야생초.
빛을 바라며 어둠 속에서 우는 어린이 같은 존재.
가을이면 꽃의 그림자 같은 녹물이 드는 오요요 강아지풀.
- 「박용래 산문전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22년) 중에서
이 문장은 '강아지풀 - 가장 사랑하는 한마디의 말'이라는 시인님의 산문에 나옵니다. 시인님이 가장 사랑하는 한마디가 '강아지풀'이네요. 시인님의 초상 같은 시 '강아지풀'을 만나봅시다.
남은 아지랑이가 홀홀 타오르는 어느 역(驛) 구내(構內) 모퉁이
- 박용래 시 '강아지풀' 중에서
근대화의 기수 같은 기차역입니다. 문명을 실어가고 내려놓는 현장이네요. 그 중심 말고요. 모퉁이예요. 그것도 박토입니다. 거기에 강아지풀 가족이 살고 있네요.
어메는 노오란 아베도 노란 화물에 실려온 나도사 오요요 강아지풀
목마른 목침은 싫어 삐걱 삐걱 여닫는 바람소리 싫어 반딧불 뿌리는 동네로 다시 이사 간다
- 박용래 시 ‘강아지풀’ 중에서
이 시는 다른 시와 달리 시어들이 길쭉한 사각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시어들이 사각틀 속에 갇혀 답답하고 딱딱한 느낌을 주네요. 강아지풀 가족의 삶이 그렇다는 시인님의 눈짓입니다.
여기서 문득 우리는 누구라도 이방인인 우리네 삶도 그렇게 틀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네요. 잘 살기 위해 어떤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지도요.
목마른 목침은 싫어 삐걱 삐걱 여닫는 바람소리 싫어 반딧불 뿌리는 동네로 다시 이사 간다
- 박용래 시 ‘강아지풀’ 중에서
그래서 시인님은 이 숨 막히는 현실을 벗어나 반딧불이 빛나는 동네로 간다고 합니다. 그 반딧불의 동네는 원래 우리가 있던 곳이네요. 근대화 이전의 삶일까요? 오종종 둥근 공동체를 이루어 허물없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던 시절 말입니다.
3. '이슬 단지만 들고 간다'
다 두고 이슬 단지만 들고 간다
- 박용래 시 ‘강아지풀’ 중에서
이 구절이 우리의 정신을 저 높은 곳으로 실어다 주는 이 시의 솟대입니다.
다 놓아두고 이사를 간다네요. 그동안 도시에서 획득한 온갖 욕망의 산물들은 다 두고 간다고 합니다. 물질적인 것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말입니다. 이슬 단지만 달랑 들고 간다네요. 이사 가는 '반딧불 뿌리는 동네'는 어디일까요?
땅 밑에서 옛 상여소리 들리어라
- 박용래 시 ‘강아지풀’ 중에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이 상여 뒤를 따르는 만장(輓章)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죽음이 아니고는 욕망을 벗기 어려운 인간의 슬픈 숙명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녹물이 든 오요요 강아지풀
- 박용래 시 ‘강아지풀’ 중에서
녹물은 순수를 오염시키는 혼탁한 것이겠네요. 이 구절에서 나는 강아지 풀이다, 녹물이 다 든 강아지풀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영혼의 이슬 단지 들고 어디론가 떠나는 시인님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녹물 든 강아지풀 아닐까요?
‘오요요’는 강아지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강아지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오요요’를 가만히 발음해 보면 불리는 대상인 강아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할머니가 두 팔 벌려 손주를 안으며 ‘아유유 우리 강아지’ 하듯이 말입니다. 얼마나 정다운 말인지요? 오요요 우리 시인님!
술을 마시면 그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 아랑곳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는 박용래 시인님입니다. 시인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
그는 그림을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더 사랑하여 나날의 생활을 시편(詩篇)의 행간에 마련해 두고 살았다.
그는 나물밥 30년에 구차함을 느끼지 않았고
곁두리 30년 탁배기에도 아쉬움을 말하지 않았다.
달팽이집이라도 머리만 디밀 수 있으면 뜨락에 풀포기를 길렀고
저문 황토길 오십 리에도 달빛에 별발이 어리면 뒷덜미에 내리던 이슬조차도 눈물겹도록 고마워하였다.
- 박용래 시전집 「먼바다」(창비, 2006년) 부록의 ‘박용래 약전’(이문구 님 씀) 중에서
1980년 11월 21일 시인님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시인님 나이 겨우 56세였습니다. 11월 23일 충남문인협회장으로 충남 대덕군 산내면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어서 하관이 진행되었다.
그때 누군가 관 위에 강아지풀을 놓아주었다.
- 「박용래 평전」(고형진 지음, 문학동네, 2022년) 중에서
시인님은 그토록 좋아하던 강아지풀을 안고 잠드셨네요. 종래는 이슬 단지만 들고 저 높은 곳으로 가신 시인님을 생각하며 가진 것에 대해, 버려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깊은 밤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용래 시인님의 시 ‘ 저녁 눈’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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